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끌고 가거나 만지지 않는 이상 경찰이 아무것도 못 한대요. 이게 말이 되나요?”
15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한 카페 사장 40대 김모씨는 울분을 터뜨렸다. 지난 8월 말 김씨의 고등학생 딸 A(17)양은 김씨가 없는 동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토요일 오전 11시쯤 카페는 한산했다. 그때 50대 남성 고객이 카페로 들어섰다. 주문을 마친 그는 홀로 카페를 지키고 있던 A양에게 대뜸 “첫사랑이 있냐? 남자친구가 있냐?”는 물음을 시작으로 “남자친구와 스킨십은 어디서 하냐, 장소 좀 알려줘”, “나는 밖에서 돈 주고 잔다” 등 30분여간 성희롱을 일삼았다. 또 A양의 특정 신체 분위를 지칭하며 “남자친구가 만지지 않았냐?”고 묻기도 했다. 남자가 떠나고 A양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A양은 아직도 40∼50대 남성이 자신의 옆을 지나가면 흠칫 놀란다.
문제는 A양 부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반응이었다. 경찰은 “직접 끌고 가려 하거나 살짝만 만졌어도 형사 처벌이 가능한데, 언어적 성희롱은 처벌이 어렵다”며 “반복해서 찾아오면 스토킹 혐의로 처벌할 수 있으니 다시 오면 말해 달라”고 말했다. 경찰의 적극적인 대처가 없자 김씨는 남성이 두고 간 명함에 직접 전화를 걸어 항의를 했다. 남성은 오히려 적반하장 화를 내며 2주 뒤 토요일 다시 가게를 찾아 또 다른 20대 여성 아르바이트생을 성희롱했다. 김씨는 “경찰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니 신고도 안 하게 된다”며 “무슨 일이 터지길 기다리는 것이냐”라고 한탄했다.
최근 카페·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10·20대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무차별적인 폭행과 폭언을 가하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소형 카페나 편의점은 혼자 일하는 때가 많아, 고객의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경우가 적잖다. 그중에서도 언어적 성희롱의 경우 현행법상 별도의 형사처벌 규정이 없어 출동한 경찰관들도 사후 대응이 쉽지 않다. 결국 아르바이트생이 ‘성희롱 무법지대’에서 홀로 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감내하는 현실이다.
현행법에서 ‘성희롱’은 양성평등기본법, 남녀고용평등법을 토대로 근로관계를 전제로 한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서만 규율하고 있다. 해당 법안들에서도 신체 접촉이 없는 언어적 성희롱에 대해선 별도의 형사 처벌 규정이 없다. 성희롱에 대해 사업주의 피해자 보호와 재발방지 대책 의무를 규정한 수준이다. 다만 남녀고용평등법에서 사업주가 성희롱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에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성희롱 피해자가 가해자를 명예훼손이나 모욕 등의 혐의로 고소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다수에게 전파될 때 성립하는 ‘공연성’이 있어야 인정되는 탓에 단 둘이 있을 때 주로 발생하는 성희롱의 경우에는 가해자 처벌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경찰의 적극적인 대처와 언어적 성희롱에 대한 형사처벌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서혜진 변호사는 “경찰이 현장에서 위험성을 파악하고 성희롱 가해자에게 스토킹처벌법상 ‘긴급응급조치’를 적용해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며 “경찰의 적극적인 경고와 대응으로 추가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성희롱 문제가 심화할 경우 형사처벌 조항 신설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