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안톤 허 “인생을 망쳐도 내 손으로 망쳐야 한다”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서울 홍대 앞 주차장 거리에서 열린 ‘서울 와우북 페스티벌’ 행사장을 찾은 그는, 우연히 부스에서 소설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정보라 작가의 소설집 『저주토끼』였다. 소설집에 실린 단편 「머리」를 읽었다. 곧장 소설 속으로 빨려들었다.

 

“작품을 읽는데, 일단 문장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이러니가 풍부한데, 유머가 살짝 담겨 있었죠. 무서운 이야기인데, 웃기기도 하고, 웃긴 이야기인데, 무섭기도 하고. 스토리 내용도 너무 마음에 들었고요.”

 

2018년 10월, 번역가 안톤 허는 정보라의 소설집 『저주토끼』를 번역하기로 마음먹었다. 현장에서 정 작가와 출판사 대표와 만나서 허락을 받은 뒤, 영미권 출판사를 찾아서 출판 계약을 맺었다. 2021년 책을 번역 출간했다.

 

코로나에 걸려서 격리한 지 거의 일주일이 지난 2022년 초봄 어느 저녁. 그는 혼자 쓸쓸히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도서출판 ‘혼포드 스타’의 편집자 테일러 브래들리에게 온 이메일이 눈에 들어왔다.

번역가 안톤 허 /2023.09.21 허정호 기자

“『저주토끼』 관련 아주 좋은 소식!!!”

 

책이 나온 지 일 년도 안 된 이 시점에서 무슨 좋은 소식이? ... 설마? 그는 이메일을 클릭했다. 정보라의 작품이 부커상 국제부문 후보작으로 올랐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기뻐서 비명을 질렀지만, 힘이 없어 신음 소리가 나왔다. 배우자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눈물을 터뜨렸다. “갑작스러워서 아주, 아주 멋진 교통사고를 당하는 느낌이었다”고, 그는 나중에 책에 적었다.

 

잠시 뒤, 휴대폰에서 다시 이메일 알림음이 들려왔다. 뭐지? 도서출판 ‘틸티드 액시스’의 크리스틴 알파로의 이메일이었다. 설마? “상영씨, 안톤씨, 축하드립니다. 『대도시의 사랑법』이 부커상 롱리스트에 올랐습니다.”

 

오 마이 갓! 정보라의 『저주토끼』와 함께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이 동시에 부커상 후보로 올랐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순간이었다. 특히 정보라의 작품은 최종 후보까지 오르며 큰 화제가 됐다. 그는 부커상 역사상 한해에 두 권의 책을 동시에 후보로 올린 세 번째 번역가가 됐다.

 

2022년 부커상 후보에 오른 정보라의 『저주토끼』와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 두 작품을 모두 번역한 한국문학 번역가 안톤 허가 첫 에세이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어크로스)를 펴냈다.

 

책에는 법대 출신이던 그가 늦은 나이에 문학 공부를 시작해 한국문학 번역가로 데뷔하고 부커상 후보 동시 지명을 달성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삶과 일, 그의 생각이 담겨 있다. 부커상 뒷얘기, 정 작가와의 우정, 영미 출판계를 뒤흔든 사기 사건은 물론 그가 옥스퍼드대와 프린스턴대 등에서 행한 강연록도 담겼다.

 

책에는 문학 번역의 지난함과 어려운 환경 등도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그럼에도 근원에는 한국 문학과 작가, 번역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자긍심이 담겼다. 책 「프롤로그」에서 “내가 주어인 이 일이 얼마나 답답하고, 막막하고, 힘든지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다. 비록 그것이 우아한 기록은 아닐지라도”(7쪽)고 말한 이유다. 책 속으로 들어가면, 능동적이고, 야성적이며, 전복적인 안톤 허가 다가오는 게 보일 지도.

 

“부모님 말은 절대 들어서도, 믿어서도 안된다. 그들은 자기 인생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다. 실수를 해도 자신들의 실수를 하는 것이 낫다. 인생을 망쳐도 내 손으로 망쳐야 한다.”(63쪽) “문학번역에 손을 대기 전 돈 잘 버는 통역사이자 번역가였던 나는 갑질을 하거나 무례하게 구는 외뢰인은 미련 없이 내 인생에서 도려내고 다음 의뢰인을 받았다.”(40쪽)

 

안톤 허는 어떻게 번역의 세계, 특히 한국문학 번역의 세계에 들어오게 된 것일까. 그의 작가적 여로는 어디로 향해 나아갈까. 안톤 허 작가를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편의상 라이프 스토리를 따라 진행됐다.

