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전북 익산시 하림낭산부화장에 삐악삐악 소리가 가득하다. 방금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 병아리들이 감별사 하경미(67)씨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병아리 감별사(chicken sexer)는 부화 직후 병아리 암수를 구별하는 전문가다. 양계산업의 핵심적 직군이다.
49년째 이 일을 하는 하씨는 막 태어난 병아리 항문을 벌려 좁쌀 3분의 1 크기의 작은 돌기로 단번에 암수를 구분한다. 하루 많을 때는 12시간 동안 2만마리 이상 감별한다. 1시간에 1666마리, 약 2초에 한 마리꼴이다. 국내 최고 숙련자가 1시간에 1600마리 정도 감별한다고 하니 최정상급 수준이다.
닭은 암수에 따라 사육 목적과 기간이 달라 처음부터 분리해서 키운다. 암컷은 알을 낳는 산란계로 키울 수 있고, 수컷(토종닭 기준 약 75일)은 암컷(〃 82주)보다 사육기간이 짧다는 특징이 있다. 물론 보통 사람도 부화 한 달 후면 암수 구별이 가능하지만 문제는 비용이다. 암수가 섞여 이리저리 도망치는 닭을 잡아 나누려면 엄청난 수고와 비용이 투입된다. 감별사가 처음부터 암수를 구분해 따로 키우는 것이 경제적이다. 감별사의 손이 양계산업에서 ‘미다스의 손’인 이유다.
국내 최대 닭 가공업체와 전속 계약을 맺고 있는 하씨는 감별률 99.8%를 자랑한다. 그가 써준 추천서는 해외에서 감별사 취업의 보증서가 될 정도다.
암실의 전깃불 밑에서 이루어지는 병아리 감별은 보기와 달리 쉽지 않은 작업이다. 부화 후 24시간 이내의 병아리를 집어 항문을 벌려 똥이 나오면 탈분통에다 털어 낸다. 이어 손가락으로 항문 안쪽을 만져 미세한 돌기가 느껴지면 수평아리다. 좁쌀 3분의 1만큼 작은 돌기로 구별해야 하니 손가락은 가늘고 촉각과 시력이 좋아야 한다. 성격은 침착하면서도 휙휙 병아리를 낚아채 빠른 시간에 감별해야 하는 만큼 손은 빨라야 한다.
“좁쌀 크기의 병아리 똥이 모이면 냄새가 장난이 아니에요. 어린 나이에 처음 시작할 때는 적응이 힘들었는데 50년 가까이 이 일을 해오다 보니 이 냄새가 친근해졌어요. 한번 냄새를 맡아보세요.” 이 일이 천직이라는 하씨가 권했다.
병아리 감별사라는 직업은 국내 양계업계가 기업화로 전환한 1961년 이후 생겼다. 최고 수준 전문가가 1초에 0.4마리를 감별하는 한국인 감별사는 세계 최고로 꼽힌다. 능력이 뛰어나 해외 각지로 파견되는 K감별사가 급증했다. 현재 해외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감별사는 80여개국에 1800여명. 전 세계 병아리 감별사 인력시장에서 60%를 차지한다.
현재 국내에는 병아리 감별사 자격증 제도가 따로 없다. 대한양계협회에서 주관하던 자격시험은 1993년 폐지됐다. 지금은 병아리 감별학원이나 연구소의 과정을 이수한 수료증이 자격증을 대신한다. 자격증 제도가 있을 당시 고등감별사는 100마리를 7분 이내에 성공률 98% 이상, 갑종감별사는 100마리를 9분 이내에 97% 이상으로 감별해 내는 게 기준이었다. 현재 민간학원에서도 이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하씨는 충남 논산시에 하경미감별용역이란 교육기관을 세워 제자 10여명을 가르치고 있다. 하씨는 “그동안 무료로 병아리 감별 기술을 배운 청소년만도 수십 명”이라며 “이들이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서서 이 분야의 전문가로 자리 잡고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