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등산로에서 출근 도중 숨진 교사의 순직 처리를 청구하는 탄원서에 전국 초·중·고 교원과 지역 주민 등 3만4000여명이 이름을 올렸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 서울특별시교원단체총연합회 그리고 유족 측 법률 대리인인 정혜성 변호사(법무법인 대서양)는 23일 오후 서울 동작관악교육지원청에 ‘순직유족급여청구서’를 제출했다. 교총 등의 탄원서에는 전국 초·중·고 교원 1만6915명, 고인의 학교 측이 학부모와 교원, 학생과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모은 탄원서에는 1만7576명 등 총 3만4491명이 이름을 올렸다.
탄원서에는 ‘강력 흉악 범죄로부터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한 사람의 국민이자 동료였던 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이 점차 잊혀가고 있다’며 ‘법과 제도, 사회적 안전망이 선생님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만큼, 국가는 당연히 공무상 재해로 인정해 선생님의 명예 회복과 유족들의 아픔을 위로해야 할 것’이라고 적혔다.
이와 함께 ‘학생들 눈높이에서 지식뿐만 아니라 도덕적 가치와 우애를 심어주던 동료 교사이자,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던 스승이며, 방학 중에도 학생들을 위해 연수를 기획하고 진행하던 열정적인 교육자였다’면서 ‘이른 나이에 교육에 헌신하다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선생님께서 반드시 순직을 인정받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강력한 호소도 포함됐다.
정 변호사는 의견서에서 “고인은 방학 중 5일간 시행되는 교사 자율연수를 기획했으며, 연수 준비와 참여를 위해 출근하던 중 피해를 당한 사실이 객관적 증거에 의해 명백히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쟁점이 되는 출근 경로에서 사건이 발생했는지를 두고는 “‘통상 출‧퇴근 경로는 그 지역 특성, 거리, 소요시간 등 제반 교통상황을 고려해 정해질 수 있고, 최단 거리에 국한되지 않고 합리적인 대체성이 인정되는 복수의 경로가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며 “고인이 평소에 신림동 공원 둘레길을 통해 출·퇴근하는 것을 목격한 인근 주민인 학부모들 및 많은 동료 교사들의 사실확인서 등을 근거로 할 때, 이 사건 사고는 출퇴근 중에 발생한 공무상 재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정 변호사는 강조했다.
고인의 오빠는 이날 교육지원청 앞 기자회견에서 “제 동생은 연수에 참여하기 위해 학교로 출근하던 도중 억울한 죽임을 당해 반드시 순직이 인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여난실 교총 부회장은 “고인은 담임교사는 물론 체육부장에 보직교사까지 맡고 방학 중 자율연수를 기획하는 등 학교에서도 근면 성실했다”며 “개인의 비극을 넘어 사회적 안전망에 경종을 울린 이 사건이 잊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드시 순직이 인정되고 고인의 명예가 회복돼야 한다”며 “유족의 슬픔이 위로받기를 바라며, 천인공노할 범죄는 엄하게 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족 측이 교육지원청에 청구서를 제출하면 공무원연금공단과 인사혁신처가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인사혁신처 심의위원회가 순직 처리 여부를 최종 판단한다. 순직 유족 급여는 공무원이 공무상 부상 또는 질병으로 재직 중 사망한 경우 등에 받을 수 있다.
고인의 경우 신림동 등산로가 통상적인 출근길 경로였다면 순직이 인정될 수 있다. 공무원재해보상법 제4조에 따르면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던 중 발생한 사고는 공무상 부상으로 분류된다. 고인은 평소 출근길로 이 등산로를 자주 이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관악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였던 고인은 지난 8월17일 관악구 신림동 등산로를 거쳐 출근하던 중 최윤종(30)에게 폭행당해 숨졌다.
피해자를 성폭행하려 무차별 폭행하고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최윤종은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정진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자신의 변호인을 통해 ‘입을 막으려 했을 뿐 질식사에 이르게 할 고의는 없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고인이 저산소성 뇌 손상으로 숨진 것으로 조사된 가운데 살해 의도가 없었다는 주장으로 형량을 줄이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윤종의 ‘최소한 사망해도 어쩔 수 없다’는 미필적 고의로 살인에 이르렀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