 

그는 1981년 스톡홀름에서 코트라에 다니던 아버지와 가정주부 어머니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안톤이라는 이름은 고등학교 때부터 사랑했던 소설가 앤토니아 수전 바이어트의 이름에서 따왔다.

 

7살 때부터 작가와 소설가 등 문학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 꿈은 일곱 살 때부터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작가. 소설가. 글로, 문학으로 먹고사는 사람.”(60쪽) 한 번도 변화한 적 없이 꾸준히. 마치 북극성 같이.

―무려 7살 때 작가가 되겠다고 꿈을 갖게 됐다고 했는데, 무슨 계기가 있었나요.

 

“아니요. 대통령이 되고 싶다, 연예인이 되고 싶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 이런 것은 오히려 그 나이 대에 너무 흔한 꿈 아닌가요? 사람들은 성장을 하면서 꿈이 변하는데, 전 안 변한 거죠. 7살 때의 꿈을 이뤘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죠.”

 

―그렇다면 어떤 환경적인 요인이라도 있지 않았을까요.

 

“문학에 대한 관심이 있는 집안이었습니다. 우선 아버지가 외대 영어과를 나오셔서 집안에 영문 소설이 굴러다녔었어요. 전 언어를 도구 정도로만 생각하지만, 아버지는 영어 자체를 너무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이셨어요. 항상 언어 사용에 많은 신경을 써주셨죠. 제가 어떤 신기한 단어를 사용하면 바로 물어봐요. 그거 어떻게 배운 단어냐고. 어떻게 사용하는 단어냐고. 책은 우리 집 문화의 일부였던 것 같고요. 돈은 많지 않아도 책이나 활자는 많이 볼 수 있도록 항상 지원을 해 주셨어요. 『사상계』로 등단한 허의녕 시인이 삼촌이셨고요.”

 

코트라에서 일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 9년 간 국내와 해외에서 생활해야 했다. 스웨덴과 홍콩, 에티오피아, 미국, 태국 등 5개국에서 생활했다. 최종적으로 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한국에서 대학을 다녔다.

 

―학창 시절 국내 및 해외를 왔다 갔다 하면서 보내셨는데, 어땠습니까.

 

“해외와 한국을 번갈아 가면서 적응하는 과정은 참혹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올 때마다 모든 것을 다시 배우고 따라잡아야 했고, 해외에 나가면 다시 언어가 완전히 뒤집어졌으며, 원하는 모범생 상도 너무 달랐거든요. 2~3년마다 갈아엎어야 하는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고, 지금도 엄청난 트라우마입니다. 특히 중학교 시기는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는 최악의 시기인데, 저는 미국과 한국에서 무려 4년이나 보냈어요. 제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의문일 정도로 지금도 트라우마죠. 일주일에 한번 정도 중학교 악몽을 꿔요.”

 

―그래도 해외생활 덕에 영어를 네이티브로 사용할 수 있고 문학번역에 도움이 된 측면도 있지 않았나요.

 

“영어가 거의 네이티브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게 얼마나 의미 있는 건진 모르겠습니다. 번역가 중에서 네이티브 아닌 번역가들도 많고, 부커상을 타거나 노벨문학상을 배출하는 등 최고 레벨의 번역가 가운데 네이티브가 아닌 사람들도 많아요. 자기소개서 같은 곳에나 쓸 데가 있지, 실생활에선 의미가 없어요. 우리나라에서 네이티브에 대한 집착은 아마 계급 문제와 엮어 있는 것 같아요. 실제 번역을 하기 위해 네이티브일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는 9년간 해외 체류를 했을 뿐, 이후 30년 넘게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국내파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통번역에 나서는 해외파 학생들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출중한 영어 실력은 날개가 될 수도 있지만 목발로 걷게 만들 수도 있다. 나는 것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걷는 방법을 까먹어서는 안된다”(30쪽)고.

