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경찰 코스프레

키아누 리브스와 패트릭 스웨이지가 주연한 ‘폭풍 속으로’(Point Break)는 서핑을 주제로 한 범죄영화다. 1991년 개봉한 이 영화에서 은행털이범들이 카터·존슨·닉슨 등 미국 전직 대통령 가면을 쓰고 은행을 터는 장면은 서핑만큼이나 강렬했다. 사회와 권력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가면을 쓰고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을 자유롭게 영화에 담을 수 있다는 사실도 부러웠다. 민주화의 봇물이 터지기 시작한 당시 국내 사정을 감안하면 더욱 그랬다.

게임이나 만화 속의 등장인물로 분장하여 즐기는 코스프레(cospre)는 잠깐이라도 좋으니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만들어졌다. 기원이 된 서양의 가장행렬과 가면무도회, 귀신 분장을 하는 핼러윈파티 또한 그렇다. 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복장 놀이)는 1960년대 미국에서 공상과학(SF) 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우주인 등 주인공 의상을 입고 홍보하기 시작하면서 유행했다. 이것이 1970년대 일본으로 옮겨가 오늘날 코스프레로 자리 잡았다. 간섭받지 않는 자유가 내재돼 있다.



경찰청이 다음 달 5일까지인 핼러윈 주간에 경찰 복장의 판매·착용 행위를 집중 단속한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경찰공무원이 아닌 일반인이 경찰 제복 또는 이와 유사한 복장을 착용하거나 경찰 장비를 소지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이를 어기면 6개월 이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대여하거나 판매할 경우 처벌 수위는 더 높아진다. 경찰이 놀이에 제한을 뒀다는 사실을 새삼 각인시키기는 이례적이다.

경찰 등 특정 제복에 특별한 매력을 느낀다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제복 코스프레가 인기를 끄는 이유다. 제복이 갖는 권위나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반면 경찰 코스프레가 많아지면 규율과 강제성이 무너지고 범죄 증가와 혼란을 부추기게 된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 때도 경찰 코스프레를 한 시민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실제 출동한 경찰을 시민으로 오인해 통제에 따르지 않고 사고 수습이 늦어졌다는 지적이 있었다. 놀이에 빠져 현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건 곤란하다. 비극의 재발을 막는 데 필요하다면 경찰 코스프레 단속은 감수해야 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