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장애인 탈시설’ 주요예산 전액삭감 논란

사업 중복 이유 19억→0원 줄여
자립생활센터 2024년 운영 빨간불
일각 “유엔협약 정면 배치” 지적

“부모조차도 장애인 자녀가 시설 밖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상상하지 못해요.”

 

장애인들의 ‘탈시설(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는 것)’을 지원해 온 미소(활동명·44)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2011년 한 요양병원에 있던 30대 뇌병변장애인 정모씨에게 전화를 받았다. 그는 시설 아닌 곳에서 생활하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미소 활동가는 정씨가 요양병원에서 나와 자립해서 생활할 수 있도록 했다. 정씨 부모는 처음엔 탈시설을 반대했지만, 지역사회에 정착한 자녀의 모습을 보고 장애인도 일상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고 한다.

지난 8월 30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가 서울시 조례와 국제 규약에 명시된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를 왜곡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뉴시스

미소 활동가는 평생을 시설에서 보낸 장애인들에게 시설 밖 일상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이러한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될까 걱정이다. 14일 서울시청 등에 따르면 탈시설 정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주시설 연계 자립생활 지원사업’ 내년도 예산 18억9991만원이 전액 삭감됐기 때문이다. 2013년부터 시행된 해당 사업은 자립생활센터와 장애인 거주시설을 연계해 시설 밖 경험을 통해 장애인의 욕구를 파악하고 나아가 탈시설 이후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서울시는 긴축 기조에서 성격이 비슷한 사업들을 묶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예산을 삭감했다는 입장이다. 자립생활센터들의 입장은 달랐다. 탈시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사업비와 전담인력 인건비가 당장 내년도부터 없는 상황에서 사업 운영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미소 활동가는 “서울시가 삭감된 예산으로 오히려 장애인 시설을 강화하는 사업을 편성했다”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된 탈시설 가이드라인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라고 했다.

장애인들의 탈시설 욕구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서울시의 예산안이 아쉽다는 목소리가 적잖다. 보건복지부가 2020년 전국에 있는 시설 거주 장애인 578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시설이 아닌 부모님 집, 혼자 사는 집, 그룹홈 등에서 생활하고 싶다고 응답한 이는 47.1%에 달했다. 서울시 탈시설 장애인 추이를 봐도 2020년 1115명, 2021년 1199명, 2022년 1258명으로, 2009년 사업이 도입된 이후 연평균 약 100명의 장애인이 자립의 길을 선택하고 있다.

 

김종인(30)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지난 7월3일에 탈시설한 한 40대 초반 뇌병변장애인은 시설 밖에서 다른 장애인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감을 얻어 결심했다”며 거주시설 연계 자립생활 지원사업 필요성을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