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의대, 1938년 시작한 성인 발달 연구 재학생·10대 빈곤층 그룹 나눠 삶 추적 조사 85년간 84%가 지속 참여… 자녀들도 동참
건강·행복 관련 운동·소득 등 수많은 변수 ‘좋은 관계’가 단연 행복에 가장 큰 영향 결론 “가족·친구 등과 관계는 좋은 삶 추동 엔진”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 탐구 보고서/로버트 윌딩거·마크 슐츠/박선령 옮김/비즈니스북스/1만9500원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행복의 의미가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진다면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가 무엇인가’로 질문을 바꿔보자.
이 질문을 2007년 밀레니얼 세대에게 던졌더니 응답자의 76%는 ‘부자가 되는 것’이라고 했고, 50%는 ‘유명해지는 것’이라고 답했다. 10년이 지나 같은 질문을 했더니 명성에 대한 우선순위는 낮아졌지만 돈 많이 벌기, 성공적인 경력 쌓기, 빚 없이 살기 등이 여전히 우선순위에 있었다.
세대와 국경을 넘어 공통적인 답변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행복한 삶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하버드대학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긴 연구를 시작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미국이 대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투하던 1938년 하버드대 의대 성인 발달 연구소는 하버드대 2학년 재학생 268명과 보스턴 최빈곤층 10대 후반 456명을 두 그룹으로 분류해 그들의 삶을 추적 조사했다. 85년간 84%의 참가자들이 연구에 지속해서 참여했고, 이 중 60명은 90세를 넘겼으며 이들의 자녀 1305명도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신간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 탐구 보고서’(원제: The Good Life, 비즈니스북스)는 세계 최장 연구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하버드 성인 발달 연구’를 집대성한 책이다.
하버드연구소는 행복에 미치는 다양한 요인을 분석하기 위해 참가자들의 건강상태와 직업 특성, 친한 친구 수, 취미와 여가활동뿐 아니라 정량화하기 힘든 직업 만족도, 결혼 만족도, 갈등 해결 방법, 결혼과 이혼이 끼친 심리적 영향 등을 정기적으로 조사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역시 이 연구의 참가자 중 한 명으로 연구자들은 그가 선거 때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도 알고 있다.
85년간 수천 개의 질문을 던지고 수백 가지를 측정해서 얻은 결론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유지해 주는 것은 ‘좋은 관계’다. 건강한 식단부터 운동, 소득 수준에 이르기까지 건강이나 행복과 관련된 많은 변수 가운데서도 특히 좋은 관계가 가득한 삶은 그 힘과 일관성이 두드러진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연구대상 중 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인 존 마스덴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하버드대와 시카고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됐다. 같은 시기 중산층 가정 출신으로 하버드대를 졸업한 레오 드마르코는 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그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그는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고등학교 교사가 됐고, 일을 시작한 첫해 그레이스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존의 연봉은 레오의 3배에 달한다. 하지만 존은 두 번의 결혼에서 사랑받은 기억이 없다고 했고, 그의 인생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반면 낮은 수입으로 아픈 홀어머니까지 돌봐야 했던 레오는 연구 참여자들 가운데 가장 행복한 사람 중 하나로 기록됐다.
인간에게는 ‘행복설정점’, 즉 행복의 기준을 결정하는 수준이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하거나 더 슬프게 만드는 일이 발생한 후에는 점차 무뎌지면서 우리가 항상 느끼던 일반적인 행복 수준으로 돌아온다. 복권 당첨자들도 당첨된 지 1년이 지나면 행복이라는 측면에서 우리와 똑같아진다고 한다.
정서적 행복은 무한대로 향상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억대 연봉을 받거나, 새로운 직장을 구하거나, 새 차를 구입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상황에 금세 익숙해진 뇌는 다음 목표, 다음 욕망을 추구한다. 복권 당첨자라 해도 영원히 행복할 수는 없는 이유다.
다른 종단연구에서도 가족, 친구, 공동체와 많이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연결이 부족한 사람보다 더 행복하고 신체적으로도 건강하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줄리앤 홀트-룬스타드 연구진(2010년)이 전 세계 총 30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도 모든 연령대와 성별, 민족에서 강한 사회적 연결은 더 오래 살 가능성을 50% 이상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로운 사람은 수명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타인과 유대가 가장 적은 사람은 가장 많은 사람에 비해 사망률이 2.3(남성)∼2.8(여성)배나 높았다. 이는 흡연과 암 발병의 관계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큰 연관성이다.
저자는 ‘관계는 좋은 인생을 추동하는 엔진’이라고 말한다. 좋은 엔진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이며, 관계를 통해 얻은 순간적인 경험이 동력이 되어 좋은 삶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반면 문제는 타인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의 혁신으로 촘촘하게 연결된 세계를 살고 있지만, 외로움과 사회적 단절의 그림자는 더 짙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관계의 중요성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질병이 확산되고 봉쇄가 시작되면서 불가분의 관계인 우리 몸과 마음은 고립 스트레스에 반응했고, 사람들은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를 깨달았다.
저자들은 좋은 삶은 목적지가 아니라 길 자체이고 그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시작하기 위해 지금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을 한 명 떠올려보라고 제안한다. 그(녀)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이고,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주었는지, 그리고 다시는 그 사람을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당장 그에게 눈을 돌리고 얘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