 

문학을 꿈꿨지만, 그는 부모의 영향으로 고려대 법대를 진학해야 했다. 부모는 문학으로 먹고사는 삶을 상상하지 못했다고, 그는 회고했다. “문학의 문자만 꺼내도 말을 끊으셨다. 문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말하는 도중에 아예 식당에서 나가버린 적도 있다.”(60쪽)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야 비로소 번역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형, 나 이번에 대학을 졸업할 건데. 나도 형 회사에 원서 넣어볼까, 아니면 LG 같은 데 넣어볼까.”

 

그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형의 직장이 있던 수원에서 형을 만났다. 같은 학교 같은 과를 졸업한 뒤 굴지의 대기업에서 일하던 형은 어릴 적 해외에서 성장한 이들 가운데 성공한 케이스였다. 비록 나이는 두 살밖에 많지 않았지만 일찍 입학하고 빨리 졸업해 벌써 일한 지 5, 6년이 다 되어가던 형이었다.

 

“근데 있잖아, 생쥐들의 경쟁(rat race)에 들어오면 쥐들의 왕이 될 수는 있지만, 쥐들의 왕도 그냥 쥐일 뿐이야.” ‘랫 레이스’라는 말로 화이트칼라의 삶을 표현한 형은 말을 이었다. “너 지금 번역 많이 하지 않아?”

 

“이건 그냥 아르바이트일 뿐이야.”

 

“지금 가지고 있는 클라이언트 리스트를 대폭 확장해 그걸로 먹고 살면서, 네가 하고 싶은 문학 공부를 하든지 소설을 쓰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니야?”

 

형을 만난 그는 졸업 예정자를 대상으로 한 대기업 입사 원서를 넣지 않았다. 졸업을 앞둔 1월, 당시에는 거금인 300만 원짜리 번역일이 들어왔다. 2~3일만 하면 되는 서류 번역이었다. 2월에는 다시 단기 통역에 수천만 원을 벌 수 있는 일이 들어왔다. 이때 번역과 통역을 통해서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었다.

 

“졸업 전후 번역과 통역 일을 통해서 적지 않은 돈을 벌고 나서 이걸로 먹고살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단기 통번역을 끝낸 뒤부터 번역을 본격적으로 했다. 그는 형의 조언대로 클라이언트 리스트를 확장해 10년 동안 프리랜서로서 번역을 했다.

 

“해외생활을 했던 영향으로 번역 아르바이트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번역을 했고, 대학교 때엔 주로 번역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대학 1학기를 마치고 집에서 나왔는데, 금전적으로 독립하는 게 중요했죠.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번역 일로 계속 했어요. 다만 대학 시절엔 번역을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했지, 이걸로 먹고 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형의 조언을 들은 뒤에야 본격적으로 번역을 하게 된 것이죠.”

 

프리랜서로 번역을 해오던 2013년, 그는 서울대 영문과 대학원에 들어갔다. 문학 번역과 영문 소설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문과 대학원에 들어간 이유가 좀 복잡한데, 무슨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서 진학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영문학 소설을 쓰는 것이었어요. 문학번역을 하게 되면 출판사 편집자들을 만나볼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한 것이죠.”

번역가 안톤 허 /2023.09.21 허정호 기자

―대학원에서 “글을 잘 쓰지만, 글을 못 읽는다”는 한 교수의 지적을 듣고 크게 깨닫게 되는데요.

 

“면담을 했던 교수님도 저처럼 어렸을 때 해외와 한국을 왔다 갔다 하셨다가 미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나오신 뒤 한국으로 돌아와 교수가 되신 분이셨어요. 성장 배경이 비슷해 저를 꿰뚫어 본 거죠. 저는 미국 학교에서 미국 친구들과 경쟁했을 때도 성적이 최상위였고, 고교를 졸업할 때에는 전교 1등상을 탔을 정도로 영어가 화려했어요. 하지만 책을 읽는 순간은 모두 이해했지만 나중엔 기억이 나지 않았죠. 영어 실력 덕분에 글을 잘 쓰지만, 글을 못 읽었던 것이죠.”

 

면담을 통해서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왜 삼십 대가 되도록 영문학에 미련을 떨치지 못했는지, 대학원에 오게 된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107쪽)를. 그는 당시 “미지의 병으로 오랫동안 투병한 후 드디어 정확한 병명을 듣게 된 환자처럼 어안이 벙벙했다”(107쪽)고 기억했다.

 

“한국에 사는 안톤 허라고 하는데, 신경숙 작가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고 싶습니다. 오디션을 한번 보고 싶군요.”

