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국 아닌 외국에 기밀유출’도 처벌… 與는 찬성, 野는 신중 ['간첩법' 이번 국회엔 통과될까]

형법 개정안 조만간 국회 소위 상정… 논의 내용 안팎

계류 법안 4건 중 3건 민주당에서 발의
여야 공감 불구 일부 野 의원들 ‘어깃장’

연말 예산 정국·내년 총선 일정 등 감안
사실상 21대 국회 내 처리 ‘마지막 기회’

2004년 첫 발의 이래 번번이 ‘자동 폐기’
韓장관 “국익 지키는 최소 법적 안전망”

‘적국(북한)’은 물론 ‘외국’에 국가 기밀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를 형사처벌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일명 간첩법)이 조만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 상정될 것으로 1일 알려졌다. 예산국회에 이어 내년 4월 총선 등 정치일정을 감안할 때 이번 소위 통과가 불발될 경우 법사위 전체회의를 거쳐 본회의 처리까지 남아 있어 21대 국회에선 처리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사실상 이번 소위가 21대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마지막 분수령이다.

국감 출석한 국정원장 김규현 국가정보원장(가운데)이 1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질의에 답변할 준비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권춘택 국정원 제1차장, 김 원장, 김수연 제2차장. 국회사진기자단

◆여야, 필요성 공감

 

간첩법의 핵심은 ‘적국’은 물론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다. 현행 형법 98조 1항은 ‘적국을 위해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사형,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대한민국의 적국은 북한뿐이다. 따라서 북한을 제외한 그 어떤 국가에 우리의 국가기밀을 넘겨도 현행법으로는 처벌이 어렵다. 이러한 법망 미비를 해소하고자 법조문상의 ‘적국’을 ‘외국’으로 고치자는 것이다.

 

여야 모두 필요성엔 공감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영주 국회부의장과 홍익표 원내대표, 이상헌 의원이 각각 같은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 이개호 정책위의장도 이 의원 법안에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 국민의힘에선 조수진 의원이 유사한 내용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들은 법사위 법안1소위에 계류돼 있다.

 

법안들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4건 중 3건이 민주당 법안이다. 그런데 법사위 등에 따르면 여당은 법안에 찬성하는 반면 민주당 법사위원들이 ‘소극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사위 관계자는 “법안의 취지가 좋아 여야 모두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고 양당 모두 법안을 발의했지만, 정작 논의 과정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당 중진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이다 보니 명시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지만 ‘법원과 합의하지 않으면 법을 통과시킬 수 없다’고 한 의원도 있다”고 전했다. 법원이 기본법인 형법을 개정하는 데 소극적이어서다. 해당 관계자는 “야당 의원들은 이 법이 생기면 검찰, 국가정보원의 힘이 막강해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는 듯한데 불필요한 걱정으로 보인다”며 “국가기밀 누설을 막고 안보를 튼튼히 하는 일을 하는데 보수·진보로 나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간첩법 심사 과정이 기록된 법사위 법안1소위 회의록엔 해당 법을 둘러싼 민주당 의원들의 입장이 담겨 있다. 박주민 의원은 지난 9월 산업기술보호법 등 산업 스파이를 처벌하는 별개의 법안이 있는 점을 거론하며 “국가기밀의 폭을 좁혀야 되는 것 아니냐는 취지”라고 신중론을 폈다. 박용진 의원은 6월 “수천명의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며 “우리 산업계, 특히 반도체 관련 국가 핵심기술을 지키는 데 간첩으로 다 규율하면 끝나는 문제는 아니다”, “간첩으로 딱 규정해서 막아지진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그것(국가기밀)은, 국가기밀 리스트는 어디 있나”라고도 했다. 권칠승 의원도 “(국가기밀 개념이) 그렇게 명확한가”라고 했다.

 

이들은 그러나 최근 세계일보 취재 과정에서는 대체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법안 취지에 동의한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입장이 없다” 등으로 완곡하게 답했다.

 

야당의 지적과 달리 대법원은 1997년 이후부터 국가기밀을 ‘비공개된 것이어야 하고 실질적으로 비밀의 가치가 있는 것에만 국한하는 것’으로 보고 법적으로 매우 좁게 해석하는 추세다. 국방·외교·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정부·국회·법원의 중요 자료나 국책연구소의 중요 정책·기술자료, 국가가 분류한 국가전략기술, 방위산업기술 등이 국가기밀에 해당한다. 따라서 간첩법상 처벌 대상을 ‘적국을 위한 간첩’에서 ‘외국을 위한 간첩’으로 고친다 해서 처벌 대상이 과도하게 확대될 가능성은 상당히 작을 것으로 분석된다.

◆韓 장관 “국민 지키는 최소 안전망”

 

간첩법은 2004년 민주당 최재천 전 의원이 발의한 이래 2011년 같은 당 송민순 전 의원, 2014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이만우 전 의원, 2017년 자유한국당(〃) 이은재 전 의원이 재차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여야 정쟁 속에 뒷전으로 밀리며 번번이 국회 임기 만료에 따른 자동 폐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김영주 국회부의장이 지난해 8·15 광복절을 기해 간첩법을 대표 발의하면서 약 5년 만에 국회에서 입법 논의가 재개됐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도 2016년 간첩법을 발의했지만 국회 임기 만료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와 관련, 홍 원내대표는 지난해 8월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법사위에 논의해보겠다”고 밝힌 뒤 11월 간첩법을 재차 발의하는 등 강한 입법 의지를 보이고 있다.

 

법무부는 안보 및 국익 수호에 철저를 기하려는 입법 의도를 담은 간첩법을 여야가 나란히 발의한 만큼 21대 국회에서만큼은 처리되기를 바라고 있다. 법무부는 “해외의 입법 사례를 검토해보면 간첩 행위를 ‘적국’과 ‘외국’으로 구분하고 있지 않다”며 “‘국가기밀’도 적국에 해당하는 국가기밀과 ‘외국 등’에 해당하는 국가기밀을 별도로 분류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세계일보에 “미국, 중국, 독일, 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적국’에 국한하지 않고 ‘외국’에 대한 ‘국가기밀 누설행위’를 처벌하고 있다”며 “이번에 형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우리 국가기밀이 북한이 아닌 중국 등 외국으로 누설되는 것은 처벌 못 하고, 반대로 그 나라들 국가기밀이 우리나라로 누설되는 것만 처벌되는 누가 봐도 불공정한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장관은 “격변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외국’과 ‘적국’은 가변적이고 상대적인 구분일 뿐”이라며 “이번 형법 개정은 우리 국민과 국익을 지키는 최소한의 법적 안전망이고, 반대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