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에 中 수요급증 여파… 유럽 LNG값 30% 폭등 [뉴스 인사이드-올겨울 글로벌 에너지 위기]

이, 전쟁 이후 가스전 폐쇄… 수급 불안
중동 확전 우려 유가 불확실성도 커져
코로나 봉쇄 풀린 中 난방 급증도 변수

호주 글로벌 가스생산시설 파업 예고
발트 가스관 누출사고도 리스크 키워
EU “천연가스 가격상한제 연장 논의”

한국도 ‘에너지 대란 대비’ 초비상
가스공사 “동절기 필요 물량 선제 확보”
공급 불안 전기·가스料 인상 압박 가중
정부, 취약계층 난방비 작년 수준 지원

겨울이 오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우려됐던 유럽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위기는 지난해 겨울 날씨가 따뜻한 덕에 큰 고비 없이 넘겼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한달여 전 중동에서 새로운 전쟁이 터지면서 올겨울 에너지 불확실성이 극대화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 전쟁, 올해 본격적으로 ‘위드 코로나’를 시작한 중국의 수요 증가 등으로 올해 에너지 가격이 세계적으로 급등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해상의 타마르 천연가스전이 가동되는 모습. 이스라엘은 지난달 하마스와의 전쟁이 시작된 후 이 가스전을 폐쇄했다. 타마르 가스전 홈페이지 캡처

◆이·하마스 전쟁… 불확실성 커져

이스라엘이 지난달 말 가자지구에 대한 지상전에 돌입하면서 세계 석유와 가스 시장 불안이 커졌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원유 생산지가 아니지만 전쟁이 주변 국가로도 번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중동의 다른 지역 세력으로 확대될 경우 석유와 가스 공급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전쟁이 시작된 후 이스라엘 해안에 위치한 타마르 천연가스전을 폐쇄했다. 타마르 가스전은 이스라엘 에너지 수요의 70%를 담당하는 곳으로, 로이터통신은 타마르 가스전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발사되는 로켓포 사거리 내에 있다고 설명했다.

타마르 가스전의 폐쇄상황이 장기화하면 이집트와 요르단에 대한 가스 수출이 감소하는 것은 물론 세계 가스 시장의 압박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9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불기둥이 솟구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특히 이집트의 경우 수입하는 가스를 국내에서 소비할 뿐 아니라 액화천연가스(LNG)로 가공해 유럽 등지에 다시 수출한다. 지난해 이집트는 약 730만t의 LNG를 수출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이는 유럽연합(EU)의 약 한 달치 LNG 수요에 해당한다. 이집트로의 가스 수출길이 막히면 유럽 가스 시장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인접한 레비아탄 가스전의 생산량 증가로 타마르 가스전 공백을 일부 메울 수는 있지만 생산량에 한계가 있어 이집트 에너지 수급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국제 가스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몬 타길라페트라 벨기에 브뤼겔 싱크탱크 선임 연구원은 “타마르 가스전 폐쇄가 장기화되면 이스라엘이 세계 시장에서 가스를 수입하게 만들어 경쟁을 촉발하며, 이로 인해 유럽 가스 가격이 연쇄적으로 상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코트라는 타마르 가스전 운영 중단에 따른 유럽 시장에서의 공급 부족 우려로 천연가스 가격이 15% 이상 상승해 ㎿h(메가와트시)당 43유로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천연가스 가격 요동… 안심 일러

EU가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천연가스 대신 LNG 의존도를 늘리면서 가까스로 에너지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올겨울에도 여전히 공급 차질 위험성이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에너지 컨설팅회사인 ‘콘월 인사이트’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중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가 해제되면서 올해 중국 전체 가스 수요가 6% 증가했다고 짚었다. 보고서는 당장은 이 같은 수요 증가 현상이 중국의 LNG 주문량에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다가오는 겨울철에는 난방 수요 급증 영향으로 상황이 바뀔 수 있다고 봤다.

 

금융정보업체 레피니티브에 따르면 유럽의 LNG 가격은 최근 8개월 사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갔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직전보다 30%가량 뛴 것이다.

