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비준안을 자국 의회에 제출해 스웨덴을 기쁘게 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이번엔 ‘비준안 가결보다 2024년도 예산안 처리가 중요하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되는데, 연내 나토 가입을 고대해 온 스웨덴으로선 마음이 다급해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나토 가입을 지지하는 대가로 튀르키예가 스웨덴에서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려는 의도라는 분석을 제기한다.
4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전날 카자흐스탄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스웨덴의 나토 가입과 관련해 그는 “우리(튀르키예 정부)가 할 일은 비준안을 의회에 제출하는 것”이라며 “우린 이미 그 일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의회의 비준을 최대한 촉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회에 제출된 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안은 본회의 상정에 앞서 우선 외교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외교위원회 푸앗 옥타이 위원장(전 부통령)은 최근 “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안은 우리가 다뤄야 하는 여러 건의 국제협정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며 “때가 되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들한테 시급한 일이라고 해서 우리한테도 시급한 것은 아니다”고도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도 비슷한 견해를 드러냈다. 그는 “2024년도 예산안을 놓고 의회와 협상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우선순위”라고 말했다. 현재 의회는 예산안 처리가 가장 중요하며 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안은 순위가 밀린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로이터 통신은 “튀르키예 의회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승인하는 절차가 빠르게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스웨덴에 튀르키예를 위한 더 적극적인 조치를 주문하기도 했다. 튀르키예가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규정한 쿠르드노동자당(PKK) 활동의 단속이 아직 미흡하다는 것이다. 그는 “스웨덴 정부가 PKK의 불법시위 대응 등에 관해 몇 가지 조치를 취했으나, 스웨덴에서 이뤄지는 PKK의 일상적 활동은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고 말했다. 나토 가입을 지지할 테니 그 대신 스웨덴도 추가로 양보해야 한다고 압박한 셈이다.
스웨덴으로선 설상가상이 아닐 수 없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튀르키예 의회에 비준안을 제출함으로써 한시름 놓았는데, 그 비준안이 대체 언제쯤 처리될 것인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헝가리도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직접 나서 “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안 처리를 서두르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헝가리의 경우 아직 의회에 비준안이 제출되지도 않은 상태다.
나토는 새 회원국을 받아들이려면 기성 회원국 전체의 비준을 받아야 하는 구조다. 현재까지 튀르키예와 헝가리만이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