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김진표 국회의장님과 의원 여러분”(지난해 10월25일, 윤석열 대통령 2023년도 예산안 시정연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민생과 국가 발전을 위해 애쓰시는 김진표 국회의장님, 김영주·정우택 국회부의장님, 자리에 함께해 주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님, 이정미 정의당 대표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님,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님,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님, 그리고 여야 의원 여러분”(31일, 윤 대통령 202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
윤 대통령의 31일 국회 시정연설은 최근 여야가 맺은 신사협정(회의장 내 고성·야유·피켓 금지)에 힘입어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지난해 시정연설 당시 민주당 의원 169명이 전원 불참하면서 사상 초유의 ‘반쪽 시정연설’이 됐던 것과 달리 야당 의원들도 자리를 지켰고, 윤 대통령은 이에 화답하듯 여당이 아닌 야당을 먼저 호명했다. 과거와 같은 장내 소란도 일어나지 않았다.
반면 굳은 표정의 민주당 의원들은 한 차례도 박수를 치지 않으며 연설 내내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일부 의원들은 검은색 마스크를 쓰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 윤 대통령이 “합법적인 노동운동은 철저히 보장하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노와 사를 불문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고 있다”고 발언하자 야당 의석이 한때 웅성거리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연단을 오고 가며 의원들에게 악수를 청했을 때도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앉아서 마지못해 윤 대통령의 손을 잡거나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용민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제 그만두셔야죠’. 시정연설 후 대통령이 악수를 청하길래 이렇게 화답했다”며 “국민을 두려워하고 그만두길 권한다”고 적었다.
신사협정을 맺은 민주당이 아닌 진보당 소속 강성희 의원은 연설 내내 ‘줄인 건 예산이 아니라 윤의 임기!’, ‘D-160 반드시 무너뜨린다 피눈물 난다! 서민 부채 감면!’이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조용히 시위를 벌였다.
시정연설에 대한 평가 역시 극명하게 갈렸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이날 시정연설 이후 기자들과 만나 “불필요한 예산 낭비 줄이고 재원을 잘 활용해 약자 복지를 더 촘촘하고 두텁게 하겠다는 것이 분야별로 아주 잘 드러난 것으로 본다”면서 “예산안에 대해 꼼꼼하게 잘 챙겼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설명이 잘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장동혁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윤 대통령은 손을 외면하는 야당 의원을 향해서도 끝까지 다가가 손을 붙잡고 예산안의 진정성을 전달하고자 노력했다”고 했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시정연설에 대해 “실망스럽고 한계가 있었다.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 예산”이라고 했다. 윤영덕 원내대변인도 논평에서 “당면한 경제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이나 국민들의 고단한 삶에 대한 공감, 실질적인 대안은 찾아볼 수 없는 한마디로 ‘맹탕연설’이었다”고 깎아내렸다.
또 본회의장 안에서의 신사협정은 지켜졌지만, 회의장 밖에서 피켓 시위가 벌어지며 신사협정 취지가 무색해지기도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윤 대통령이 도착하기 전인 오전 9시30분쯤부터 ‘민생경제 우선’, ‘국민을 두려워하라’, ‘민생이 우선이다’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대기했다. 윤 대통령은 오전 9시41분쯤 이들이 모여 있는 로텐더홀 계단 앞을 지나갔다. 윤 대통령은 마중 나온 김진표 국회의장과만 인사하고 민주당 의원들 쪽으로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 일부 의원들은 그런 윤 대통령을 향해 “여기 한 번 보고 가세요”, “여기 좀 보고 가”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날 피켓 시위 추진 여부는 전날 당 의원총회에서부터 논의돼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강경파 의원들이 신사협정을 파기하지 않는 선에서 ‘본회의장 밖 피켓 시위’ 추진 필요성을 제기했고, 온건파 의원들은 신사협정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며 반대 의사를 표했다는 것이다. 결국 당 지도부가 시정연설 당일 오전 다시 한 번 비공개 의총을 열고 관련 의견을 들었고 본회의장 밖 피켓 시위를 진행하게 됐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시위가 신사협정 파기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과거 국민의힘이 야당이던 시절에도 로텐더홀 계단에서 시정연설 앞두고 그렇게 (피켓 시위를) 했다”며 “이건 신사협정 위배가 아니다. 최대한 협정을 준수해 제한된 범위에서 우리 의견을 전달한 것”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