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최대 병원을 급습함에 따라 전쟁범죄 논란이 불붙고 있다.
전쟁 중에 의료시설을 공격하는 행위는 국제법에서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교전이 있었는지 아직 전해지지 않지만 민간인 사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병원 단지 내에는 신생아나 치료받는 환자 600여명, 의료진 200∼500명, 피란민 5천∼7천명이 머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스라엘군의 병원 급습 직후 하마스 측이 '반인도 범죄'라고 즉각 규탄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하마스가 통제하는 가자지구 보건당국의 수장 마이 알카일라는 이스라엘군의 기습이 반인도 범죄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무력 충돌과 관련한 국제인도법의 대원칙인 제네바 협약은 전쟁에서 적대행위를 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살상을 금지한다.
여기에는 민간인뿐만 아니라 다쳐서 전투력을 잃은 군인까지도 광범위하게 포함된다.
전쟁범죄를 처벌하는 상설법정인 국제형사재판소(ICC) 설립의 토대가 되는 로마규정에서도 병원은 특별한 보호 대상이다.
로마규정은 "병원, 아프거나 다친 사람들이 모인 장소로 용도가 지정된 건물을 군사 표적이 아님에도 고의로 직접 공격하는 행위"를 전쟁범죄로 적시한다.
제네바 협약, 로마규정 등을 포괄하는 국제인도법은 병원 등 의료시설에 대한 공격을 아예 금지하지는 않지만 엄격하게 제한한다.
의료시설이 적대행위를 위한 군사적 진지 역할을 하는 등 뚜렷한 용도의 변질이 있어야 공격할 근거가 있다는 얘기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의도적으로 병원을 노린 경우 ▲ 민간인과 군인을 구분하지 못한 과실이 있는 경우 ▲ 확인된 군사적 위협보다 대응이 과도한 경우 ▲ 임박한 공격에 대한 사전 경고가 없는 경우 등을 심각한 국제인도법 위반이자 전쟁범죄로 해석하고 있다.
이날 이스라엘의 알시파 병원 기습 과정을 보면 전쟁범죄 혐의를 회피하기 위해 사전 작업을 한 정황이 나타난다.
이스라엘은 일단 알시파 병원의 지하에 적군인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군사본부가 있다고 줄곧 강조해왔다.
이는 알시파 병원이 군사 목표가 될 수 있는 적군 진지인 까닭에 공격의 면책사유가 될 수 있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의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 정부도 이날 자국의 기밀정보를 들어 이스라엘의 입장에 동조했다.
백악관은 알시파 병원이 하마스의 군사기지로 쓰인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민간인 사상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에 호응하듯 이스라엘은 병원을 고의로 노린 게 아니며 과도한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정밀 타격'을 강조했다.
실제로 이스라엘군은 이날 알시파 병원 내 특정 지역에서 '정밀하고 표적화된' 작전 수행에 나섰다고 밝혔다.
이는 적대행위를 하지 않는 환자나 피란민을 피해 하마스 전투원들을 골라 공격하겠다는 의미다.
의사소통 실패에 따른 민간인 부수 피해를 막으려는 듯 이스라엘군은 의무병과 아랍어 통역사를 작전에 동행시키기도 했다.
아울러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보건당국에 알시파 병원 침투를 사전에 경고해 전쟁범죄 구성요건을 회피했다.
이날 이스라엘군의 병원 급습 이후 미국 정부는 환자 보호를 위해 민간인에 무차별적 피해를 주는 공습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익명을 요구한 백악관의 한 대변인은 로이터 인터뷰에서 "우리는 공중에서 병원을 폭격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으며 병원 내에서 총격전이 벌어져 무고한 사람, 무력한 사람,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이 포화에 휘말리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급습은 하마스 해체라는 군사적 목표를 이루면서도 전쟁범죄와 같은 참사를 피하려고 이스라엘과 미국이 '차악'(次惡)으로 결단한 선택지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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