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가 배신으로… 집단 속 잊히는 개인의 감정·욕망을 담다 [박미란의 속닥이는 그림들]

심래정, 덧없는 존재의 사소한 항변

직관적 드로잉 낱장이 모여 저마다 이야기로
연속 재생 애니메이션 영상, 표현 매체로 다뤄

투병 환자 일상 보여주는 ‘팔리 박사의 목욕법’
불완전한 존재의 덧없는 희망 풍자 블랙코미디

유명 시구·노랫말 차용 화면에 문구 자주 도입
조각난 장면들에 숨겨진 서사·심리와 맞닿아

검은색 스프레이로 그린 직선들이 비뚤댄다. 선들은 손 가는 대로 휘청이며 흰 벽 위에 격자무늬 타일을 깐다. 어두운 조도의 배경을 비집고 고개 내민 주홍빛 샤워기들, 영문 모를 거울 한 조각. 곳곳의 여백에 작가의 드로잉이 걸리고 크게 비운 두 벽에 애니메이션 영상이 투사된다. 지난달 28일 막을 내린 송은의 전시 ‘파노라마’에서 심래정(40)이 선보인 설치 작업에 관한 이야기다.

심래정은 종이에 손으로 그린 드로잉과 애니메이션 영상을 주된 표현 매체로 다루는 작가다. 펜이나 아크릴릭 잉크 등 가벼운 재료로 그린 직관적 드로잉 낱장이 모여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림 속 장면들을 디지털 스크린 위에서 연속 재생하면 시간성을 지닌 애니메이션 영상이 된다. 그로부터 파생된 오브제들을 특정한 공간에 배치하여 하나의 설치 작업으로 재구성한다.

심래정의 작품들. 송은 ‘파노라마’(2023) 전시 전경. 송은,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대학 학부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젊은모색 2013’과 리움미술관 ‘아트스펙트럼 2014’에 선정되어 주목받았고 2021년 제21회 송은미술대상에 선정되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스페이스 카다로그,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아트스페이스 휴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금호미술관, 송은 등 주요 미술 기관이 연 단체전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13), 도쿄 원더사이트 레지던시(2013), 서울시립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15), 파리국제예술공동체(2018)에 입주해 작업한 이력이 있다.



◆덧없는 희망에 관한 블랙 코미디―‘팔리 박사의 목욕법’

다분히 수상하고, 그만큼 신비로운 방의 정체에 관한 단서는 내부에 놓인 드로잉과 회화, 영상 작품의 내용 가운데 실낱처럼 숨어 있다. 이곳은 작가가 만든 가상의 인물 ‘팔리 박사’의 목욕탕이자 실험실이다. 팔리 박사는 거의 모든 포유류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목욕법을 개발한 유능한 연구자다. 그는 다양한 시도 끝에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삼기를 시도하는데, 실험 도중 스스로 의문의 병에 걸리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박사는 자신이 개발한 목욕법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 의지해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

드로잉 애니메이션 ‘바-스 하우스 팔리 박사의 목욕법’(2023)은 투병 중인 환자의 일상을 비추어 보여 준다. 진흙 덩어리 같은 모습의 환자는 격자무늬 돗자리에 새까만 몸을 드러눕혀 휴식하던 중 하늘에서 떨어진 문서를 받아 든다. 팔리 박사의 목욕법을 광고하는 전단지다. 환자는 치료를 위한 목욕법 실천에 나선다. 냉탕에 들어가려 샤워기로 몸을 희게 세척하고는 곧 지하 실험실에 떨어져 산성 농도를 조절하는 완충 용액에 몸을 담근다. 이내 기계 팔에 의해 또 다른 방 안 120도의 뜨거운 열탕으로 옮겨진 후 음압병실에 들러 인증되지 않은 팔리 박사의 치료법을 시도한다. 영상의 후반부는 다시 한 번 돗자리에 누운 새까만 환자의 모습을 비춘다. 병이 채 낫지 않은 모양이다. 다시 한 번 하늘로부터 목욕법 지침을 광고하는 문서가 떨어지지만 포기한 듯 모닥불에 종이를 던져 태워 버린다.

심래정이 화면을 통해 전하는 이야기들은 냉소적이다. 팔리 박사도, 이름 모를 환자도 확신 없는 행위에 기대어 덧없는 희망을 품다가 금세 좌절하기를 반복한다. 특유의 그림체와 화면 전환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보는 이로 하여금 우울감에 빠지기보다 웃음을 짓도록 유도한다. 비극과 희극이 적절히 뒤섞인 연극을 바라보는 일과 같이 말이다. 존재의 불확실성과 불완전성을 전면에 내세워, 극단적 절망마저 실소로써 휘발시키는 일종의 블랙 코미디처럼.

