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손민수 “한국 음악교육 전 세계에서 큰 관심”

“음악 배우는 학생들, 유튜브 등의 좋은 연주 많이 들으면 위험”…“다른 사람 연주에 귀가 파묻혀 자기 색깔 잃어버릴 수 있어”
“임윤찬은 인연이 될 것 같은 뭔가가 있어 뽑았는데, 나와 비슷한 면 많아”
지휘자도 없고 서서 연주하는 포항음악제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 협연 인상적
3회째 포항음악제 이끄는 박유신 예술감독(첼리스트) “스탠딩 공연은 포항음악제만의 특징…현악기 중심 특화된 음악제 만들어 나갈 것”

“한국의 음악교육에 대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한국 사람으로서 굉장히 자랑스럽고 신기한 부분도 있습니다.”

 

최근 해외 명문 음악대학들이 한국인 교수를 잇따라 영입하는 흐름과 관련해 피아니스트 손민수(47)는 이렇게 말하며 “한국 음악가들이 전 세계 음악가들과 정말 멋지게 교류할 수 있는 세상이 열리는 것 같다”고 반겼다. 지난 3일 경북 포항 북구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제3회 포항음악제 개막 공연을 마치고 만난 자리에서다. 

피아니스트 손민수가 연주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 포항음악제 제공

우리나라 젊은 연주자들이 실력도 뛰어나고 세계적인 음악콩쿠르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두자 해외 유수 음대가 한국 음악교육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동시에 이들 연주자를 키워낸 한국의 스승들을 데려오려는 움직임도 잇따른다. 올해 손민수(한국예술종합학교→뉴잉글랜드음악원)를 비롯해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59·서울대→인디애나음악원), 피아니스트 최희연(55·서울대→피바디음악원)이 미국 명문 음대로 자리를 옮긴 게 대표적이다.

 

이는 한국 교수들의 지도력을 지렛대로 교육 수준을 한층 더 강화하고 세계 각지의 유망한 학생들이 찾아오도록 하는 효과를 기대한 것으로 풀이된다. 스포츠로 보자면 많은 나라가 태권도·양궁 강국인 한국의 지도자들을 자국 대표팀의 감독이나 코치로 앉히는 것과 같다. 

 

지난해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국내외 클래식 스타로 떠오른 임윤찬(19)도 스승인 손 교수를 따라 뉴잉글랜드음악원(NEC)으로 갔다. NEC는 손민수가 임윤찬과 비슷한 나이에 거장 피아니스트 러셀 셔먼(지난달 작고)에게 배운 모교이기도 한다. 그는 NEC에서 임윤찬을 포함해 미국·캐나다·중국·대만 등 다국적 출신 제자 11명을 두고 있는데, 내년에는 17명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손민수는 “(한국 클래식의 저력은) 선생님들의 열정적인 가르침도 있지만 무엇보다 대단한 재능을 가진 학생이 넘쳐나서 그런 것 같다. 한예종에도 기량이 탁월하고 주목할 만한 제자가 여럿 있었다“며 “흥이 많은 한국인의 DNA(유전자)와 무관치 않은 듯하다”고 했다. 

지난 3일 제3회 포항음악제 개막 공연에서 피아니스트 손민수가 지휘자 없이 서서 연주하는 포항음악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는 모습. 포항음악제 제공

이날 협연한 포항음악제 오케스트라의 악장인 토비아스 펠트만(32·독일 라이프치히 펠릭스 멘델스존-바르톨디 음대 교수)도 오늘날 인구 대비 뛰어난 음악가가 제일 많은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고 한다.

 

손민수는 다만 국내외 할 것 없이 요즘 학생들이 다른 사람의 좋은 연주를 언제든지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된 점은 우려했다. “학생 대부분 이미 20∼30가지 버전의 훌륭한 연주곡을 듣고 옵니다. (각 연주의) 장점을 잘 소화해 자기 것으로 만들면 다행인데, 오히려 다른 사람의 연주에 귀가 파묻혀 (본인도 모르게 그 연주를) 따라하게 되고 자기 색깔을 잃어버릴 위험성이 큽니다.”

지난 3일 제3회 포항음악제 개막 공연에서 피아니스트 손민수가 지휘자 없이 서서 연주하는 포항음악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는 모습. 포항음악제 제공

이 때문에 학생들이 유튜브 등에 소개된 연주를 듣는 걸 권장하지 않는다고 한 그는 “사람마다 목소리와 생각이 다른 것처럼 연주에도 자기만의 색깔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윤찬의 경우 유튜브는 멀리하고 단테의 ‘신곡’ 등 고전을 즐겨 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윤찬이 초등학교 6학년일 때 한예종 예술영재교육원 문을 두드리자 눈여겨보고 뽑았던 손민수는 “나와 인연이 될 뭔가가 있는 애 같았는데 (실제 성향 등이) 나와 비슷한 게 많았다”고 돌아봤다.    

 

그는 포항음악제 공연을 마치고 돌아간 뒤 다시 귀국해 오는 23일 서울을 시작으로 대구, 광주에서 독주회를 연다. 탄생 150주년인 라흐마니노프의 ‘회화적 연습곡’을 들려준다. 미국에선 NEC 교수와 총장을 지낸 세계적 첼리스트 로렌스 레서의 85세 생일을 기념해 함께 첼로소나타를 연주하는 무대도 있다.  

지난 3일 제3회 포항음악제 개막 공연에서 피아니스트 손민수가 지휘자 없이 서서 연주하는 포항음악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는 모습. 포항음악제 제공

손민수는 베토벤 음악에 정통한 연주자답게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으로 포항음악제 첫날을 멋지게 장식했다. 지휘자가 없고 바이올린·비올라·목관·금관 연주자 모두 서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처음 해보는 협연이었음에도 호흡이 잘 맞았다. 그는 “지휘자 없이 연주하는 게 좀 어려웠지만 환상적인 순간이었다”며 “서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에서 뿜어 나오는 에너지가 굉장했다”고 말했다. 악장 펠트만과 35년 만에 교향악단 일원이 된 스웨덴 첼리스트 톨레이프 테덴, 이지윤·전채안(바이올린), 김홍박(호른), 성재창(트럼펫) 등 국내외 정상급 연주자가 상당수 포진한 이번 축제 오케스트라의 연주력도 돋보였다.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연주까지 그야말로 축제 주제 ‘신세계? 신세계!’에 걸맞는 인상적인 공연을 선보여 갈채를 받았다. 포항 출신 첼리스트로 함께 무대에 오른 박유신(33) 포항음악제 예술감독은 “포항음악제만 보여줄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한 것 중 하나가 지휘자 없는 스탠딩 공연”이라며 “서서 연주할 때 나오는 에너지가 앉아서 할 때보다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오는 9일까지 포항시 일원에서 열리는 포항음악제에는 바이올린 거장 정경화와 세계적인 현악 4중주단인 스페인 ‘카잘스 콰르텟’,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 주역으로 섰던 소프라노 박혜상 등 국내외 쟁쟁한 연주자들이 꾸미는 다채로운 무대가 마련된다.

박유신 예술감독의 첼로 연주 모습. 포항음악제 제공
박유신 포항음악제 예술감독. 포항음악제 제공

박 예술감독은 “신생 음악제일수록 연주의 질(과 프로그램 수준)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 (국내외) 출중한 연주자가 많이 모이도록 신경썼다”며 “연주자를 섭외하고 프로그램을 짜는 과정이 힘들지만 포항음악제가 현악기 중심의 특화된 음악제로 자리잡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