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 갈수록 한국의 커피 애호가들에게는 사무치도록 그리운 2명의 문학인이 있다. 낙엽을 태우는 속에서 커피향을 발견해 준 가산(可山) 이효석과 그의 제자 다형(茶兄) 김현승이다. 다형은 커피를 너무나 좋아했기에 붙여진 호이기도 해서 커피 사랑에서만큼 가히 청출어람이라 하겠다.
커피가 가을에 더욱 소중한 것은 ‘소멸’해가는 시기에 ‘위로’를 주기 때문이다. 가을날의 커피 감상에는 또 하나의 감각이 보태진다. 찻잔을 타고 손으로 전해지는 온기다. 더운 여름날 불편했던 커피의 뜨거움이 싸늘함을 달래 주듯 감미롭게 관능에 스며든다. 가을 커피는 촉감으로도 즐길 일이다.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 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가산이 이렇게 노래한 것은 낙엽이 실제 커피향을 피워낼 수 있기 때문일까, 단지 문학적 상상력이었던 것일까?
나무는 주변에서 흡수할 수 있는 물기가 마르면 생존을 위해 잎사귀로 가는 수분을 막으며, 하나둘 낙엽을 지게 만든다. 이즈음 낙엽의 주성분은 셀룰로스(cellulose), 헤미셀룰로스(hemicellulose), 리그닌(lignin) 등으로 이루어진 목재와 비슷하게 된다. 그렇다고 낙엽 태우는 냄새가 장작 타는 냄새와 같게 되는 것은 아니다. 잔존한 수분기와 엽록소, 낙엽에 붙어사는 애벌레·박테리아·곰팡이 등 유기체들이 있기 때문에 복합적인 향을 피우게 된다.
커피가 향을 지니게 되는 것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질 성분들이 불에 의해 마이야르(Maillard Reaction)와 캐러멜(Caramelization) 반응 등을 일으킨 덕분이다. 낙엽에 남아있는 다양한 영양성분과 구조를 이루는 탄수화물이 불기운을 받아 단백질 덩어리인 미생물과 열반응을 일으키면서 커피와 유사한 향기를 발산한다. 특히 카보니(Carbony), 스모키(Smoky)라고 표현하는 연기냄새가 커피를 볶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향과 비슷한 느낌을 선사한다.
가산의 수필이 더욱 소중한 것은 커피 감상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고 적었다. 암울했던 시기의 가산에게 낙엽은 이브 몽탕의 ‘고엽(Autumn leaves)’처럼 덧없는 인생에 대한 회한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만은 아니었다. 의기소침과 우울증을 부르는 노스탤지어(Nostalgia)는 더더욱 아니었다.
황량한 나무 아래에서 나뒹구는 낙엽은 당시 설움을 북받치게 했을 만도 한데, 가산은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낀다’고 역설했다. 일각에서는 작가에게 치열한 의식을 요구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한가롭게 커피 타령을 한다고 힐난하지만, 커피가 지닌 각성효과에 주목한다면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서슬 퍼렜던 시절, 가산은 수필을 통해 낙엽-연기-커피향-각성-깨어남-맹렬함-의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메시지를 겨레에게 전달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가을 커피는 커피 애호가들에게는 기도와 같다. 가산의 심정은 다형의 서정으로 이어졌다. ‘가을의 기도’의 첫 소절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는 이 계절 마치 한 잔의 커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