‘바-스 하우스 팔리 박사의 목욕법’(2023) 영상 스틸 컷.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서사를 조각내기, 글자를 그림으로 부수어 내기

조각난 단편의 장면들은 단서만을 제공할 뿐 세세한 이야기 구조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 관객 앞에 주어진 회화와 영상의 화면은 사건의 단면을 짤막하게 분절하여 모호한 상태 그대로 비추어 보여 준다. 심래정의 작품을 대하는 데 서사에 관한 완벽한 이해는 필수적이지 않다. 화면 안팎의 텍스트는 마치 이미지처럼 기능한다. 전체의 서사는 조각난 단편의 영상 안에, 멈추어 있는 드로잉 속 장면 안에 부분적으로만 갈무리된다.

심래정은 영어 또는 한글로 된 문구를 화면에 자주 도입하는데, 유명한 시구나 노랫말 등에서 차용한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사용되는 언어보다 오히려 풍부한 의미를 함축한 글귀들을 선택하는 것이다. 근작 회화 ‘팔리 박사의 집’(2023)의 화면 속 분할된 구획들은 저마다 투병 중인 팔리 박사의 일상생활을 묘사한다. 화면에 한글로 적어 넣은 글귀는 랭보의 시 ‘감각’과 ‘굶주림’ 등에서 가져온 것이다. 해당 시가 수록된 ‘지옥에서 보낸 한철’을 집필하던 당시에 랭보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격정적 시기를 보냈다. 그러한 폭풍 같은 감정이 투병 중인 팔리 박사의 심리와 닿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의 시구를 화면 위에 끌어왔다.

심래정의 화면 속에서 글자는 자주 그림이 된다. 이유를 묻자 모국어와 외래어를 포괄하여 모든 문자 언어에 대한 낯섦과 불편함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작가는 언어의 함축적이고도 포괄적인 의미를 부수어 내는 일에 몰두한다. 의미보다 형상 자체에 집중하여 글자를 독립된 이미지로서 다루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기의를 지운 개별 기표의 모양새는 회화적 조형 요소에 가깝도록 변모한다. 랭보의 글귀들 또한 그 출처와 의미를 강조하기보다 그저 주위의 드로잉들과 균형을 이루는 선적 조형 요소로서 다루어진다. 조각난 서사처럼, 불명확하여 더 폭넓은 해석의 여지를 지닌 직관적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그에게는 이미 쓰인 시어만큼이나 새롭게 탄생할 이야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나아가 자신이 그린 무엇보다 누군가 발견할 무엇이 흥미롭기 때문에 그렇다.

‘팔리 박사의 집’(2023).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집단 속에서 자주 잊히는 개인의 사소한 항변

심래정의 주제는 집단적 규모의 세상 속 개인의 심리에 관한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한다. 일상의 날들 속 사소한 사건들과 그것에 연루된 관계들, 개인의 감정들, 불온한 욕망들이 작업의 소재가 된다. ‘층간소음’(2012∼2013)은 가상의 건물에 거주하는 입주자들이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겪는 상황을 소재로 제작한 드로잉 애니메이션이다. 층간소음에 시달리던 입주민은 자신의 복수극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건물 지하에 살고 있는 바퀴벌레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바퀴벌레는 나름의 방식으로 입주민에게 도움을 주지만, 그 호의는 입주민의 지속적인 닦달에 의해 고통으로 변질된다. 화가 난 바퀴벌레는 알을 뿌려 입주민 모두를 몰살시키고 만다. 이야기는 그곳에서 끝난다. 그러나 이어지는 에필로그에서, 일상으로 되돌아온 바퀴벌레는 길 가던 다른 사람의 구두발에 밟혀 죽는 비극을 맞이한다. 바퀴벌레의 호의가 일종의 배신으로 되돌아온 상황은 종종 현실의 삶 속에서 목격되는 불합리한 사건들을 떠올리게끔 한다.

심래정. 심래정 제공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이던 시기 제작된 애니메이션 영상 작품 ‘Covid-19’(2020)는 인간의 신체에 깃든 병균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야기다. 추운 바깥 세상을 떠돌던 작은 병균은 우연히 사람의 몸속 따뜻하고 부드러운 장소를 발견하게 된다. 병균은 이곳에 자리 잡고 조용히 살아가기를 희망하지만 면역체계는 이들을 끝없이 공격한다. 인류는 병균을 자신의 몸으로부터 몰아내기 위해 신약을 개발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심래정은 세상에 의해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느끼는 소외감과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전염병을 유발하는 낯선 병균과 공존하며 살아가기에 우리의 몸은 너무나 연약하여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사회는 그보다 강하다.

화면 속 우울과 고통의 덩어리들, 욕망과 절망의 찌꺼기들이 무심한 눈빛으로 이곳을 내다본다. 긍정과 희망을 요구받는 매일의 살아감 가운데 가끔은 실망하고 좌절해도 된다. 그래야 보통의 사람이니까. 다시 일어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쁨의 웃음보다도 내상 앞에 무던한 냉소일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