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인플레이션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자 유럽에서 우크라이나 난민과 아프리카 대륙 이민 문제 등에 강경 대응하는 우파 정당의 득세가 이어지고 있다. 값싼 노동력을 제공받을 수 있지만, 주거비 증가와 범죄율 상승 등 부작용이 뒤따르자 이민자 유입에 엄격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면서 일부 나라에서는 우파를 넘어 극우 성향의 정파가 득세하는 상황마저 벌어지고 있다.
◆이민자 유입 증가에 극우파 전면 등장
중립국 스위스에서는 지난달 22일 실시된 총선에서 우파 성향의 스위스국민당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스위스국민당은 급증하는 이민자 유입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겠다는 정책 노선을 선거 내내 내세웠다.
지난해 9월 이탈리아 총선에서는 극우 성향의 이탈리아형제들(FdI)이 주축이 된 우파 연합이 승리했다. FdI는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파시스트 창시자 베니토 무솔리니 지지자들이 창설한 이탈리아사회운동(MSI)을 모태로 한다.
2018년 총선 때 지지율 4%에 불과했던 FdI는 강경한 반이민 공약을 내세워 제 1당으로 올라섰다. 집권에 성공한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국내에서는 탄탄한 지지 기반을 확보했고, ‘총리 직선제’ 카드를 꺼내 들며 장기 집권을 노리고 있다.
올 들어선 지난 4월 핀란드 총선에서 승리한 우파 국민연합당이 극우 핀란드인당을 포함한 3개 정당과 함께 새로운 연립 정부를 구성했다. 지난 6월 그리스 총선 때는 중도 우파인 현 집권당 압승과 함께 극우 성향의 소수 정당 3곳이 의회에 입성했다.
◆이민자 폭증 대응 백래시 정책도 확산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의 우파와 극우 성향 득세 배경으로 이민자 폭증 현상을 꼽았다. 유럽에서는 자국 노동력 부족으로 외부 인구 유입이 필요했고, 개발도상국에서 이민은 물론 난민과 불법 이주까지 폭발했다. 이민자 증가 현상에 따른 사회 불안, 의무 건강보험 비용의 상승 등이 유럽 내 반발 정서를 자극해 적극적인 정책 도입을 강조해 온 우익 성향 정당들로 표가 이동한 것이다.
‘백래시’(반동) 정책도 구체화하고 있다. 핀란드는 러시아 쪽 국경을 따라 201㎞에 이르는 장벽을 건설 중이고, 그리스도 튀르키예 접경지에 약 145㎞ 길이의 철책을 세운다는 방침이다. 슬로베니아는 크로아티아, 헝가리와의 국경에서 여행자 검사를 위해 경찰을 배치했다.
독일 역시 난민 신청자의 국외 추방을 위한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일 수 있도록 구금 기간을 현행 10일에서 28일까지로 연장하고, 1년 이상 징역형을 받은 범죄자나 밀입국 브로커, 범죄조직 조직원 등에 대한 국외 추방 기준도 완화했다.
영국 이주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앨런 매닝 교수는 WSJ에 “기업들은 인건비 절감과 수익 증대를 위해 로비를 하고, 이에 따라 평균적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보다 더 자유로운 이민 정책이 나오면 이를 억압하려는 포퓰리즘이 증가하는 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 인접 유럽 국가에선 친러 득세
우크라이나와 맞닿아 있는 일부 국가에선 친러 세력이 정권을 잡아 러시아를 억제하려는 유럽연합(EU)의 단합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9월 슬로바키아 총선에서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중단 공약을 앞세운 친러 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이 1위를 차지해 로베르트 피초 총리 내각이 들어섰다. 그는 또 다른 좌파 정당인 흘라스, 극우·친러 정당인 SNS와 연정을 구성했다. 피초 총리는 그동안 유세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단 한 발의 탄약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극우 정권을 13년째 이끌고 있다. 그는 지난달 중국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동해 EU 내에서 비판을 받았지만 러시아와 우호 노선 유지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지난달 말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500억유로(약 71조4000억원) 규모 장기 지원 패키지에 반대 의견을 냈다.
반면, 우크라이나 지원의 가장 큰 창구인 폴란드는 지난달 15일 치러진 선거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에 우호적인 야권 연합이 우파·극우 정당 연합을 이겼다. 야권 연합을 이끄는 도날트 투스크 시민연합 대표는 “민주주의가 이겼다. 폴란드가 이겼다”면서 승리를 선언했다.
◆‘차이나머니 파워’… 親美 중남미 국가들 대만 버리고 親中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집권을 시작한 2016년 당시 대만과 수교한 국가는 22개국이었다. 이후 상투메 프린시페, 파나마, 도미니카공화국, 부르키나파소, 엘살바도르, 솔로몬제도, 키리바시, 니카라과, 온두라스 등 9개국이 단교해 현재 수교국은 13개국에 그친다.
대만과 단교한 9개국 중 파나마, 도미니카공화국,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온두라스 5개국이 중앙아메리카(중미) 국가다. 이들 국가 대부분이 친중과 반중으로 나뉘어 선거를 치렀고 친중파가 승리했다.
대만과의 단교는 거대 시장과 경제력으로 소구한 중국과의 수교로 이어졌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의 영향 아래 대만과 수교했던 중남미 국가들을 하나씩 자국 편으로 돌려세우는 중이다. 중국의 ‘금전 외교’ 위력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온두라스에선 2021년 중국과 수교를 내세운 좌파 야당 후보 시오마라 카스트로가 승리하면서 12년 만에 정권이 교체됐다. 그의 취임식 때 대만 부통령이 참석했지만 온두라스는 지난 3월 대만과 단교를 발표했다. 온두라스가 대만에 노바 파투카 수력발전소 건립을 위한 3억달러(약 4074억원)를 지원 요청했지만 이를 거절하자 등을 돌렸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니카라과는 2021년 다니엘 오르테가사베드라 대통령의 네 번째 연임을 미국이 비판하자 미주기구(OAS)에서 탈퇴한 뒤 그해 12월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했다. 다음해 8월 니카라과는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다.
중미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은 대만 수교국 과테말라 역시 지난 8월 대선에서 친중 성향의 베르나르도 아레발로 대통령이 당선됨에 따라 온두라스처럼 ‘대만 단교 후 중국 수교’의 길을 따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도미니카공화국, 파나마 등 6개국이 회원국인 지역 공동체 중미의회(PARLACEN)는 지난 8월 대만에 20년 넘게 부여했던 ‘영구 옵서버(참관인)’ 자격을 박탈하고 대신 중국을 그 자리에 올렸다.
남미의 유일한 수교국인 파라과이에서는 지난 4월 치러진 대선에서 친대만 집권당 후보가 승리했다. 대만은 파라과이와 외교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됐지만, 경제적 대가를 치러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 남미 국가는 중국에 소고기와 콩을 수출하고 있으나 세계 10대 쇠고기 수출국이자 4대 대두 수출국인 파라과이는 중국의 거부로 그러지 못하고 있다.
내달 결선 투표를 치르는 아르헨티나 대선에서는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파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가 중국과는 절대 거래하지 않을 것을 공약 중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밀레이 후보가 당선될 경우 경제 의존도가 높은 중국과의 관계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