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만나 중동 사태에 대해 논의했으나 서로 의견차만 확인한 채 별 소득 없이 끝났다. 숄츠 총리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선제공격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할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적극 지지했다. 반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소탕한다’는 명분 아래 가자지구에서 병원을 폭격하고 어린이를 살해한다는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17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dpa 통신 등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베를린을 찾아 숄츠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튀르키예 대통령의 독일 방문은 2020년 이후 3년 만이다.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숄츠 총리는 “나와 에르도안 대통령이 서로 전혀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라고 말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관해 아무런 합의점도 찾지 못했음을 내비쳤다. 그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이에는 대화가 꼭 필요하다”라고도 했다.
숄츠 총리는 “이스라엘의 생존권은 부정될 수 없는 것”이라며 “우리나라(독일)에 반(反)유대주의는 설 자리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독일은 히틀러 시절 유대인을 부당하게 탄압하고 잔혹하게 살해한 흑역사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유럽 점령지에서 저지른 유대인 집단학살은 흔히 ‘홀로코스트’로 불린다. 숱한 유대인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가스실에서 생을 마감했다.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유대인은 무려 600만명에 이른다. 이런 과거사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 현대의 독일은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 그리고 유대인들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를 자처한다.
반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즉각 휴전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난 10월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해 민간인 등 1200여명을 살해하고 230여명을 인질로 붙잡은 뒤 이스라엘은 하마스 근거지인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해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며 “독일이 휴전을 요구하는 튀르키예와 뜻을 함께한다면 휴전은 성사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물론 미국, 영국, 유럽연합(EU)이 모두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하마스에 대해 에르도안 대통령은 ‘해방자들’(liberators)이란 표현을 써가며 옹호하기도 했다.
이날 에르도안 대통령은 숄츠 총리와 별개로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과도 만났으나 중동 문제에 관해선 역시 평행선만 달렸다.
한편 숄츠 총리와 에르도안 대통령의 회담에선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문제 또한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스웨덴은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수십년간 채택해 온 군사적 중립 노선을 내던지고 나토 가입을 신청했다. 현재 나토 기성 회원국 31개국 가운데 튀르키예와 헝가리 두 나라만 스웨덴의 나토 가입안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튀르키예의 경우 에르도안 대통령이 비준안을 의회에 제출하긴 했으나 의원들은 처리를 서두르지 않는 모양새다. 숄츠 총리는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튀르키예 의회가 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안을 신속히 통과시켜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