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자금이 금과 은 등 안전자산으로 흐르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이 가자지구 지상전으로 번지는 등 경제 불안전성은 안전자산 선호를 부추겼다. 중동을 비롯한 신흥국 통화가치 불안이 이어지면서 전통 화폐의 대체재로 여겨지는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의 약진도 눈에 띈다.
◆ 증시 약세에 금·은·비트코인 ETF 수익률 급상승
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0일부터 27일까지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중 가장 큰 수익률을 올린 상품은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골드선물 레버리지(합성 H)’였다. 지난 2주간 18.39%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삼성자산운용의 ‘KODEX 은선물(H)’과 ‘KODEX 골드선물(H)’은 각각 9.54%, 9.22% 수익률을 내면서 수익률 상위 3, 4위에 올랐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금은선물’(H·9.20%)과 ‘TIGER 골드선물(H·9.06%)’ 등도 각각 5, 6위에 올랐다. 이차전지주의 주가 급락으로 가격이 상승한 ‘KBSTAR 2차전지TOP10인버스(합성·16.42%)’를 제외하면 상위 수익률을 모두 금과 은 등 대체상품 관련 상품이 차지했다.
이·하마스 분쟁을 둘러싸고 각국 간섭이 많아지고 좀처럼 잡히지 않는 물가에 고금리 장기화 우려까지 커지면서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안전자산 위주 투자 전략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날 오전 9시 기준 금 현물 가격은 온스당 2006.8달러를 기록하며 1811.2달러를 기록한 지난 6일 대비 11% 상승했다.
박승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이 같은 안전자산 선호 추세에 대해 “금융시장이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과 그로 인한 재정적자 확대를 우려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으로도 자금이 몰리고 있다. 가상자산 분석업체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기준 비트코인 가격은 4636만원으로 1주일 전 대비 11% 가격이 급등했다. 글로벌 ETF 시장에서도 ‘프로쉐어즈 비트코인 스트레티지 ETF’(+13.4%), ‘발키리 비트코인 앤드 이더 스트레티지 ETF’(+13.3%) 등 가상자산 관련 상품들이 주간 수익률 상위권에 올랐다.
가상자산은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다. 최근 나스닥지수와 비트코인 가격이 비슷하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었으나 올해 들어 비트코인 현물 ETF가 내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승인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안전자산인 금과 가격이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되면 전통금융사의 자본이 가상자산 시장에 추가로 유입될 확률이 높다. 최근 이·하마스 분쟁으로 신흥국 통화가치가 낮아지면서 비트코인으로 자금유입이 더욱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홍성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전쟁 당사국 국민 입장에서 비트코인은 달러나 금보다 매우 유용한 가치 보존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전쟁이 아니더라도 경제 불안정이 발생해서 통화가치가 급락한다면 비트코인의 가치가 부각된다”고 분석했다.
최근 2300선을 오가고 있는 국내증시는 외국인 자금이 대거 이탈하면서 회복까지 시간이 다소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증권사들은 코스피 전망을 2200대까지 내려 잡았다. 코스피에서 외국인은 이달 들어 지난 27일까지 2조8254억원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이달 3거래일(17, 18, 20일)을 제외하고 모두 매도 행렬 중이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7.74포인트(0.34%) 오른 2310.55에 마감했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코스피는 내년 1분기 불확실한 이벤트가 집중된 고비를 잘 넘겨야 할 듯하다”며 “2024년 50% 이상 이익성장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잔존해 있고 고금리 환경에서 높은 밸류에이션(가치평가)을 받을 수 있을지 부담인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올 연말까지 자율반등이 나오겠지만 가시성 있는 회복은 내년 2분기 이후를 기대한다”고 내다봤다.
◆ 국내 목표한 ‘상저하고’는 불투명
당초 내년 말로 제시됐던 한국 물가상승률 목표(2%) 도달 시점이 늦어질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 파장에 따른 유가 상승 등이 원인이다. 다만 미국이나 유럽보다는 빠르게 목표 수준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됐다. 기준금리 인하 논의의 조건이 물가상승률의 목표수준 수렴이었던 만큼 금리 인하 시점도 연기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이날 BOK 이슈노트 ‘주요국 디스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 둔화) 현황 및 평가’를 발간하고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둔화 속도는 중동사태 등으로 당초 예상보다 더딜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이 밝혔다.
