찬반 갈등에 헛도는 공청회… “환경당국 중재자 역할 해야” [심층기획-환경영향평가 2.0]

(2회) 환경 없는 환경영향평가

강릉 폐기물매립장 조성 놓고 이견
공청회 시작하자 고성과 막말 오가
질의·응답조차 못하고 조기에 종료

주민들 “다시 열려도 안 올 것” 불신
사업자 “반대 주장 강해… 아쉬움 커”
소통 사라지고 갈등 골만 더 깊어져

“듣기 싫다! 매립장이 그렇게 좋으면 너희 집 안방에다가 지어라! 반대한다!”(주민들)

 

“여보세요! 누구는 소리칠 줄 몰라서 안 칩니까. 제발 하는 얘기를 들으세요.”(좌장)

 

“질러! 질러봐! 들어오지마. 반대한다.”(주민들)

 

“저도 이제 참을 수 있는 한계가 여기까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공청회 마치겠습니다.”(좌장)

 

지난 6일 오전 강원 강릉시의 한 예식장에서 열린 ‘강릉시 에코파크 조성사업 환경영향평가서(초안)’ 공청회 현장. 사업자 측 설명 중 주민 반발이 거세졌고, 좌장을 맡은 한동준 강원도립대 교수(소방환경방재)가 몇 차례 경고에도 항의가 잦아들지 않자 공청회 조기 종료를 갑작스레 선언했다. 오전 10시쯤 시작한 공청회가 2시간이 채 안 돼 파행한 것이다. 사업자 설명 이후 진행될 예정이던 주민 질의응답은 시작도 못했다. 격앙된 일부 주민들은 현장을 빠져나가면서 “잘됐다”, “그래, 끝내라” 등 야유를 쏟아냈다.

 

에코파크 조성사업은 강릉시 주문진읍 일대 34만8602㎡ 규모 부지에 폐기물 매립시설을 건립하는 게 골자다. 시설이 지어지면 2026년부터 25년간 사업장배출시설계 폐기물과 지정폐기물(의료폐기물 제외)이 매립될 예정이라 인근 주민 측 우려·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지난 6일 오전 강원 강릉시의 한 예식장에서 열린 ‘강릉시 에코파크 조성사업 환경영향평가서(초안)’ 공청회 현장에서 지역 주민들이 머리에 빨간 띠를 맨 채 패널 발표를 청취하고 있다. 이민경 기자

사업자와 주민 간 갈등을 조정하고자 열린 이날 공청회는 의견 교류는커녕 사업자·주민 모두에게 냉소만 남겼다. 이 사업 환경영향평가를 맡은 업체 관계자는 “주민들이 늘상 하시던 얘기를 하신 건데 사실 설명을 들으려고 안 하셨다”며 “(의견수렴이 잘 된 건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주문진에서 양식업에 종사하는 한재우(57)씨는 “어차피 (사업자 측도) 법적 요건이니 하는 거지 앞으로는 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입지 선정 단계부터 사업 착수까지 주민이 의견을 낼 수 있는 단계는 주민설명회와 공청회가 유일하다. 특히 주민설명회는 사업자 측의 일방적인 사업 설명에 가깝기에 공청회만이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주민 의견을 낼 수 있는 기회인데도 그 기능을 못한 것이다.

 

환경영향평가 공청회가 파행으로 치닫는 건 강릉시 에코파크 조성사업만의 일이 아니다. 기피시설의 경우 주민설명회·공청회가 더욱 절실하지만 사실상 요식행위에 그치고 있다는 평이 나온 지 오래다. 전문가들은 이 문제 개선을 위해 주민 접근성을 제고하고 실질적인 의견수렴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중재자가 없다

 

“사업자 측이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자리라면 다시 공청회가 열려도 안 올 거다.”

 

주문진읍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정호선(58)씨는 이날 공청회가 파행한 뒤 기자와 만나 “(사업자 측에서) 묻는 말에 확실한 답변을 해야지 뭉뚱그려 얘기하니 지역 주민들 반발만 생긴다”며 이같이 말했다. 다른 주민인 함영희(51)씨는 “안 그래도 반발이 큰데 사업자 측에서 단정적인 얘기만 하니 대화가 진행되지 않았다”며 “주민들의 반대하는 주장이 워낙 강하다 보니 (사업자 측의) 얘기를 못 들은 게 조금 아쉬웠다”고 말했다. 환경영향평가 업체 관계자는 “(주민 측에서) 잘못된 정보를 얘기하시는 것도 있다”며 “그런 것에 대해 저희가 일일이 여기서 다 반박하면 그건 또 다른 분쟁이 되니깐 그냥 듣고 넘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사업자와 주민 간 이견이 분명한 데다 주민 측 반감이 높은 상황에서 이를 조정할 중재자가 부재한 탓에 공청회가 제 기능을 못했다는 목소리다.

실제 이날 공청회 패널로는 사업자 측 4명, 주민 측 5명 등 총 9명이 참석했다. 좌장이 1명 있었지만 형식적 진행만 맡은 데다 파행 직전에는 방청 중인 주민과 언쟁을 벌여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조공장 한국환경연구원(KEI) 선임연구위원은 이와 관련해 “환경부나 지자체 관계자가 공청회에 참석해 ‘중간 조정자’ 역할을 해줘야 한다”며 “어차피 환경영향평가서가 환경부 협의 의견과 지자체 인허가에 (주민 의견이) 반영되기에 이들이 현장에 와야 한다“고 말했다. 법령상 정부 관계자는 환경영향평가서 초안 검토 공청회 참석 의무가 없다. 실제 강릉시 에코파크 조성사업 환경영향평가 협의기관인 원주지방환경청 관계자는 이 자리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환경당국 측 공청회 불참은 자연스레 재검토·반려 결정이 드문 협의 결과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10년여 협의 사례 중 재검토나 반려 통보가 이뤄진 건 약 2.8%에 그친다.

 

◆무산되더라도 ‘무산’이 아닌 공청회

 

공청회가 그저 ‘명분 쌓기용’이 아닌 실질적인 의견 수렴·조정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관련 절차를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많은 전문가들이 문제로 지적하는 게, 공청회가 무산될 경우 사업자 측이 재차 공청회를 개최할 의무를 두지 않고 있는 현행 규정이다. 실제로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 제18조는 ‘설명회가 주민 등의 개최 방해 등의 사유로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한 경우’ 공청회를 개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강릉시 에코파크 조성사업 또한 주민 질의응답은 시작도 못한 채 끝났지만 법적으로 사업자는 공청회를 재차 열 의무를 지니지 않는다. 에코파크 사업자 관계자는 공청회 추가 개최 여부에 대해 일단 “주민 측에서 필요하다고 하면 우리가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만 했다.

 

조공장 선임연구위원은 “공청회가 무산돼도 한 것으로 인정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며 “무산되면 온라인으로라도 개최하면 되는데 주민 의견수렴을 형해화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은주 생태지평 연구기획실장도 “의무사항으로 돼 있는 주민설명회·공청회가 무산됐다는 건 사실상 갈등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 아니냐. 갈등을 뭉개면 더 큰 갈등이 생기고 사회적 비용 또한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환경영향평가 제도 자체가 분쟁 조정의 성격을 갖고 있다. 공청회나 설명회를 빨리빨리 처리하려고만 하기보다는 이 과정을 통해 대안을 찾아내는 쪽으로 제도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