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한국 최초 베를린필 ‘상주 음악가’에…베를린필 대표 “조성진은 직관적인 음악가”

12일 키릴 페트렌코 이끄는 베를린 필과 세 번째 협연 무대

2017년 11월, 독일의 세계적 명문 악단인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회. 협연 무대에는 당초 서기로 했던 중국의 유명 피아니스트 랑랑 대신 23살의 신인에 불과한 조성진이 올랐다. 랑랑이 공연을 앞두고 왼팔을 다치는 바람에 조성진이 대타로 오른 것. 꿈에 그리던 베를린 필 데뷔 무대에서 조성진은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을 멋지게 연주해 갈채를 받았다. 그가 앙코르곡(드뷔시의 ‘물에 비친 그림자’)을 들려줄 때도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 단원들은 물론 관객까지 모두가 조성진의 경이로운 연주에 흠뻑 빠졌다.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을 세계 클래식계가 다시 한번 주목하게 된, 그야말로 환상적인 ‘대타 홈런’을 날린 것이다.

 

1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무궁화홀에서 열린 베를린 필하모닉 내한공연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안드레아 쥐츠만 오케스트라 대표, 피아니스트 조성진, 키릴 페트렌코 상임지휘자, 베를린 필 단원 에바 마리아 토마시, 필립 보넨. 연합뉴스

그런 조성진을 눈여겨 보고 이후 인연을 맺어 온 베를린 필이 내년(2024∼2025) 시즌 ‘상주 음악가(artist in residency)’로 조성진을 선정했다. 아시아 출신으로는 베를린 필 2008∼2009 시즌 상주 음악가였던 일본 피아노 거장 우치다 미츠코(75·2008∼2009)에 이어 두 번째다.    

 

6년 만의 베를린 필 내한공연(11∼12일 서울 예술의전당)을 앞두고 10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안드레아 쥐츠만 베를린 필 대표는 “조성진은 (우리와) 특별한 기회로 (처음) 협연하게 돼서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된 피아니스트인데, 개인적으로 매우 ‘직관적인(intuition)’ 음악가라고 생각한다”며 “아직 유럽에는 공개가 안 됐는데 조성진이 내년에 베를린 필 상주 음악가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주 음악가는 베를린 필과 협주곡 한 두 곡 정도 및 여러 실내악 연주를 하게 된다”며 “또 ‘카라얀 아카데미’의 30명가량 음악가와 함께 하는 교육 프로그램 등에도 참여하게 된다. 우리도 음악가의 다양한 면을 관객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 연합뉴스

베를린 필의 6년 만이자 통산 일곱 번째인 이번 내한공연은 2019년부터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으을 맡은 키릴 페트렌코(51)가 지휘봉을 잡는다. 11일에는 협연자 없이 모차르트 교향곡 29번과 베르크 ‘오케스트라를 위한 세 개의 작품’, 브람스 교향곡 4번을 선보인다. 조성진이 베를린 필 데뷔 후 2020년(온라인 음악회)에 이어 세 번째 함께 하는 12일 공연에선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과 슈트라우스 ‘영웅의 생애’를 연주한다.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2017년 내한공연 이후 다시 한국 관객과 만나게 된 러시아 출신의 페트렌코는 “베를린 필 사운드(소리)를 완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작곡가) 작품들이어서 브람스와 슈트라우스의 곡들을 골랐다”며 “우리가 준비한 작품들은 (한국 관객들이) 이틀간 충분히 즐겨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베를린 필하모닉 상임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오른쪽)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1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베를린 필 단원인 바이올리니스트 에바 마리아 토마시는 “페트렌코는 악보를 성스럽게 대하는 지휘자다. 어떤 지휘자는 작곡가를 넘어서서 자기 생각을 주입하려는 경우도 있는데, 페트렌코는 절대 작곡가를 넘어서려 하지 않는다”며 “전에 했던 음악을 연주하더라도 우리(단원)가 몰랐던 걸 발견해서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지휘자”라고 호평했다. 

 

동료 단원 필립 보넨(바이올리니스트)도 “페트렌코는 뼛속까지 지휘자다. 본인이 원하는 음악의 분명한 비전을 갖고 있는데 베를린 필의 전통과 사운드에도 열려 있는 사람이라 놀라운 연주를 보여준다”고 거들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연합뉴스

페트렌코와 이번에 처음 호흡을 맞추는 조성진은 “베를린에서 연습할 때 (페트렌코에게) 많이 배우고 존경하게 됐다”면서 “아주 좋아하는 협주곡 중 하나인 베토벤 4번(피아노 협주곡)을 베를린 필과 협연하게 된 것도 감사하고 좋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는 “베를린 필은 세계에서 가장 잘 하고 특별한 사운드를 가진 오케스트라여서 되게 많은 연주자가 베를린 필과 협연하는 게 꿈이라고 생각한다”며 “제가 베를린에 사는 데다 단원 중에 친한 사람이 많아 베를린 필과 협연할 때마다 매우 좋다”고 했다.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을 공연하게 된 배경과 관련, 조성진은 “지난해 여름 프로그램이 결정됐는데, 베를린 필이 고전적인 작품을 하길 원했다”며 “제가 좋아하는 곡이고, 한국에서 연주한 지(2019년) 오래 지난 베토벤 협주곡 4번을 해보고 싶다 했더니 베를린 필이 ‘오케이(좋다)’ 해서 하게 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