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는 경우 미국이 국제 문제에서 발을 빼고 자국 우선주의 및 고립주의 노선을 취하리란 우려가 크다. 이런 가운데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이 유럽연합(EU) 대표들과 만나 ‘유럽에 대한 미국의 관여 의지는 확고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20일(현지시간)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미국을 방문한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그리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만나 미·EU 정상회의를 가졌다. 미셸 의장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각각 벨기에 총리, 독일 국방부 장관 출신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담에 앞서 그의 삼촌 프랭크 바이든(1999년 별세)의 사례를 꺼내 미·EU 관계가 떼려야 뗄 수 없는 혈맹임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에 따르면 프랭크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다. 미 육군 소속으로 유럽 전선에서 나치 독일과 싸웠다. 특히 벌지 전투(1944년 12월∼1945년 1월) 도중 크게 다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벌지 전투는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 이후 독일로 진격하던 미·영 연합군이 벨기에에서 독일군의 반격에 직면하며 벌어진 전투다. 결과적으로 미군이 승리했으나 한겨울의 혹독한 추위 속에 벌어진 참혹한 전투 끝에 미군도 극심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미군은 작전 도중 부상한 장병에게 퍼플하트(Purple Heart) 훈장을 수여한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프랭크는 퍼플하트 수훈 대상이 되지 못했다. 1972년 바이든 대통령이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 그의 부친은 아들에게 “너도 알다시피 내 동생(프랭크)은 퍼플하트 훈장을 받지 못했다. 네가 그 경위를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현직 상원의원의 권한으로 퍼플하트 수훈을 추진하고 나섰으나 정작 프랭크 본인이 극구 반대했다고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삼촌은 ‘나는 훈장 같은 것을 바라지 않아’라고 말씀하셨다”며 “놀란 내가 ‘왜 그러시느냐’고 묻자 ‘그곳에서 심지어 목숨까지 잃은 이들도 있다. (살아 돌아온) 나는 훈장 같은 건 필요없다’고 대답하셨다”고 말했다.
이에 벨기에 출신인 미셸 의장은 감동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어린 시절 나는 할아버지로부터 ‘2차대전 때 벨기에를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미국 그리고 미국인들이 치른 희생에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는 강한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고 화답했다.
이번 미·EU 정상회담은 미국이 유럽 등 국제 문제에 관여하길 포기하고 고립주의로 돌아설 수 있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열렸다. 야당인 공화당이 다수인 미 하원은 최근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군사원조 관련 금액을 삭제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략 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해 온 무기 등의 공급이 끊길 처지가 된 것이다. 이 판국에 하원은 의장 공백 사태까지 더해지며 예산안을 비롯해 아무런 안건도 다루지 못하는 식물 의회로 전락했다.
여기에 2024년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누르고 트럼프가 당선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트럼프는 과거 대통령 임기(2017년 1월∼2021년 1월) 내내 미국 우선주의를 부르짖으며 동맹국을 무시하고 홀대했다.
이날 미셸 의장은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오늘날 전 세계는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이러한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강력한 EU·미국 동맹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 역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등을 언급한 뒤 “이러한 분쟁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EU와 미국의 밀착 필요성을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