 

한국문학 번역을 위해 영문과 대학원까지 진학했던 그는 어느 날 신경숙 작가의 에이전트 바바라 지트워(Barbara Zitwer)에게 이 같이 제안했다. 신경숙은 그가 오랫동안 좋아하고 존경했던 작가였다. 바바라는 지금 출간을 생각 중인 작가의 책이 두 권 있는데 먼저 샘플 번역을 해서 보내달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에게 보낸 책은 신경숙의 『겨울우화』와 초기 작품 두 권이었다.

 

하지만 그가 번역해보고 싶은 신경숙의 작품은 장편 『리진』이었다. 왜냐하면 『리진』의 중심 인물은 궁에서 춤추는 여성으로, 그에겐 번역가로 읽혔기 때문이다. 제안 받은 소설 2권에 『리진』까지 신 작가 작품 세 권의 샘플번역을 보냈다.

 

바바라는 그가 샘플로 번역한 『리진』이 너무 재미있다며 『리진』의 번역 출간을 추진해 보자고 제안했다. 『리진』이 미국의 유명 출판사에 팔렸고, 안톤 허는 번역가로 정식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한 차례 계약조건이 변경돼 고생을 했지만, 그는 2018년 장편 『리진』을 번역 출간함으로써 한국문학 번역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저의 첫 번역이 신경숙 작가의 작품이었다는 게 영광이었고 자랑스럽습니다. 미국 출판사가 책을 좀 제대로 홍보했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강해요.”

 

그는 이후 신경숙의 『바이올렛』, 정보라의 『저주 토끼』,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 강경애의 『지하촌』, 황석영의 『수인』, 백세희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BTS의 『비욘드 더 스토리』 등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했다. 오션 브엉의 시집 『총상 입은 밤하늘』 등을 한국어로 옮기기도 했다. 특히 정보라의 『저주토끼』와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2022년 부커상 후보에 동시에 올라 화제가 됐다.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정보라 작가의 작품을 발견해 번역했는데요. 작품을 보는 눈이 대단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런 얘기를 되게 많이 들었지만,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흔한 눈을 가지고 있기에 남들도 좋아할 것이 보인 것이죠. 당연히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부커상도 생각하지 않았고요. 그냥 독자로서 작품이 좋아서 다른 사람도 좋아 할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것밖에 없어요.”

 

―책에선 젊은 작가 박서련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는데요.

 

“박 작가의 책은 거의 다 읽은 것 같습니다. 『체공녀 강주룡』도 너무 재미있고 『마르타의 일』도 재미있는데, 모두 해외에 팔고 싶어요. 재밌게 읽었고 다채로워서 좋아요. 글도 잘 쓰시고, 겁이 또 없잖아요. 보통 등단 시스템 때문에 창의력이 말살된다는 우려가 있는데, 그럼에도 창의력을 발산하는 분들이 간혹 가다가 계시는데, 박 작가님이 그런 케이스죠.”

 

책에서 그는 “한국문학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박서련 작가다. 그녀는 역사소설에서 범죄 스릴러, 최근에는 거대 로봇 소설까지 쓰는 다재다능한 소설가다. 게다가 그 모든 저서들이 장르를 불문하고 재밌게 읽힌다”(76쪽)고 박 작가를 호평했다.

 

―한국문학을 번역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방법은 무엇입니까.

 

“번역가마다 창의적인 의역을 하는 등 스타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원문에 대한 이해가 남다르다고 자부해요. 일단 코리안 네이티브 스피커이고 국문학 전통에서 온 사람이기 때문이죠. 저는 번역을 하다가 막히면 항상 원문으로 돌아갑니다. 원문에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나, 이게 무슨 뜻인가. 원문을 충실하게 따라가려고 하죠. (답은 항상 원문에 있다!) 네, 답은 항상 원문에 있지요.”

 

그는 책에서 “의문이 일거나 번역하기가 힘들 때면 항상 원문으로 돌아가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자세히 살핀다. 답은 항상 원문에 있다. 작가가 번역가가 아닌 원문에!”(70쪽)고 적고 있었다. 그러면서 입말, 구어체에 가깝게 번역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저는 통역에서 시작을 했습니다. 번역이 아니라 통역을 하면 구어체가 더 강조가 되잖아요. 우리말은 구어체와 문어체를 구분하지만, 영어는 문어체와 구어체의 구분이 없죠. 저는 번역을 할 때 사람이 말을 하는 것처럼 번역을 해요. 입말에 더 가까운 번역을 하려고 하죠.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도 점점 더 입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시대를 잘 만난 거죠.”

