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의 집은 어디인가―문화유산을 둘러싼 갈등과 분쟁의 세계사/김병연/역사비평사/2만6000원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대표작을 꼽자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빼놓을 수 없다. 사실 ‘모나리자’는 과거 도난당한 채 2년간 행방불명되면서 더 유명해졌다. 1911년 8월21일 ‘모나리자’가 감쪽같이 사라지자 파리 경찰청은 거액의 보상금을 걸고 국경까지 폐쇄했으며, 전 세계 언론도 대서특필했다.
2년 만에 잡힌 도둑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작품을 보호하는 유리상자 설치를 담당했던 이탈리아 태생의 빈첸초 페루자였다. 훔친 모나리자를 이탈리아 골동품 상인에게 팔려다가 체포된 페루자는 재판에서 “애국심으로 한 일”이라고 항변했다. 나폴레옹이 1796년 이탈리아를 정복하면서 약탈해 간 모나리자를 되찾아왔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이탈리아 배심원단을 감동시켰고, 그는 고작 7개월만 복역했다.
하지만 모나리자는 다시 루브르로 돌아갔다.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제자 살라이에게 거액을 주고 합법적으로 산 것이기 때문이었다. 2019년 레오나르드 다빈치 서거 500주년을 맞아 이탈리아에서는 반출의 불법 부당성 여부와 상관없이 “모나리자가 이탈리아 국민의 정체성을 대표한다”며 모나리자 환수 운동이 다시 벌어졌다.
외교부는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고 밝혔지만, 여러 국제 판례를 비교하며 반박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문화유산의 소유권을 둘러싼 논쟁은 이처럼 국가 간 이해관계 뿐 아니라 예술품의 기원국(출처), 취득 과정 등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
신간 ‘모나리자의 집은 어디인가’(역사비평사)는 우리가 지키고 보호하며 미래 세대에게 넘겨줄 문화유산의 도난과 약탈, 환수에 관한 이야기다.
제1·2차 세계대전에서 승전국들은 패전국에 보복하고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예술품을 대거 약탈해 전리품으로 가져갔다. 전쟁 후 반성의 차원에서 채택된 1954년 헤이그협약에서 ‘문화유산’이라는 용어가 국제사회에 처음 도입됐다. 이후 도난이나 불법적으로 반출된 문화유산은 기원국으로 환수하도록 국제문화유산법은 진전을 거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사회 대형 박물관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피탈자의 눈물을 외면하면서 자신들의 전시실과 수장고를 약탈한 문화유산으로 치장하고 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서구 열강이 19세기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문화유산을 약탈할 때 약탈을 금지하는 법이 없었고, 국제조약 불소급원칙을 무기로 20세기 이전에 약탈된 문화재는 환수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국제사회에서 식민지에서 강탈한 문화유산을 반환하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17년 “향후 5년간 프랑스가 소장한 아프리카 문화유산을 잠정적으로 또는 영구적으로 본국에 반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겠다”면서 아프리카 문화유산의 기념비적인 상징인 아보메이 궁전 왕실 유물 26점을 베냉공화국에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했다. 프랑스 국회와 우파 언론이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하며 한 점의 반환이 연쇄적인 반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반발했지만, 1973년 유엔총회에서 소망했던 식민지 약탈 문화유산 해결의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문화재청에서 국외문화재 환수 업무를 담당했던 저자는 ‘키스’로 유명한 구스타브 클림트의 또다른 역작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I’의 소유권 분쟁에서 미국의 한 여성이 오스트리아 정부를 이길 수 있었던 배경, 공룡 화석 경매에서 니컬러스 케이지가 치열한 경합 끝에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를 제치고 27만6000달러에 낙찰받은 화석을 몽골 정부에 돌려주게 된 사연 등도 소개한다. 인간 유해가 문화유산인지, 미국 자연사박물관에서 루스벨트 동상은 왜 철거됐는지 등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함께 약탈 유산이 서구 박물관에서 버젓이 전시되는 현실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