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은사님 댁을 방문했다. 요즘 무얼 즐겨 하시며 지내시는지 여쭈었더니 “‘가고파’를 부르고 있어.”라고 대답하셨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들으셨는데, 새삼 마음에 와 닿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부르신다고 한다. 고향이 바닷가도 아니신데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로 시작하는 이 노래를 좋아하시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 노랫말에서 어느 대목이 제일 좋으시냐는 질문에, 사모님은 4연의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저”라는 대목이, 선생님은 “그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라는 대목이 좋다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좋은 노래는 품이 깊어서, 부르는 사람과 부를 때의 상황에 따라 마음을 울리는 지점이 각기 다르다.
아버지도 생전에 ‘가고파’를 자주 부르셨다.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나 진남포에서 학교를 다녔던 아버지는 6·25전쟁 때 남한으로 피란 온 실향민이다. 고향 생각이 날 때마다 이 노래를 부르다가 3연의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에 이르면 눈물을 글썽거리곤 하셨다. ‘가고파’에 그려진 바닷가 풍경이 어린 시절 진남포 바닷가와 너무나 똑같다고 하시는 아버지께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 노래를 작사한 이은상의 고향은 마산인데, 아버지 고향은 북쪽이니 풍광이 좀 다르지 않나요?” 하지만 남쪽이든 북쪽이든 두고 온 고향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야 다를 리 없다는 걸 나 역시 모르지 않았다.
아버지의 ‘가고파’ 사랑에 대한 그럴듯한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세월이 좀 더 흐른 뒤였다. 마산 출신인 이은상이 이 시를 지은 것은 1932년 서울 이화여전에 재직하면서였고, 평안남도 안주 출신인 김동진이 이 시에 감명을 받아 작곡한 것은 그의 나이 20살 때인 1933년이었다. 그러니까 이 노래의 가사와 곡에는 남쪽의 바다와 북쪽의 바다가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고파’가 초기에 평안도를 중심으로 널리 불리었을 무렵 아버지는 학교에서 이 노래를 배웠다고 한다. 아버지가 최초로 만난 이 한국 가곡은 고향에 대한 노래일 뿐 아니라 노래의 고향이기도 한 셈이다. 이 노래를 평생 수없이 부르며 아버지는 마음으로나마 잃어버린 유년의 바다로, 고향으로 돌아가곤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