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양치기 소년’ 연금개혁 되지 않길

보험료율·소득대체율 쏙 빼고
연금개혁안 방향성 나올까
인기 없어도 반드시 하겠다던
尹 정부 약속 반드시 지켜지길

공자는 70평생을 돌아보며 스스로 자신의 일생을 정리했다.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대목이다. 리링 베이징대 교수는 이를 ‘70세의 자술(自述)’이라고 했다. 공자는 여기에서 “나이 쉰에 천명(天命)을 알았다”고 했다. 나이 50에 때가 왔음을 알고, 그 이듬해 출사했다. 지금에서 지천명(知天命)이라는 말은 보통 나이 50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의미로 쓰인다.

공자는 나이 쉰에 하늘의 명을 듣고 실천에 옮겼다. 사후 성인의 반열에 오른 공자였기에 가능한 얘기이지 싶다. 1973년에 출생했다. 올해로 쉰하나(51)가 됐다. 공자가 말한 “천명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이 된 것이다. 그러나 천명은 먼 나라 얘기다. 또래 지인이나 친구를 만나면 팍팍한 서민의 삶을 토로하기에 바쁘다. 건강과 아이 교육, 거기에 더해 연금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이우승 사회부장

좋은 직장이든 대기업이든 50대 초중반이면 떠밀려 나가기 일쑤다. 전문직이 아니면 재취업도 어렵다. 퇴직 후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경제적·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정년이 10년 남짓 남은 2차 베이비붐 시대 끝자락에 선 우리 세대에게는 민감한 얘기다. 1973년생의 경우 현행법상 정년은 60세이며, 연금수령은 65세부터다. 퇴직과 연금수령 사이 5년 공백이 있다.



더 받고 싶고 더 빨리 받고 싶은 데는 이견이 없다. 얼마나 더 받고, 얼마나 더 내고, 얼마나 더 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각자 입장이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달 27일 정부가 내놓은 제5차 국민연금 통합운영계획안은 매우 실망스럽다. 연금개혁을 하겠다는 정부가 핵심인 보험료율(내는 돈)과 소득대체율(받는 돈), 그리고 받는 시기에 대한 수치를 제시하지 않은 ‘깡통 개혁안’을 내놓아서다.

정부는 연금개혁안을 내놓으면서 세 가지 사항을 강조했다. 첫째, 지속가능한 제도를 위해 구체적인 개선과제를 제시했다. 둘째, 재정방식 개선논의 등 공론화 과정을 제안하고, 자동안정화장치나 확정기여방식 전환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했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를 위한 개혁방향을 제시했다고도 했다. 복지부 장관은 “특정안 제시보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국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10여쪽 분량 보도자료에 연금개혁을 위한 정부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인가. 글과 문장에는 글쓴이의 감정이 녹아 있다. 전후 맥락을 통해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원래 예정됐던 백 브리핑은 담당 국과장 일정상 취소됐다. 보도자료가 하루 일찍 배포됐다. 진정 할 말이 있었다면, 어떤 이유에서든 취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용이 없어 취소했다는 의심만 생겼다. 전날 배포된 자료를 보니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브리핑 당일 오전 8시 기자들의 거듭된 요구로 급하게 사전 브리핑이 열렸지만 이미 든 확신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공론화 과정을 거치려면 화두를 던져야 한다. 연금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은 이미 화두가 아니다. 구체적인 수치가 있어야 찬성·반대가 나오고 지지와 추가 제안이 나오면서 방향이 잡힌다. 보도자료 5쪽 보험료율 인상과 관련한 내용 중에 ‘세대별 형평성을 고려해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연령그룹에 따라 차등 추진해 나간다’는 언급이 있다. 5%포인트를 올린다고 했을 때 40∼50대는 5년간 1%포인트씩 올리고 20∼30대는 0.5%포인트씩 10년이나 15년에 걸쳐 올리는 식이다.

민감한 내용이다. 그러나 40대와 50대, 20대·30대의 반응이 없다. 인상률이 결정되지 않았는데 어떤 의견을 낼 수 있나? 인상률에 따라 부담하는 금액이 달라진다. 구체적인 수치가 없다면 말장난에 불과하다. ‘국민을 우롱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책임지려 하지 않고 폭탄 돌리듯 남 탓만 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양치기 소년이 마을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은 믿음을 주지 못해서다. 가수 유승준이 국민 공적이 된 것은 입대를 피해 미국 시민권을 택한 것뿐만 아니라 앞서 병역의무를 다하겠다고 스스로 한 말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석열정부는 인기가 없더라도 연금개혁을 반드시 하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양치기 소년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