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상반기까지 공매도 전면금지… 개미 표심 겨냥 ‘총선용 카드’

6일부터… 증시 전 종목 해당
불법 무차입 공매도 적발 계기
10여개 글로벌 IB 전수 조사
불공정 해소 제도개선도 추진
“尹, 불법공매도 시장 병폐 인식”

당정 ‘강드라이브’ 배경은

‘영끌’ 청년투자자들 중심 강한 반감
윤상현 “韓, 글로벌 공매도 맛집 오명”

“국제기준”이라며 반대해 온 금융위
금융위기도 아닌데 금지… 신뢰 추락

與 일각 “보수정당 가치 위배” 부정적
野 강훈식 “환영”… 공식입장은 없어

시장에 미칠 영향은

정부, 가격형성 방해 증거 제시 못해
“자본시장 선진화 역행 조치” 지적도

정부가 6일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코스피·코스닥 등 한국 주식시장에서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외국인·기관의 공매도 때문에 자신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놓여 있다는 개인투자자(개미)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결과다.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 적발이 공매도 금지의 결정적 사유로 작용했으며, 윤석열 대통령은 불법 공매도 세력을 자산 시장의 심각한 병폐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공매도 전면금지 조치 자체가 이례적인 데다 외국인과 기관의 공매도 투자가 특혜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여당인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내 1400만명에 달하는 개인투자자 표심을 의식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금융위원회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에서 내년 상반기까지 주식시장에서 공매도 제도를 금지한다는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5일 오후 임시 금융위원회를 개최해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증권시장 공매도 금지조치’안을 의결했다.

 

이번 결정은 한국 주식시장 역사에서 네 번째다. 정부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2011년 유럽재정위기,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주가가 급락했을 때 공매도를 전면 금지한 바 있다. 지금까지는 코스피200, 코스닥150에 속한 대형주 350개 종목을 대상으로 공매도가 허용되고 있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공동 브리핑에서 공매도 거래조건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소하는 방안과 무차입 공매도 방지 방안 등 제도 개선방안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BNP파리바와 HSBC의 560억원대 ‘불법 무차입 공매도’ 적발을 계기로 10여개 글로벌 IB에 대한 전수조사도 실시한다.

 

그동안 개인투자자들은 올해 주가 하락 원인 중 하나로 외국인·기관의 공매도를 들어 금지를 요구해 왔다. 5만명 이상의 개인투자자들이 국회에 ‘공매도 제도 개선 청원’을 내기도 했다.

 

금융당국 내에서는 윤석열정부 공약 중 하나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 편입을 위해 공매도를 오히려 확대해야 한다는 점, 공매도가 주식시장의 과열현상을 진정시키는 장점이 있다는 점 등 때문에 금지에 신중한 분위기가 강했지만, 내년 상반기 총선을 앞둔 상황임을 고려해 기존 입장을 뒤집은 것으로 분석된다.

 

대통령실은 “자산시장 내 불법 공매도와 공매도를 이용한 시장 교란 행위는 반드시 뿌리 뽑겠다는 각오”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불법 공매도 관련) 공약 이행에 있어 한치의 부족함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이 불법 공매도 세력을 자산 시장의 심각한 병폐로 인식하고 있고, 불법 공매도 전수조사 결정 역시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이라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개미 표심 겨냥 ‘총선용 카드’… 與 압박에 금융당국도 ‘굴복’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을 5개월 앞두고 김포 서울 편입 이슈에 이어 공매도 한시 금지 카드를 빼들었다. 최근 급증한 청년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서 공매도에 대한 반감이 큰 만큼 이번 조치로 청년 표심을 끌어오겠다는 전략이다. 그간 국제기준을 들어 공매도 금지에 반대해온 금융당국은 금융위기 상황도 아닌데 공매도 한시 금지 조치를 내놔 여권의 압박에 밀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與 강한 드라이브에 금융당국 입장 전환

 

국민의힘과 정부는 5일 비공개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고 주식시장 공매도 제한 여부 등을 논의했다. 국민의힘 유의동 정책위의장은 고위 당정 후 국회 브리핑에서 “당은 정부에게 그간 공매도와 관련해 지적돼왔던 여러 제도적 문제점들을 개선해줄 것을 강력하게 촉구했다”며 “시중에서 나오는 모든 문제에 대해 가감 없이 전달했고 정부가 당의 요구를 무겁게 받아줄 것을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앞서 여당 의원들은 공매도 한시 금지 필요성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쏟아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의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우리 투자자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손실과 손해를 입고 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불법으로 인한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게 확인됐다”며 “Short(공매도)의 문제를 Long하게 끌어서는 안 된다”고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윤상현 의원도 SNS에서 “한국 주식시장이 ‘글로벌 공매도 맛집’이라는 오명을 쓰도록 좌시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내년 총선을 앞둔 여권의 압박이 이어지자 그간 국제 기준을 근거로 공매도 금지에 반대해온 금융당국은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를 전면 중단하고 이후 시장 상황을 고려해 재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의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에 일각에서는 총선을 앞둔 여권의 압박에 기존 입장을 뒤집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개인과 기관 간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는 나름대로 개선했다고 보는데 그럼에도 상환 기간이라든가, 담보 비율에서 불공정하다고 느낀다는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겠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금융당국으로서는 정책 신뢰성이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7일 종합 국정감사에서도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의 공매도 중단 및 검토 여부에 대한 질의에 “국내 최고 전문가 도움을 받아 가장 합리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공매도와 관련한 모든 제도 개선을 원점에서 추진할 것”이라며 중단이 아닌 개선책 마련에 방점을 찍은 바 있다.

