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1년’ 보랏빛 물든 이태원… 추모객 빼곡한 서울광장 [사사건건]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지 딱 1년이 지났다. 참사가 발생했던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은 보랏빛으로 물들었고, 참사 직후 합동분향소가 차려졌던 서울광장은 다시 한번 희생자를 추모하는 열기로 가득 찼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등은 29일 오후 2시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4대종교(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 기도회를 열었다. 남녀노소, 국적을 불문하고 모인 시민 500여명(주최 측 추산)은 ‘기억하겠습니다’ ‘진상을 규명하라’ ‘재발방지대책 마련하라’고 적힌 보라색 피켓을 손에 들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 기도회를 지켜봤다.

 

이태원참사 1주기인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에서 참사 유가족 및 4대 종교(원불교, 개신교, 불교, 천주교) 관계자, 시민들이 추모시민대회가 열리는 서울광장 방면으로 행진을 하고 있다. 뉴시스

기도회를 듣기 위해 먼 길을 온 이들도, 이태원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기도회를 접한 이들도, 모두 길거리에 멈춰서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시흥에서 온 이은선(25)씨는 “지난해 집에서 사건을 접했던 때가 다시 떠올라 너무 슬프다”며 “지난 1년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참사가 발생했던 골목에 조성된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는 노란 포스트잇에 눌러 담은 애도의 마음이 겹겹이 쌓였다. 아들 김태건(9)군과 함께 포스트잇을 써내려간 임은희(43)씨는 “아들 세대에는 더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현장에 왔다”고 했다. 김군은 “포스트잇에 ‘천국에서는 잘 쉬시라’고 적었다”며 희생자를 기리는 마음을 전했다.

 

현장을 통제하는 경찰에게 참사에 대한 울분을 토하는 시민도 있었다. 검은색 모자를 눌러쓴 한 시민은 경찰을 향해 “그날에나 이렇게 많이 오지. 그날에는 무얼 했냐”고 소리쳤다.

 

◆1년 전처럼…추모객으로 가득 찬 서울광장

 

기도회가 끝나고 유가족과 시민들은 용산 대통령실과 서울역을 지나 서울광장까지 행진했다. 이후 오후 5시부터 8시까지는 서울광장에서 ‘기억, 추모, 진실을 향한 다짐’ 시민추모대회를 진행했다. 유가족협의회는 “159명의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고,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찾고자 절대 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자리”라고 밝혔다.

 

이태원참사 1주기인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기억의 길에서 시민이 추모하고 있다. 뉴시스

해가 진 뒤 쌀쌀해진 날씨 속에도 약 1만명(주최 측 추산·경찰 추산 7000명)의 시민들이 시민추모대회 현장을 지켰다. 이들은 무대에 선 유가족과 생존자 등의 발언에 집중하며 때로는 박수로, 때로는 눈물로 연대했다.

 

희생자 고(故) 김의진씨의 어머니 임현주씨는 아들 의진씨가 참사 당시 입었던 검은색 가죽 재킷과 베이지색 야구모자를 착용한 채 무대에 올랐다. 임씨는 “의진이가 1년 전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자 이태원 핼러윈에 갔던 때 입었던 옷”이라고 설명했다. 임씨는 “어떤 상황에서도 너의 행복과 사랑을 지켜줄 거라고 자신했던 엄마의 믿음이 한순간에 무너졌다”며 울먹였다. 이어 “기가 막히게도 사회적 참사 앞에 분명히 희생자와 피해자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진실을 밝힌다거나, 책임을 진다거나,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면서 “너희들의 억울한 희생의 진실을 희생의 진실은 우리 엄마, 아빠와 별가족들이 반드시 규명할게”라고 다짐했다.

 

고 안민형씨의 누나도 “네가 얼마나 살고 싶었을지 떠올리며 악착같이 하루하루를 살아보려 애썼다”며 “나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마다 너는 그 골목에서 이 숨 한번을 얼마나 내쉬고 싶었을까 생각하며 달릴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고 고백했다. 안씨는 동생을 향해 “고통과 절망, 후회 같은 감정은 내가 다 안고 살아갈 테니 그곳에서는 부모님 걱정도 하지 말고, 아름다운 곳들만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니라”고 전했다.

 

29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에서 생존피해자 이주현 씨가 추도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참사 생존자 이주현씨는 “저는 작년 오늘 이태원 한 클럽 바닥에 있었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고 했다. 그는 “저는 항상 서 있을 것이고 생존자로 남아 그때 상황이 어땠는지 계속 기억할 것”이라며 “(다른 생존자들도) 나중에 언젠가 조금 더 용기 내실 기회가 된다면 저에게 찾아와주셨으면 좋겠다. 함께 하고싶다”고 말했다.

 

서울광장 옆에 마련된 분향소도 1년 전처럼 국화꽃을 들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시민 고영주(27)씨는 분향을 마친 뒤 “너무 평범한, 어쩌면 만났을 수도 있고 앞으로 만날 수도 있었던 청년들이라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세월호 때와 비슷한데 우린 왜 시간이 흘러도 똑같은 장면을 봐야하는지 답답한 마음이 든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 마련된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추모 공간을 방문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거리 찾은 이상민 행안장관

 

한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업무에 복귀한 지난 7월 이후 처음으로 전날 이태원 거리를 찾아 안전 조치 현황 등을 점검했다. 이 장관은 오전에 ‘10·29 기억과 안전의 길’로 조성된 이태원 참사 현장을 방문해 헌화하고 10초가량 묵념했다. 바닥 명판이 새벽에 내린 비에 젖은 모습을 보고는 손바닥과 손수건으로 닦아내기도 했다. 그는 동행한 용산구·경찰·소방 관계자들에게 “최소한 이 지역에서만큼은 사고가 안 나게끔 만전을 기울여주길 바란다”며 “이번에 준비한 대책이 나중에 ‘레거시’(유산)가 되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이 장관은 홍대 거리를 찾아 현장 점검을 한 뒤 “앞으로 참사가 반복되지 않고, 희생자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안전문화 확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이날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행사에 참석했다. 오 시장은 전날 홍대 거리를 방문해 현장을 점검한 뒤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지난해의 큰 아픔을 딛고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27일엔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아 희생자들에게 추모의 묵념을 올렸다며 “다시는 그날과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안전 서울’을 만드는 데 중단없는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