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타는 일반 제품과 그보다는 잘 타지 않는 준(準)불연제품의 가격 차가 2배 가까이 돼서인지 건축주들이 여전히 불에 타지 않는 제품을 잘 안 쓰려고 합니다. 저희는 하라는 대로 시공만 하죠.”
대형 물류창고의 단열재로 쓰이는 우레탄폼 전문 시공업체 A사 관계자가 말했다. 그는 “요즘은 일반·준불연·불연으로 제품군이 세분화돼 준불연 제품 사용 빈도가 늘었다”면서도 “설계사무소의 건축사가 공사계획을 살펴본 뒤 관할청 허가를 받으면 우리는 시공만 한다. 가격 차로 건축주들이 준불연제품이나 불연제품 사용을 기피한다”고 했다.
최근 화재안전조사를 다녀온 공하성 우석대 교수(소방방재학)는 작금의 실정에 대해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공 교수는 “냉장고·세탁기 같은 가전제품은 좋은 걸 쓰려고 하면서 안전분야에선 무조건 비용을 아끼려고 한다. 안전 관리자 배치를 1명 이상이라고 규정하면 상황에 따라 2∼3명이 필요한데도 무조건 1명만 쓴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2∼3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며 “아무리 법과 제도로 메우려 해도 구멍은 나기 마련이고,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국민의 안전의식을 높이는 게 낫다”고 했다.
한 공사업체 관계자는 “외관상으로 눈으로 확인이 가능한 마감재와 달리 속에 들어가는 단열재는 값비싼 준불연·불연을 써도 좀처럼 표시가 나지 않는다”며 “시공업자는 결국 건축주가 요구하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형 물류센터 화재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가 샌드위치 패널에 대한 안전기준을 강화했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전문가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 직후 시민단체가 작업자의 안전은 물론 향후 시민의 생명을 위협할 값싼 자재를 사용하는 건축주들의 행태를 기업 살인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2021년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때는 원인으로는 선풍기 과열이 지목되기도 했다. 물류센터에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 않은 탓에 노동자들이 선풍기 바람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너무 오랜 시간 가동해 모터가 과열되며 불이 났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공 교수는 “이 사건 이후 과부하 감지용 차단기 외에 전기 불꽃을 감지하는 아크 차단기를 설치해야 한다는 논의가 많았다”며 “그런데 법으로 강제하지 않았고 가격이 비싸다 보니 설치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안전경시 분위기는 현재 크게 바뀌지 않았다. 영국의 ‘기업 살인법’을 벤치마킹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됐지만 인재(人災)를 막기 위한 시스템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다.
‘안전불감증’과 ‘기형적 하청구조’ 역시 안전을 위협하는 주범으로 지목받는다. 40명이 희생된 이천 냉동창고 화재 참사 당시에는 공기 단축을 위해 위험한 작업을 병행했고, 불이 나면 자동으로 작동해야 할 스프링클러, 방화문까지 수동으로 해제해 놨다.
한 공사업체 관계자는 “위험물이 널린 장소에서 용접을 하는 ‘무식한 환경’은 최근 개선되고 있다고 해도 공사업체에 따라 편차가 크다”며 “이른바 1군 건설사는 화재 감시자 배치 등 법률에 따른 여러 안전조치를 준수하고 있지만 소규모 현장은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기형적 하청구조는 ‘위험의 외주화’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안전 규정 준수 여부도 문제지만 하청, 일용, 특수고용 등 파편화된 고용구조가 안전위험이라는 불씨에 기름을 붓는 식이다. 20년차 건설업자는 “원청사는 단가를 낮추기 위해 저가에 하청을 주고, 하청업체는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저가로 공사하다 보니 안전이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현실과 따로 노는 제도, 현장선 무시
여전히 따로 노는 제도와 현실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형 참사가 빈발할 때마다 숱하게 제도를 손질했지만 현장에선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국무회의에서 물류창고 화재 원인 진단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정부도 대형 참사 직후 △화재 감시자 지정·배치 대상 확대 △화기 작업 확인제 도입 △가연성 자재 등의 별도 보관·저장 △용접·용단 등의 화재 예방 조치 범위 확대 등 매뉴얼을 강화했고, 새로운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문제는 정작 현장에선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는 1년에 취약시기 3차례(동절기, 해빙기, 장마철 등)에 벌이는 안전 점검이 거의 전부다.
요식행위에 그치는 안전 점검을 현실화하고, 소방대응훈련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영주 경일대 교수(소방방재학)는 “현장에서 작업하는 개인이 확실한 안전의식을 갖고 수칙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신축 혹은 개보수하는 물류센터의 소방 시설이나 피난 계획 등 화재 안전관리에 더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 교수도 “화재 감시자는 4시간의 기초교육만 받으면 어느 현장에서든 일할 수 있는데, 시간제 아르바이트생을 데려다 놓는 곳도 있다”며 “누구나 안전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와 평택 화재에서 잇따라 동료 4명의 목숨을 잃은 소방노조가 주장하는 화재진압 로봇 전면도입도 제도적 뒷받침과 환경 조성이 안 되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소방관계자는 “화재가 난 건물의 내부 영상을 찍는 드론 등이 이미 보급됐지만 배터리 방전 등으로 추락하면 소방관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아 활용을 꺼리게 된다”며 “안전문제에는 비용에 구애받지 않고 첨단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