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취업 무한경쟁… 코로나 후유증… 청춘은 아프다 [S스토리-우울증 앓는 2030]

2022년 환자 100만명
청년층이 35% 차지
2010년 노년층 최다
10여년 만에 앞질러

청년 환자는 폭식·과잉 행동 양상
ADHD 의심했다 우울증 진단 많아

거리두기·셧다운 젊은층 고립감 커
SNS 통한 상대적 박탈감도 ‘한몫’
美도 “청소년 정신건강 위기” 선언

우울증 10명 중 3명 극단 선택 시도
30대 사망자 절반 스스로 목숨 끊어
“개인 적극 치료… 사회적 대책 필요”
 #1. 중견기업 7년 차인 30대 남성 A씨는 지난해 회사의 중요한 발표에서 작은 실수를 했다. 이후 한 후배가 팀장과 다른 팀원들 앞에서 이 일을 들추며 공개 망신을 주는 일까지 겪었다. 모멸감을 느낀 A씨는 잦은 술자리로 스트레스를 풀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업무에 잔실수가 늘고, 극도의 무력감을 느꼈다. A씨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의심해 병원을 찾았는데 예상치 못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2. 20대 여성 B씨는 지방대학 졸업 후에 몇 년째 취업에 실패했다. 설상가상 남자친구가 이별을 통보한 이후 그는 두문불출했다. 편의점에 갈 때 빼고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밤새 텔레비전을 봤다. “괜찮다”고 위로하던 가족들도 “언제까지 이럴 거냐”고 화를 내기 시작했고, B씨는 서러운 마음과 한심한 마음이 교차하며 우는 일이 늘며 자해까지 하게 됐다. 결국 가족의 권유로 병원을 찾은 그는 지금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

‘2030’ 젊은 세대의 정신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우울 에피소드와 재발성 우울증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지난해 총 100만명을 넘어섰다. 2010년만 해도 우울증의 35.52%가 60대 이상 노년층이었지만, 이제 2030세대가 이를 역전했다. 2030세대의 우울증이 2010년 22.69%에서 2022년 35.36%로 10여년 만에 13%포인트 가까이 증가하며 60대 이상(30.88%)을 앞지른 것이다.

 

진료 환자 수를 넘어 전체 유병률이 증가했다는 보고도 나온다. 김승재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팀이 지난 3월 대한의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 4.3%였던 우울증 유병률은 2020년 기준으로 5.2%로 증가했다. 특히 중증 우울증의 유병률은 0.4%에서 0.8%로 두 배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 추세에 한국적 증가 추세 더해져

 

2030세대의 우울증 증가는 코로나19 후유증이라는 세계적인 현상에 국내 특수성이 만난 결과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를 ‘네 번째 파고’라고 설명한다. “코로나19 첫 번째 파고가 질병 자체로 인한 사망자 증가라면, 두 번째는 환자 급증으로 의료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치료를 받으면 살 수 있는 사람이 사망하는 상황을, 세 번째 파고는 암 등 만성질환자 치료가 제때 이뤄지지 못한 데 따른 후유증을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파고는 코로나19가 끝난 지금, 정신질환의 증가”라는 것이다.

 

백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셧다운 등의 영향은 가장 활동적 세대인 젊은 층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며 “미국도 ‘청소년 정신건강 위기 선언’을 하고, 회복을 위해 수천억원을 투자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한국의 증가는 더욱 가파르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젊은 층의 우울증이 증가 추세였던 데 따른 것이다. 여기에는 청소년기 과도한 사교육부터 취업 전쟁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무한 경쟁이라는 우리 사회 고질적 문제와 함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발달로 상대적 박탈감이 커진 것이 한몫했다. 과거와 달리 사람들 간 관계의 끈이 단절된 것도 주요 원인이다.

백 교수는 “어려울 때 자신의 말을 듣고,도와주는 사람이 1명만 있어도 자살 예방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서 한국은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72명(평균 88명)으로 꼴찌를 기록했다”며 ‘사회적 지지망’의 붕괴를 우려했다.

 

젊은 층의 우울증은 비전형적인 특성이 두드러지고, 극단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중·노년층 우울증에 비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최준호 한양대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잠을 잘 못 자고, 기운이 없는 것이 우울증의 전형적인 증상인데 반해 2030의 경우 오히려 잠을 너무 많이 자거나, 너무 많이 먹거나, 스트레스를 풀겠다며 오토바이를 타는 등 과도한 행동으로 나타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정신과를 방문하는 젊은 환자는 ADHD 등 다른 질병을 의심해 방문했다가 우울증으로 진단받는 경우가 왕왕 있다.

◆기분·신체·생각 증상 등 다양하게 나타나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딘 후 노년에 우울증이 생긴 경우에 비해 젊은 층은 우울증을 다루는 방식도 미숙한 측면이 없지 않다. 통계청의 연령별 사망원인을 보면 2030의 사망원인은 1위가 극단적 선택에 의한 것이다. 연령대 특성상 질병으로 인한 사망의 확률이 낮다는 점을 감안해도 극단적 선택의 비중이 40∼50%로 상당히 높다. 실제로 우울증 환자의 30%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발이 높다는 측면도 젊은 우울증 증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중증 우울증으로 입원치료를 한 환자의 25%가 6개월 내에 재발한다. 또 2년 이내에 30∼50%가, 5년 이내에 50∼75%가 재발한다.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해야 하는 젊은 시기에 ‘오랜 기간’ 우울증을 겪으며 개인적, 사회적 손실이 클 수 있다는 의미다.

 

박진경 강동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감 자체는 정상적인 감정이다. 다만 만사가 귀찮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 증상’과 ‘나는 왜 살까’ ‘나는 가치가 없어’ 등의 ‘생각 증상’, 불면증이나 식욕부진, 무기력 등 ‘행동 증상’ 등이 나타나면 우울증을 의심할 수 있다”며 “이런 다양한 증상이 2주 이상 지속하고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면 진료를 받아 봐야 한다”고 전했다. △우울, 슬픔, 눈물, 공허함 또는 절망감 △일상적인 활동에 관한 관심·즐거움 상실 △불면증(혹은 과도한 수면) △식욕부진(혹은 과식) △생각, 말하기, 신체 움직임 느려짐 △무가치함과 죄책감 △생각, 집중, 판단 어려움 △극단적 선택 생각 등을 잘 살펴야 한다.

젊은 층의 진료가 늘어났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취업 불이익이나 주위 시선을 의식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질병으로 인식하면서 진료 접근성이 개선됐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흔히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하는데 마음의 감기라고 ‘마음먹기 따라 달라진다’는 식으로 해석되면 안 된다”며 “신경 기능의 이상이 동반된 질병으로 이해하고 약물 등 이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백 교수는 “환자 개인적 차원에서는 꾸준한 치료가 중요하겠지만,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가파른 상승세’에는 우리 사회가 가진 구조적 문제가 작동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회적 대책, 복지 대책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