유럽의 경우 올겨울도 평년보다 온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지만, 안심하긴 이르다는 것이다. 유럽 천연가스 불안정성 고조에는 이·하마스 전쟁과 함께 호주의 가스 생산시설 근로자 파업,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를 잇는 발트해 가스관 파손 사건 등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앞서 핀란드 가스업체 가스그리드는 지난달 8일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를 잇는 발트해 가스관에 누출사고가 발생했다면서 해당 가스관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누출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틀 뒤인 10일 미국 정유회사 셰브론은 상당한 양의 천연가스를 수출하는 호주 사업장의 생산시설 두 곳에서 노동자들이 파업을 예고했다고 밝혔다. 원자재 컨설팅업체 우드매킨지에 따르면 해당 사업장은 전 세계 LNG 공급의 약 7%를 차지하는 곳으로, 우드매킨지는 이번 상황에 대해 북반구 국가에서 난방을 위한 천연가스 수요가 증가하는 시점에 발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콘월 인사이트의 매슈 채드윅 수석연구원은 “중국의 경기 회복으로 가스 수요가 증가하고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이 가격 급등을 견인하게 되면 유럽은 더 이상 주문형 LNG에 집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럽이 올겨울 기온이 높고 (에너지) 경쟁은 치열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안주한다면 기후변화부터 아시아 수요 급증까지 다양한 요인으로 또다시 가스 부족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U는 이 같은 상황을 걱정해 내년 2월까지 적용하기로 한 천연가스 가격 상한제를 연장할지 논의 중이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하기도 했다. 최근 몇 달간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고 EU의 가스 저장량도 사상 최대 수준이지만, 전쟁이 심각해지고 추가로 가스관이 훼손되는 등의 일이 발생하면 공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 시내 주택단지의 가스계량기. 연합뉴스

◆“난방비 폭탄 안 돼”… LNG수급대응반 가동

 

세계적인 에너지 가격 증가는 에너지원을 거의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정부와 관련 기관 등이 즉각 대응에 나섰지만 에너지 공기업의 적자 폭 확대로 전기·가스요금 인상 없이는 본질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가스공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 간의 전쟁으로 국제 에너지 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지난달부터 ‘액화천연가스(LNG) 수급 비상대응반’을 운영하며 수급 안정에 나섰다. 가스공사는 이란 근처 호르무즈해협 봉쇄 등 중동 사태 전개 상황을 5단계로 세분화해 위기에 대비할 수 있도록 대응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스공사에 따르면 한국은 중동지역에서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수입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이·하마스 전쟁으로 인한 국내 LNG 도입과 운송에는 영향이 없는 상태다. 가스공사는 중동 사태가 확산해 중동산 천연가스 도입 차질이 상당 기간 지속하는 경우에도 동절기 필요 물량을 선제적으로 확보해 가스 수급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향후 불확실한 상황을 모니터링하며 대비를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많은 국민은 올해 초 ‘난방비 폭탄’을 기억하고 있다. 가스요금은 지난해 4월, 5월, 8월, 10월 등 총 4차례에 걸쳐 메가줄(MJ)당 5.47원 올랐다. 인상 전보다 38.5% 올랐지만 난방 수요가 적은 봄∼가을에 요금이 올라 겨울에 들어서야 상승분이 체감된 것이다.

한국가스공사 본사 사옥 전경. 한국가스공사 제공

난방비용 급증은 취약계층에 더 치명적인 만큼 정부는 지난겨울에 준하는 수준으로 이번 겨울에도 취약계층 난방비 지원을 계속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동절기 난방비 지원 및 에너지 절감 대책’을 통해 동절기로 구분되는 올해 10월부터 내년 4월까지 에너지 바우처 세대당 지원금을 지난해 한시적으로 확대된 수준과 같이 30만4000원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에너지 바우처는 기초생활수급자 중 노인, 영유아, 장애인, 임산부, 한부모 가정 등 에너지 취약계층에 지급된다.

 

이밖에 에너지 효율 개선을 위한 예산 지원이 확대되고 소상공인의 에너지 부담 경감을 지원하는 예산이 큰 폭으로 늘었다. 산업부 관계자는 “동절기 에너지 수요 확대, 이·하마스 사태 장기화 등으로 국내 에너지 수급 불확실성이 심화하고 상당 기간 지속될 우려가 있다”며 “취약계층이 안전하고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두텁게’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전력공사와 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의 미수금과 적자가 천문학적으로 쌓이고 사채 발행 한도도 아슬아슬한 만큼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하지만 가스요금의 경우 겨울 난방 성수기 직전에 올리기는 부담스럽고, 누적적자가 200조원에 달하는 한전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전기요금 논의가 먼저라는 인식 아래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3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한전은 흑자전환에 성공할 것으로 보이지만 단발성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에 총선을 앞둔 부담스러운 상황임에도 4분기에는 전기요금이 인상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문제는 얼마나 올리느냐다. 한전의 적자 해소에 초점을 맞추자니 물가가 치솟을 우려가 있고, 찔끔 올리자니 반발만 살 수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