한은은 최근 들어 국제유가 상승 등으로 우리나라, 미국 등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반등하고 있다며, 물가상승률이 상당기간 목표수준을 웃돌 것으로 예상했다. 주요국의 물가목표 수렴 시점은 다소 차이가 있을 것으로 봤는데, 한국은 2025년 상반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2026년, 유럽지역은 2025년 하반기로 예상됐다.
미국과 유럽의 물가상승률 정점이 각각 9.1%(2022년 6월), 10.6%(2022년 10월)로 10% 안팎을 기록했던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정점이 6.3%(2022년 7월)로 비교적 낮아 목표수준으로 보다 빠르게 내려올 것이란 전망이다.
보고서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주요국의 인플레이션 둔화 패턴과 속도가 대체로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원인별로 차별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경우 최근 수요 측 압력과 노동시장 견고함이 약화되고 있지만 비용 상승압력의 파급영향이 지속되고 있다고 짚었다. 반면 미국은 공급 충격에 따른 영향이 완화되고 있지만 수요측면과 노동시장의 물가 압력은 여전히 견조하며 유럽은 성장세 둔화에도 공급 충격의 이차효과와 높은 수준의 임금 상승률이 이어지면서 디스인플레이션이 제약되고 있다고 봤다. 즉, 미국과 유로지역은 수요·임금압력의 영향을 크게 받는 서비스물가 상승률이 높은 수준을 이어가는 점이 물가 둔화 시점을 늦추는 원인 중 하나인 셈이다.
이동재 한국은행 물가동향팀 과장은 “최근과 같이 유가 및 농산물가격이 높은 수준을 이어갈 경우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둔화 재개 시점도 다소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며 “고물가를 경험하면서 경제주체의 가격·임금 설정 행태가 변했을 가능성도 디스인플레이션을 더디게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 당국 금융규제에 주담대 증가폭 완화
지난달 인터넷전문은행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잔액 증가 폭이 7개월 만에 가장 작은 수준을 기록했다. 금융당국의 ‘눈총’에 인터넷은행이 대출 문턱을 높였다는 분석이다.
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뱅크 등 인터넷은행 3사가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인터넷은행의 9월 말 기준 주담대(전월세대출 포함) 잔액은 약 24조954억원으로 전월 말 대비 7125억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3086억원) 이후 가장 작은 증가폭이다.
카카오뱅크의 주담대 잔액은 지난달 5499억원 늘어나 6월(1조4818억원) 대비 거의 3분의 1 토막이 났다. 케이뱅크도 9월 한 달 새 1516억원 늘어나 4월(3240억원) 대비 절반 이하로 줄었다. 지난달 5일 전월세보증금 대출을 출시한 토스뱅크의 주담대 잔액은 110억원으로 집계됐다.
금융당국의 제동에 인터넷은행 주담대 잔액 증가가 주춤했다는 분석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 8월 가계대출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히면서 인터넷은행 주담대를 문제 삼고, 지난달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현장점검을 진행한 바 있다. 이에 카카오뱅크는 8월 50년 주담대 상품에 연령조건을 신설하고, 주택구입자금 목적 주담대 대출 대상을 무주택자로 한정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인터넷은행은 신파일러(금융거래 이력 부족자)에게 자금을 공급한다는 정책적 목적이 있는데, 지금과 같은 주담대 쏠림이 제도와 합치되는지에 대해 비판적 시각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특례보금자리론 금리도 상승해 서민 대출 문턱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한국주택금융공사는 다음달 3일부터 우대형 특례보금자리론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다고 이날 밝혔다. 이에 따라 주택가격 6억원 이하, 부부합산 연소득이 1억원 이하일 경우 신청 가능한 우대형 금리는 연 4.50(10년)∼4.80%(50년)로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