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용사 아들 펜스, 美 대권 도전의 꿈 접다

트럼프가 찍은 '배신자' 낙인 끝내 못 떨쳐내
선친 에드워드 펜스, 6·25 당시 장교로 참전
중공군과 전투에서 공 세워 '동성훈장' 수훈

6·25전쟁 참전용사의 아들인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이 2024년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하려는 꿈을 접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그에게 찍은 ‘배신자’ 낙인에서 비롯한 낮은 지지율 때문인데, 한·미동맹 강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다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28일(현지시간) AP 통신 등에 따르면 펜스는 이날 네바다주(州)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공화당의 한 행사에서 “많은 기도와 숙고 끝에 대선 캠페인을 오늘 부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는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주요 후보가 중도 하차를 선언한 것은 이번 펜스의 사례가 처음이다.

2017년 4월 방한한 마이크 펜스 당시 미국 부통령이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고 있다. 펜스의 부친 에드워드 펜스는 6·25전쟁 참전용사로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 훈장도 받았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펜스가 꿈을 접은 것은 낮은 지지율과 그에 따른 정치자금 모금액 부족 탓이다. 그는 올해 6월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한 경선 레이스 도전을 선언한 뒤 줄곧 10% 미만의 낮은 지지율에 머물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자연히 경선에 필요한 정치자금을 모금하는 데에도 한계를 겪었다. 로이터 통신은 10월 들어 펜스 캠프는 자금 부족 탓에 제대로 선거운동을 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현재 64세인 펜스는 40대 초반이던 2001년 인디애나주에서 공화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이래 6선을 기록했다. 2013년에는 인디애나 주지사 후보로 출마해 역시 승리했다. 주지사 시절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점을 눈여겨 본 트럼프에 의해 2016년 대선의 러닝메이트로 발탁됐고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부통령이 되었다.

 

펜스는 2017년 1월 출범해 2021년 1월까지 4년간 이어진 트럼프 행정부 임기 거의 대부분을 ‘2인자’로서 대통령에 충성하며 보냈다. 하지만 2020년 11월 대선 이후 트럼프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한테 진 것이 분명한데도 트럼프가 ‘선거 사기’ 주장을 펴며 대선 불복을 이어가자 결국 그와 결별하는 길을 택했다. 트럼프는 선거 이듬해인 2021년 1월6일 그를 지지하는 폭도들이 “대선 결과를 번복하라”며 연방의회 의사당을 습격했다가 실패로 끝난 1·6 사태 이후 펜스를 “비겁한 배신자”라고 맹비난했다.

 

이에 펜스는 “나는 헌법을 수호하려 했을 뿐”이라고 항변했으나 트럼프가 한 번 찍은 낙인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트럼프 밑에서 부통령까지 지냈으면서도 결국 트럼프 지지자들의 외면과 냉대 속에 쓸쓸히 정치인생을 마감하게 됐다.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공화당의 한 행사에 참석해 공화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에서 중도 하차할 뜻을 밝힌 뒤 손을 흔들고 있다. 왼쪽은 부인 카렌 펜스. AFP연합뉴스

펜스는 부친이 6·25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워 훈장까지 받은 참전용사의 아들로, 한국과 인연이 남다르다. 그의 부친 에드워드 펜스는 6·25전쟁 참전용사다. 1952년 소위 계급장을 달고 한국 전선에 투입된 에드워드 펜스는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 1953년 4월15일 동성훈장(Bronze Star Medal)을 받았다. 부통령 시절 아들 펜스는 백악관 집무실 벽에 아버지가 훈장을 받는 사진과 그 훈장을 걸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문재인정부 출범 직전인 2017년 4월 부통령 자격으로 방한한 펜스는 가장 먼저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했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을 통해 “아버지가 수십년 전 떠난 그 나라(한국)에 셋째 아들이 돌아온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며, 또 당신의 헌신 덕분에 자유롭고 번영하는 한국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떠올렸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