 

그럼에도 그는 책에서 한국문학 번역에 대한 낮은 인식, 낮은 번역료, 낡은 관행, 관계 기관의 관료주의 등으로 한국문학 번역은 지속가능하지 않는 업종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한국문학 번역은 지속가능한 업종이 아니다. 능력 있는 번역가라면 당연히 비문학 번역 일을 통해 문학번역가 연 수입의 곱절에 해당하는 돈을 벌 수 있다...한국문학 번역은 사정이 다르다. 시장은 수업이 배출되는 문학번역가 지망생 가운데 일부도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수많은 젊은이들이 시간 낭비를 하게 만들고 엄청난 절망만 안기는 것이 현재 한국문학 관련 정책들이 현주소다.”(89쪽)

번역가 안톤 허 /2023.09.21 허정호 기자

―책에서 한국문학번역원을 비판한 대목은 인상적이었는데요.

 

“저는 중학생 때부터 동시통역을 하는 등 번역을 20년 넘게 해 왔습니다. 저에게 번역은 굉장히 쉬운데, 그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너무 싫어요. 말이 안 됩니다. 우리가 프로포즐을 만들고, 에이전트 일을 대신 해야 되는 상황들, 이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부당함 등이 굉장히 힘들어요. 체제적인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요. 한국문학번역원은 번역가에 대한 지원이 그냥 없다고 봐야 돼요.”

 

그는 책에서 “한국문학번역원은 국제행사 개최, 에이전트나 번역가가 성사시킨 계약에 대한 금전적 지원 등 실질적 중요성은 있어도 번역가에 비하면 오히려 훨씬 수동적인 역할을 맡는다. 실은 어떤 유의미한 출판 세일즈 활동도 하지 않는다고 보는 편이 진실에 가깝다”(23쪽)고 지적했다.

 

―번역가의 하루 루틴은 어떻게 되나요? 오후 네 시면 키보드에 손을 뗀다고 하셨는데요.

 

“아침에 일어나서 이메일이나 트위터를 확인하고 이메일에 답장을 합니다. 제 직업은 이메일을 쓰는 사람이죠. 번역은 그 옆에 붙어 있는 것이고요(웃음). 오후에 작업실에 가서 점심을 먹고 2~3시간 정도 번역을 합니다. 오후 4시에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요.”

 

그는 “번역을 하는 일 자체는 오히려 쉽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번역 계약을 따오는 과정은 정보의 불균형 속 베일에 가려진 해외 출판업계에서 매일같이 빛을 찾아 헤매는 과정이나 매한가지다. 장벽을 넘는 일, 다시 말해서 번역 출판 계약을 따내는 작업이야말로 하루의 일상 가운데 8할을 차지한다. 요약하면 번역 계약을 성사시키는 작업에는 번역을 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20쪽)고 적었다.

 

책을 읽고 인터뷰를 하는 내내, 번역가 안톤 허는 하지 말라고 하지 않는 이상 과감히 도전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제목처럼. 아니, 어쩌면 하지 말라고 한 것조차도 단호히 거부하면서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삶을 살아온 지도 모르겠다. “인생을 망쳐도 내 손으로 망쳐야 한다”는 신조로. 프리랜서 번역가로, 한국문학 번역가로.

 

독보적인 한국문학 번역가로 성장한 그는, 이제 국제적인 소설가로 데뷔도 앞두고 있다. 미국 유수의 출판사인 하퍼콜린스의 임프린트 ‘하퍼비아’와 계약, 내년 여름 영문소설 출간할 예정이다. 한국 출판사에서도 한국어 소설을 펴내기로 했다. 그의 미래는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미래를 상상해 나갈 즈음, 언뜻 2022년 11월4일 프린스턴대에서 그가 했던 강연이 떠올랐다.

 

“창작은 제 번역의 일부일 뿐이고, 번역 일도 결국 제 독서 행위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저의 가장 중심적이고 근본적인 정체성은 독자로서의 정체성이고, 그 이외의 것들은 모두 거기서 비롯됩니다. 제가 이런 번역가인 것, 이런 작가인 이유는 바로 독자로서의 자부심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2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