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가 광주시 등에 ‘정율성 기념사업’에 대해 시정조치를 권고하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이 법적 공방으로 확대할 전망이다. 정율성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광주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건너간 음악인으로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중국 인민해방군과 북한 인민군을 위한 군가 등을 작곡했으며 중국에 영구 귀화해 1976년 사망했다. 광주시는 중국인 관광객 유치 등을 목적으로 그의 생가와 가까운 거리를 ‘정율성로’로 지정했으며, 현재 정율성 기념공원을 조성 중이다.
11일 기자회견에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정율성은 6·25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과 중공군의 사기를 북돋운 팔로군 행진곡과 조선인민군 행진곡 등 군가를 작곡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적군으로 남침에 참여해 대한민국 체제를 위협하는 데 앞장선 인물”이라고 말했다. 정율성이 과거 김일성한테 표창을 받은 사실, 6·25전쟁 도중인 1951년 1·4후퇴로 중공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점령군과 함께한 사실 등을 언급하며 정율성 기념사업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광주시 외에 전남 화순군에도 ‘정율성 고향집’ 전시관과 능주초등학교 내 ‘정율성 교실’ 등 기념시설이 있다. 정율성은 광주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 화순으로 이사해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순군 역시 보훈부로부터 기념사업 중단 권고를 받았다.
이번에 보훈부가 광주시 등에 사업 중단을 권고한 근거는 지방자치법 184조다. 해당 조항은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지자체의 사무에 관하여 조언 또는 권고하거나 지도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보훈부는 정율성 기념사업은 자치 사무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란 입장이다.
박 장관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은 존중하지만 대한민국의 정체성(헌법 제1조)에 배치되는 인물에 대한 기념사업의 설치, 존치에 대해 용납할 수 없으며 권고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지방자치법 제188조에 따라 시정명령을 즉각 발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이 정율성을 기려야 할 이유는 없는 반면 기리지 않아야 할 이유는 많다”고 말한 바 있다.
지방자치법 188조에는 주무부 장관은 지자체의 사무가 법령에 위반되거나 현저히 부당하여 공익을 해치는 경우 시정명령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다만 광주시는 권고는 물론 시정명령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 사안은 법원의 행정소송이나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을 통해 시비를 가려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보훈부는 이날 광주시가 끝내 불북하는 경우 구체적으로 어떤 법률적 조치를 취할 것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법률 전문가들은 소송으로 간다면 정율성 기념관을 위법한 자치 사무로 볼 것이냐가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보훈부는 정율성 기념사업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1조와 국가보훈 기본법 제5조에 따른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인하고 호국영령의 영예를 훼손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기념사업을 지지하는 측에선 보훈부의 시정명령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맞서는 형국이다.
지방자치법의 행정안전부 소관인데 보훈부 장관이 지방자치법에 따른 시정명령을 내리는 것이 적절하냐는 의견도 나왔다. 이에 박 장관은 “지방자치법 소관은 당연히 행안부다. 그러나 내용으로 들어가 예컨대 문화체육 관련된 것이면 문화체육부가 개입한다”며 “국가유공자 예우도 보훈부 장관 소관이고 유공자 폄훼에 대응하는 것도 보훈부 장관의 소관이다. 보훈단체가 (정율성 기념사업을) 항의하지 않나. 보훈부 장관의 나서야 할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