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어제 국회 시정연설은 지난해와는 사뭇 달랐다. 제1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의 시정연설 보이콧 사태를 재연하지 않았다. 이 대표도 시정연설에 앞서 가진 5부 요인·여야 지도부와의 환담 자리에 참석해 윤 대통령과 만났다. 윤 대통령은 자세를 낮추고 야당에 손을 내밀었다. 정치복원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었다.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하면서 민주당 의원들에게 악수를 청했다. 단상에서 시정연설을 시작하면서도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에 앞서 이 대표를 먼저 호명하는 예우를 했다. 통상 여야 순으로 호명하는 정치권의 관례를 깬 것이다. 윤 대통령은 “우리가 처한 글로벌 경제 불안과 안보 위협은 우리에게 거국적, 초당적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나라 안팎의 어려움을 설명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초당적 협력을 야당에 요청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예산안 집행과 관련해 수차례 야당을 비롯한 국회의 “협조”를 당부했다. 첨단 산업 분야 세제 지원, 교권 4법 개정 등과 관련해선 “국회의 관심과 협조에 감사드린다”고도 했다. 문재인정부 비판도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연설 후 국회 여야 상임위원장들과 첫 오찬을 가진 것도 달라진 모습이다.
민주당도 여당과 맺은 신사협정대로 윤 대통령 시정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비방 피켓을 들지 않았고 고성과 야유를 자제했다. 이 대표가 제안한 윤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3자 회담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환담 자리에 참석한 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국회 로텐더홀에서 ‘국정 기조 전환’ 등의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한 건 아쉽다. 민주당은 국회 회의장이 아닌 로텐더홀이라 신사협정을 어기지 않았다는 주장이지만 신사협정의 취지를 무색게 한 꼼수다. 원내 제1당답지 못한 비겁한 처사다. 이런 식으로는 진정한 협치를 기대할 수 없다.
윤 대통령과 여야가 가장 먼저 머리를 맞대야 할 부분은 민생이다. 윤 대통령은 “물가와 민생 안정을 모든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총력 대응하겠다”고 했다. 그러려면 야당을 비롯한 국회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윤 대통령은 국정 성과를 자화자찬할 게 아니라 야당과의 실질적인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민주당도 입으로만 민생을 외치지 말고 의석수를 앞세운 입법 폭주와 정부 발목잡기를 자제해야 한다. 대통령과 야당이 시정연설에서 보여준 전향적 태도가 협치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