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부터 소멸… 심화하는 선거구 수 격차
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에 따르면 선거구 획정은 공직선거법에 기반해 이뤄진다. 공직선거법 제25조는 시·도의 관할구역 안에서 인구·행정구역·지리적 여건·교통·생활문화권 등을 고려해 지역구를 획정하도록 하고 있다. 시·군·구의 일부를 분할해 다른 지역구에 속하게 할 수 없지만 인구 비례 2대1인 인구 범위에 미달하는 시·군·구에 한해 인접 시·군·구의 일부를 분할해 지역구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농·어촌 지역 비례대표 등 고려를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이 심화하는 상황에서는 선거구 획정을 둘러싸고 인구대표성과 지역대표성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 헌법이 규정하는 평등선거의 원칙에 따른 ‘표의 등가성’을 보장하려면 인구대표성을 기반으로 선거구를 획정해야 하지만 헌법은 평등선거의 원칙뿐 아니라 국토의 균형발전이 국가의 의무라는 점도 명시하고 있다.
인구대표성만 고려하면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는 지방에서는 각 자치구가 선거구를 구성할 인구 기준을 맞추지 못해 인근 여러 지역과 병합되고 지역대표성을 유지할 수 없는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 21대 총선의 선거구획정안 초안에서는 무려 5개 시·군이 하나의 선거구에 포함되는 경우까지 있었다.
이로 인해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선거구 획정 제도에서 지방의 대표성을 보장할 수 있게 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역별 최소 의석수를 보장하는 조항을 넣거나 소멸 위험이 높은 농·어촌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비례대표를 별도로 두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비례대표가 결국 과소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에게 의석을 배분하라는 취지에서 도입된 것이란 점을 생각했을 때 장애인·여성·환경 분야 등에 비례대표를 주는 것처럼 농·어촌 지역을 권역별로 묶어 비례로 의석을 주는 방식으로 지역 간 인구 격차에 따른 선거구 획정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선관위가 지난해 하반기 진행한 ‘저출산·고령화 시대를 대비한 선거구 획정 제도 개선’ 연구 용역도 비수도권 유권자들의 정치적 소외감을 없애고 인구 감소 지역의 대표성을 높이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놨다. 해당 연구에서 연구진은 중장기적인 선거구 획정 제도 개선 방안의 일환으로 국회의원 정수 자체를 늘리거나 중대선거구제를 시행하는 것을 제안한다. 인구 감소가 급격한 농·어촌 지역 유권자들의 정치 효능감을 보장하기 위해 전체 의석수를 늘려 한 명의 의원이 대표하는 선거구의 지리적 크기를 축소하거나 혹은 더 넓은 지역구를 복수의 의원이 함께 대표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외에도 연구진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로 이뤄진 현행 선거제도에 지역 대표성을 보장할 수 있는 또 다른 층위를 추가하거나 연방제·양원제 등 장기적 관점에서 근본적인 정치 제도 변화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의견 수렴 실효성 無… “청문 절차 법제화해야”
지역 대표성을 보장할 제도적 장치 마련과 함께 선거구 획정 절차 자체를 개선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현행 선거구 획정 절차가 지역별 의견 수렴을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실효성 없이 진행해 제대로 된 의견 반영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권역별로 지역을 순회하며 의견을 수렴하지만 초안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다 보니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의견 수렴이 어려운 한계가 있다.
지난 21대 총선 당시 선거구획정위원으로 활동했던 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법적 절차가 명확히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선거구 획정과 관련해 법적으로 청문 절차에 대한 내용이 없다”며 “지역 의견 수렴 절차 법제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캐나다 ‘조부조항’ 둬 의석수 유지 보장
우리보다 먼저 인구 구조에 큰 변화를 겪은 해외 국가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선거구 획정 제도를 손봐왔다. 일부 국가는 인구수 비례 이외의 기준들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소했고 선거구 획정 주기를 늘려 지역별 격차가 벌어지는 속도를 완만하게 하고자 한 경우도 있다.
캐나다는 과거 지역 간 인구 격차에 따른 갈등을 ‘15% 조항’을 통해 완화한 바 있다. 1951년 인구조사에서 다른 주보다 인구 증가세가 미약했던 일부 주에서 대표성 약화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자 인구 변동에 따른 의석 재조정 과정에서 어떤 주도 이전과 비교해 15% 이상의 의석수 감소는 허용하지 않도록 하는 ‘15% 조항’을 만들어 갈등을 완화했다.
‘조부조항(Grandfather Clause)’이라는 독특한 규정도 있다. 캐나다는 헌법 제51조의 규칙에 기반해 전국 기준으로 산출한 선거계수로 각 주의 인구를 나눠 주당 의석수를 배정하고 선거계수는 10년 주기의 인구조사를 통해 결정한다. 그러나 인구수를 선거계수로 나눠 배정된 의석수가 해당 주가 2019∼2021년 운영된 제43대 의석수보다 적을 경우 차등분만큼을 해당 주에 추가하도록 규정하는 조부조항을 둬 인구수가 줄어든 지역도 의석수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의회선거구법(Parliamentary Constituencies Act)의 ‘의석배분규칙’을 선거구 획정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의석배분규칙은 선거구획정위가 인구수 외에 5가지 기준을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규모·형태·접근성 등 특별한 지리적 고려사항, 지방정부의 경계, 기존 선거구역, 선거구 변경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지역적 연결망, 선거구 재획정으로 초래될 수 있는 불편 등이 그 기준이다. 이 중 특히 지리적 고려사항이 중시돼 실제 영국 선거구 중에는 지리적 이유로 선거계수 기준 편차를 벗어나는 곳이 상당히 많다. 또 영국은 인구수가 특히 적어 선거계수 편차 기준을 지킬 수 없는 북아일랜드의 경우 아예 선거구 획정에서 예외로 두고 있다.
인도는 또 다른 방법으로 인구 구조 변동에 따른 격차 문제를 완화하고 있다. 인구 격차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구 변화를 선거구 획정에 반영하는 주기를 20년으로 길게 설정해 불안정성을 줄이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북부 주들과 비교해 남부 주들의 인구 증가세가 약해 주별 의석수 변경에 대한 요구가 심화하자 인도 정부는 2001년 헌법 개정을 통해 2026년까지 주 내부에서의 선거구 변경은 허용하지만 주들 사이의 선거구 획정은 금지하도록 하는 방안을 도입했다. 인구 증가가 상대적으로 느린 지역의 정치적 영향력이 축소되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