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또 다른 피해자는 지구… 기후위기 대응 ‘직격탄’ [세계는 지금]

온난화 부추기는 각국 무력 충돌

러·우크라戰 온실가스 배출량 2190만t
간접적 영향 더하면 1억1910만t 달해
이·하마스戰도 비슷한 추세 보일 전망

軍, 평시에도 탄소배출 규제 ‘사각지대’
교토의정서 등 국제 규약서 ‘예외’ 적용
전쟁 인한 반목으로 협력 저해도 문제
“기후위기로 지구가 위험에 처했다”는 것은 이제 전 세계인 사이에서 상식이 됐다. 조금씩 다가오던 위기가 2023년 지구촌 곳곳을 덮친 폭염, 가뭄, 폭우 등 이상 기후로 한층 심화한 탓이다.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는 가운데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등 전 지구적 대응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하지만 기후위기 대응은 현재 커다란 장벽에 막혀 있다. ‘전쟁’이라는 벽이다. 지난해 2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시작해 2년째 싸우고 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가 지난달 시작한 전쟁 역시 장기화가 예상된다. 아프리카, 서아시아 등 다른 곳곳에서도 크고 작은 분쟁이 이어진다. 전쟁이 기후위기 대응에 가장 큰 장애물인 것은 그것이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인류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단시간에 좁은 지역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이는 고스란히 지구에 부담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의 최대 격전지인 도네츠크주 전선에서 지난 2월 우크라이나군의 자주포가 발사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소모전 속 막대한 직간접적 환경 피해

전쟁이 지구에 가하는 부담은 우크라이나 전쟁 사례만 자세히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지난 6월 우크라이나 환경부와 현지 기후단체 에코디아가 유럽기후재단의 후원을 받아 발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기후피해’라는 보고서를 보면 2022년 2월 개전 이후 1년간 전쟁으로 인한 직접적인 온실가스 배출량이 2190만t에 달했다. 러시아군 1410만t, 우크라이나군 470만t 등 양측이 군사 행위 과정에서 소비한 연료를 통해 발생한 온실가스만 1900만t에 육박한다. 여기에 탄약과 전투 장비 사용 과정에서도 300만t에 가까운 온실가스가 배출됐다.



이는 어디까지나 직접적 전투 행위 과정에서 발생한 온실가스일 뿐이다. 전쟁이 만든 간접적 영향으로 인해 발생한 온실가스까지 고려하면 피해는 몇 배로 불어난다.

전투 과정에서 발생한 화재, 피란민 이동 등에 따른 화석연료 사용, 인프라 파괴와 재건 등 간접적 영향 속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총망라한 수치는 무려 1억1910만t으로 추산됐다. 이는 약 2700만대의 자동차가 1년 동안 도로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 양과 맞먹는다.

보고서는 “전쟁으로 인한 가장 큰 부정적 기후 영향은 파괴된 건물과 인프라를 재건하는 데서 비롯될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전쟁 중 러시아가 에너지 인프라를 중심적으로 타격했기 때문에 이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온실가스는 지구온난화를 더 악화시킬 것”으로 내다봤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신흥 안보 문제 담당 부사무차장인 제임스 아파투라이는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환경적 비용을 살펴보면 전쟁은 탄소 배출 측면에서 재앙”이라고 평가했다.

개전 한 달이 넘은 이·하마스 전쟁도 비슷한 온실가스 발생의 추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전쟁 초기인 데다 양측 군사작전의 상당 부분이 비밀에 부쳐져 있어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이미 전면전 양상으로 접어들었기에 환경 피해는 기정사실이다.

만약 전쟁이 미국, 이란 등 군사 강국이 포함된 확전 양상으로 접어들면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군사 강국이 운용하는 최첨단 무기일수록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미국 군사장비만 살펴봐도 대표적인 폭격기 B-2는 작전 1회당 무려 25만1400㎏의 탄소를 배출하고, F-35A 전투기의 탄소 배출량도 2만7800㎏에 달한다. 군용차량인 험비 한 대만 해도 260㎏의 탄소를 배출한다.

전쟁이 아닌 평시에도 군은 탄소배출 규제의 대표적 사각지대였다. 각국 정부가 보안사항으로 취급하는 군사활동의 특성상 무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제한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 탓이다.

교토의정서, 파리기후협약 등 기후 관련 주요 국제규약도 탄소 배출량 보고와 관련해 군사활동을 예외로 두고 있다. 이는 또 제도적 규제장치가 없는 군이 막대한 자원을 소모해 싸우는 전쟁에 돌입하면 환경 피해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된다는 뜻이다.

이스라엘군 장갑차들이 지난 10월 이스라엘 남부에서 가자지구로 진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국제 협력 단절 등 후폭풍은 더 걱정

더 큰 우려는 전쟁의 후폭풍이다. 에너지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러시아와 중동이 연루된 두 개의 전쟁으로 한창 진행되던 화석연료 등 전통 에너지에서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이 늦어질 수 있어서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23일 이·하마스 전쟁의 여파를 평가하며 “이번 전쟁의 최대 승자는 석유 생산국이다. 아랍 석유 금수 조치가 에너지 시장을 뒤흔든 지 50년이 지난 지금 역사적 메아리가 차갑게 다가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1973년 아랍과 이스라엘의 전쟁 여파로 고유가가 정착되며 석유시장이 호황을 이뤘듯이 이·하마스 전쟁으로 쇠퇴하던 석유시장이 살아날 수 있다는 의미다.

매체는 “전쟁의 여파가 자국 내 석유 공급에 미칠 여파에 대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크게 긴장하고 있다”면서 “한창 재생에너지 전환에 열을 기울였던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석유 및 천연가스 등 전통 에너지 확보 등으로 전략을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발도상국의 재생에너지 전환에도 큰 차질이 예상된다. 유가 상승 흐름 속 개발도상국들이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데에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어서다. 선진국들이 부담 완화를 위해 재생에너지 산업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지만 이마저도 국제 정세 불안 속 이행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NYT는 “선진국들은 저소득 국가들이 기후 위험에 적응하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할 수 있도록 2020년까지 매년 1000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다”면서 “수혜 대상국들 사이에서 분노와 좌절감이 끓어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뉴시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1세기 말까지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억제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투자에 연간 4조5000억달러가 필요하다. 현재 흐름에서 큰 반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 목표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전쟁이 만든 국제적 반목이 기후위기 대처에 꼭 필요한 국제적 협력을 저해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물리적, 심리적으로 상당 시간 충돌을 이어갔던 국가들이 전폭적 협력이 필요한 환경 문제에 다시 뜻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연구기관인 채텀하우스의 환경 및 사회 센터 소장인 팀 벤턴은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고 다자주의가 분열되면 잠재적으로 중요한 협력 진전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가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이·하마스 전쟁의 경우 국제 협력 자체를 긴 시간 틀어막아 버릴 가능성도 상당하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중동문제 전문가인 프레데릭 웨어리는 “중동에서의 긴장 완화를 통해 지방정부와 시민사회 등이 지구온난화 대응과 친환경 에너지 전환 등 다가오는 도전에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하마스 전쟁으로 중동 기후 의제는 여러 주요 분야에서 압박을 받게 됐다”고 평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이 전쟁 여파를 딛고 기후 문제 대응 의지를 이어나갈 수 있느냐가 향후 전 세계 기후위기 해결에서 중요한 문제로 대두됐다. 연구기관 국제위기그룹의 컴포트 에로 회장은 “이번 이·하마스 전쟁은 전 세계 국가들이 당면한 군사적 위기 속에서도 기후 문제와 관련한 외교적 협력 관계를 지킬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험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