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종식과 러시아

러, 우크라전에 몰입하는 사이
분리독립 위해 싸워왔던 NKR
아제르바이잔으로 통합 결정돼
중동사태도 ‘불구경’돼선 안 돼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제르바이잔 영토 안에 위치한 소수민족 거주지이다. 면적은 충청남도의 절반을 조금 넘는 4400㎢이고, 인구는 약 12만명을 헤아린다. 주민의 95%가 아르메니아계이다. 이 지역은 지리적 위치와 인구 구성으로 인해 오랫동안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 각축의 대상이었다.

갈등이 표면화된 것은 소연방 중앙정부의 지방에 대한 장악력이 크게 떨어질 무렵부터였다. 그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1991년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인들은 스스로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NKR)’을 선포했다. NKR을 지지하는 아르메니아와 NKR에 대한 자국의 주권을 주장하는 아제르바이잔 사이에 갈등의 골은 나날이 깊어졌다. 급기야 양측은 1992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전쟁을 벌였다. 1994년에 끝난 1차 전쟁에서는 아르메니아군이 승리해 NKR은 물론 아제르바이잔 영토의 8%에 해당하는 서부와 남부 국경 지역을 장악했다.

장덕준 국민대 교수·유라시아학

1994년 휴전 이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중재와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양자 회담 등 NKR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련의 협상이 진행되었으나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2005년경부터 국제유가의 상승세 덕을 본 산유국 아제르바이잔은 군비를 대폭 증강했다. 2015년 기준으로 아제르바이잔의 국방예산은 48억달러로 아르메니아의 10배를 넘어섰다.



군사력에서 확고한 우위를 차지하게 된 아제르바이잔은 NKR과 주변 지역에 대한 현상 변경에 돌입한다. 마침내 2020년 9월27일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사이에 2차 전쟁이 벌어졌다. 6주간 지속된 이 전쟁에서 드론, 중포 등으로 무장한 아제르바이잔이 상대를 압도했다. 11월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중재로 성사된 휴전으로 아제르바이잔은 1차 전쟁 때 뺏겼던 영토를 수복했다. 휴전 협정에 따라 아르메니아의 니콜 파시냔 총리는 NKR에 대한 아제르바이잔의 주권을 인정했다. 그 대신 NKR과 아르메니아를 잇는 ‘라친 회랑’의 안전보장을 위해 러시아 평화유지군 1960명이 배치됐다.

아제르바이잔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23년 9월19일 아제르바이잔은 테러분자들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나고르노카라바흐를 기습 공격한 지 하루 만에 NKR 지도부의 항복을 받았다. 2024년 1월1일자로 ‘아르차흐 공화국(NKR의 별칭)’은 해체될 예정이다. 아르메니아군은 이곳에서 완전 철수했다. 이로써 분쟁은 종식되었다.

그런데 NKR의 붕괴 과정은 여러 가지 뒷맛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러시아가 보여준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 6월 아제르바이잔군이 나고르노카라바흐에 포격을 가하고 라친 회랑의 인도주의적 통로를 차단했을 때 러시아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지난달 아제르바이잔의 공세 때 크렘린 측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긴 했으나 사태를 방관했다. 러시아는 왜 전통적인 우방이자 군사동맹국인 아르메니아를 지원하지 않았을까. 무엇보다도 러시아는 2020년 2차 전쟁 이후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의 무게추가 아제르바이잔으로 기운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게다가 최근 아르메니아의 친서방 행보도 러시아의 입장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아르메니아는 자국 내에서 미국과 함께 연합훈련을 실시해 러시아 측의 반발을 샀다.

지정학적인 요인도 한몫을 했다. 최근 수년간 러시아는 튀르키예와 외교, 군사·안보, 에너지 등 다방면에서 긴밀한 유대관계를 발전시켜왔다. 튀르키예는 아제르바이잔의 후원국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구도와 최근 나고르노카라바흐 사태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은 서로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느라 러시아는 이제 역내 안전 보장자의 역할을 맡을 여력이 없다는 시각도 있다.

특정 지역에서 지정학적 충돌이 일어나면 그 불똥이 다른 지역에 튀기도 한다. 러시아와 서방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몰입하는 사이에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운명은 판가름 나버렸다. 이것은 우연일까.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 피어오르는 자욱한 화염은 그저 ‘강 건너 불’일 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