 

◆청년·개미 투자자 겨냥 ‘총선 카드’

 

여당이 공매도 한시 금지를 다음 총선용 카드로 뽑아 든 것은 특히 청년층 표심을 노린 행보로 분석된다. 코로나19 시기 주식 투자에 뛰어든 청년층이 급증한 상황에서 공매도는 청년층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슈로 부상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한 의원은 통화에서 공매도 한시 금지 추진과 관련해 “표를 의식 안 한다는 건 거짓말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워낙 개미투자자들과 젊은 층에서 공매도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데 정부·여당이 나 몰라라 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 않느냐”라고 덧붙였다. 경제전문가로 평가받는 여의도연구원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최근 주가 하락 상황에서는 공매도 같은 투자 수단이 일종의 시장 쏠림 현상을 가속화해 개인투자자들을 더더욱 속상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며 “그런 측면에서 젊은 개인투자자들의 입장에 대한 정치적인 고려를 해줄 수 있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입장에서 공매도 제재가 무조건 이득인 것만은 아니다. 국제 시장의 기준이나 자유시장경제의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당으로서의 기조와 맞지 않는 행보라는 지적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에서 “공매도를 금지하는 데에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라며 “국제적인 약속이기도 한데 중단했을 때 외국에서 우리 시장을 어떻게 볼지 그런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어 “보수정당은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신봉하지 않나”라며 “당에서 ‘한시’라는 꼬리표를 단 것도 그런 고육지책의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야당이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무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은 “졸속 공매도 개선안, 늦은 발표지만 환영한다”는 입장을 냈다.

 

◆금융위 “글로벌 IB 불공정 근절 위해 금지”…尹 공약 ‘MSCI 선진지수 편입’엔 악영향

 

“외국 주요 투자은행(IB)들의 관행적인 불공정거래가 계속되는 한 자본시장에서 공정한 거래질서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금지했다.”(김주현 금융위원장)

 

정부는 5일 공매도 금지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으로 최근 적발된 글로벌 IB들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 사례를 들었다. 불법 공매도로 인해 증권시장의 공정한 가격 형성이 방해돼 시장 신뢰를 저하시켰다는 것이다. 불법 공매도 근절을 위해 글로벌 IB 전수조사 등의 대책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불법 무차입 공매도로 인한 구체적인 가격 형성 방해의 증거를 내놓지는 못했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공매도 금지 발표 자료에서 지난달 적발된 BNP파리바와 HSBC의 560억원대 ‘불법 무차입 공매도’가 금지의 결정적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처벌 강화에도 외국인·기관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 적발이 반복되면서 국내 주식시장의 공정한 가격 형성을 방해할 우려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질의 응답에서도 “공매도 금지 제도가 나오게 된 이유는 한국의 어떤 특이한 상황 때문”이라고 했다.

 

금융위를 이를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지는 못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주가 변동성이 불법 공매도와 직접적으로 연관됐다는 데이터가 있느냐’는 질문에 “직관적으로,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불법 공매도가 없을 때보다는 (있을 때) 가격 변동이 있지 않겠느냐“며 “객관적으로 데이터 분석은 아직까지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공매도를 내년 상반기까지 금지하면서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차전지 관련주식이 주목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코스피시장에서 공매도 거래대금 1·2위는 포스코퓨처엠(555억원)과 LG에너지솔루션(433억원)으로 모두 이차전지 관련주였다. 코스닥 시장도 마찬가지로 지난 3일 기준 공매도 거래대금이 가장 많은 종목 1위는 에코프로비엠(737억원)이었고 그 뒤로 에코프로(649억원), 엘엔에프(242억원)였다. 1∼3위가 모두 이차전지 관련주였다. 염승환 이베스트투자증권 이사는 통화에서 “수급만으로 보면 특히 코스닥에 영향이 갈 것으로 보인다. 개인들의 심리가 일단 살아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기적으로 볼 때는 예단하기 어렵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는 시장이 반등하는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준석·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지난 2월 펴낸 ‘공매도 규제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 시행 이후 시장의 가격효율성은 저하됐고 변동성은 증가했으며 시장거래는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에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 편입 기준 중 하나로 공매도 확대를 드는 만큼 이번 조치로 당분간 MSCI 편입 가능성은 작아질 것으로 보인다. MSCI 지수는 외국계 투자자들의 주식·채권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국내 자본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이번 조치가 윤석열정부가 출범 때부터 강조해 온 ‘자본시장 선진화’에 역행하는 조치라는 지적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