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에도 이렇게 준비했다면….’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28일 밤 찾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는 1년 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핼러윈(10월31일) 주말을 맞았다. 지난해의 75% 정도로 줄어든 인파에 추모 분위기가 더해지면서 ‘핼러윈의 성지’라고 불렸던 예년 이태원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자리를 채운 건 안전사고에 대한 만반의 준비 태세와 추모의 발걸음이었다. 축제를 즐기는 분위기도 일부 공존했지만 전반적인 공기는 차분했다.
이날 오후 9시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 내려 1번 출구로 나가는 동안에만 형광 조끼를 입은 안전 요원 10여명과 마주쳤다. 지하철 역사에는 이태원 골목별로 일방통행 입구와 출구를 나눠 명시한 지도가 붙어 있었다. 거리로 나오자 고개만 돌리면 인파를 관리하는 경찰, 구청 관계자들이 보였다. 대로에는 경찰차와 구급차들이 줄지어 대기 중이었고, 한쪽 차로 일부를 통제해 도보 가능한 구역이 넓어져 있었다. 녹사평역 쪽에는 경찰·소방·구청 등 유관기관이 모인 합동 현장 상황실이 마련됐다.
해가 진 뒤에도 한산하던 이태원 거리는 오후 9시 반 이후 다소 북적이기 시작했지만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도 통행에 지장이 될 만한 인파는 모이지 않았다. 서울시 실시간 도시데이터에 따르면 핼러윈 주말인 27일과 28일 오후 8~10시 이태원관광특구 일대 인파는 1만2000~1만4000명 수준을 보였다. 용산구 관계자는 “28일 6호선 이태원역 이용객은 전년 토요일 기준으로 75% 감소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참사의 시작점이었던 해밀톤호텔 뒤편 세계음식문화거리로 들어서자 양방향 통행로를 구분하기 위해 설치된 경찰 울타리가 눈에 띄었다. 300m가량 길게 쭉 이어진 이 길을 높이 1m, 두께 30cm의 질서유지용 울타리가 반으로 갈랐다. 인파가 순식간에 몰리더라도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이들이 뒤엉킬 위험이 없었다.
159명의 희생을 딛고서야 나타난 변화에 시민들은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다. 30대 직장인 조모씨는 “국가가 진작 했어야 할 조치들을 이제야 하고는 시민이 안전함을 느끼는 현실이 다행스러우면서도 너무 안타깝다”며 “1년 전 이러한 대비를 하도록 지시하지 않은 이들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이 조성된 사고 골목은 평소보다 많은 이들이 다녀갔다. 음료수와 간식, 꽃을 내려놓고 잠시 묵념한 뒤 돌아서는 발길이 이어졌다. 위로의 말로 가득한 추모의 벽 옆에서 활동가들은 참사 1주기를 맞아 준비한 보라색 팔찌와 리본 등을 시민들에게 건네며 “이태원 참사를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이날 이태원에서 핼러윈 분장을 한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태원관광특구 초입에 있는 유명 생활용품점에는 예년과 달리 핼러윈 관련 용품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 외국인 손님은 “핼러윈 장식을 사려고 왔는데 하나도 없다”며 “참사 기억 때문에 일부러 아무것도 들여놓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일주일 전 주말까지도 거리에 쿵쿵 울려 퍼지던 음악 역시 이날은 확연히 덜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