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공교육이 살아나야 한다

尹 “킬러문항 배제” 당·정 호들갑
2028학년도 대입 개선안도 내놔
잦은 제도 개편 학생·학부모 혼선
학벌·공급자 중심 교육 끊어내야

1990년 개봉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미국의 명문고인 웰튼 고교에서 공부가 인생의 전부인 학생들이 아이비리그로 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학생이 신참 교사인 존 키팅(로빈 윌리엄스)에게 “선생님! 시를 왜 배우나요, 대학 진학엔 도움이 안 되는데”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키팅은 “여러분이 목표로 삼는 의술과 법·정치 모두 고귀한 일이지만 이들은 삶에 필요한 수단과 방법이지 목적이 아니다”라고 강변한다. 키팅은 학교장 반대에도 시인과 작품을 가르치다 학교에서 쫓겨난다. 대한민국 교육 현실과 유사하다.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이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하면서 교육계가 발칵 뒤집혔다. 연간 사교육 비용이 26조원에 달하는 사정을 감안하면 당연한 말이다. 윤 대통령은 교육 당국도 카르텔의 ‘한편’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6월 모의평가 난이도 실패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까지 사임했다. 주요 사교육 업체는 ‘공공의 적’이 됐다. 문제 거래 의혹으로 수사선상에 오르고 세무조사를 받는 등 난리법석이다.

김기동 논설위원

대통령 한마디에 정부·여당은 킬러(초고난도)문항 배제를 통해 사교육 근절과 공교육 정상화를 외쳤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윤 대통령을 “대입 제도에 누구보다 해박한 전문가”라고 칭송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저도 전문가지만 (대통령에게) 배우는 상황”이라고 했다. 기가 찰 일이다.

 

대통령의 인식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킬러문항 제거로 사교육이 사라진다는 건 착각이다. 역대 정권마다 실패한 게 사교육 근절이다. 한술 더 떠 교육부가 현재 중학교 2학년부터 적용되는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시안을 공개했다. 영역별 선택과목을 6년 만에 공통과목으로 바꾸고 내신을 9등급에서 5등급으로 줄이는 게 골자다. 이과생의 ‘문과 침공’을 막겠다지만 문과생의 의대 쏠림을 유발할 소지가 없지 않다. 선택과목이 없어지면서 모든 과목을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의 학습 부담이 커지고, 내신의 절대평가·상대평가(석차) 병기로 내신 경쟁도 치열해질 게 뻔하다. 2025년 도입되는 고교학점제와 배치돼 수업과 입시가 따로 노는 것도 문제다.

 

해방 이후 입시 제도는 19차례나 바뀌었다. 짧게는 1년, 통상 5∼6년 주기로 학생·학부모의 혼란만 가중됐다. 오죽하면 사교육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겠는가. 제도와 평가 방식만 바꾼다고 고질적 입시 문제와 사교육 폐해가 사라질 리 만무하다. 공교육 붕괴가 원인이다. 학교는 인성 교육의 장이 아닌 졸업장 발급소로 전락했다. 친구끼리 노트도 빌려주지 않는 인성 황폐화도 불러왔다. 최근 연이은 교단 내 비극도 공교육 붕괴가 원인이다.

 

수치로도 증명된다. 지난해 전국의 고교 자퇴생 수는 2만3440명에 이른다. 2020년 1만5163명에서 3년새 급증했다. 대입에서 정시 비중이 늘고, 내신에서 절대평가가 확대하면서 수능을 위해 학교를 그만두는 사태가 속출한다. 지난해 자퇴생 가운데 1학년이 1만2058명(51.5%)으로 절반을 넘은 건 충격이다. 검정고시만 합격해 수능을 두 번 볼 기회를 얻기 위해서다.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입학생 가운데 검정고시 출신이 2019년 0.7%에서 2020∼22년 0.9→1.2→1.3%로 늘고 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현대의 학교 체제는 19세기 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했다. 산업화 당시 표준화·대량화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나이가 같다고 개인의 다양성과 특성은 무시한 채 동일한 학습 내용과 진도를 강제하는 게 우리의 공교육이다. 개인별 요구와 선택권이 배제되다 보니 학생들은 사교육으로 눈을 돌린다. 내신·수능 1, 2점 차로 합격·불합격이 갈리는 입시 제도가 변하지 않는다는 게 본질이다. 공급자 중심의 공교육을 학생·학부모라는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급선무다. 사교육을 무작정 ‘적’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선택적 보완재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뿌리 깊은 대학의 서열화와 학벌사회부터 뿌리 뽑아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