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재정에도 동의하지 못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더 많은 투자로 경제를 살리고 세수를 확보해야 한다.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하면 결과적으로 소비세, 부가가치세 등 국가재정으로 회수되기 때문에 국가재정부담도 거의 없다. 고물가, 경제 침체로 지역 소상공인들이 너무 어렵다.”
친이재명계 핵심인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의원이 지난 9일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 말이다. 이날 민주당 행안위원들은 예비심사에서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7053억원을 증액했다. 지난해 여야 합의로 3525억원을 통과시켰던 예산을 배로 불린 격. 야당 의원들은 골목상권 살리기보다 마트·주유소·학원 등에 용처가 편중됐다며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여당 의원 퇴장 속에서 민주당 소속 김교흥 행안위원장은 의결을 강행했다.
총선을 앞둔 마지막 예산안 예비심사 기간, 예산안을 두고 여야의 파열음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보통의 예산안 심사와는 양상이 달랐다. 보통 여당은 정부 국정과제 뒷받침을 위해 정부안 증액이나 유지에 힘을 쏟고, 야당은 ‘송곳 검증’을 벼르며 감액 요구를 해왔다. 그러나 이번 예산안 심사에서 민주당은 전면적인 증액 요구에 나서고 있다. 총선을 겨냥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정부여당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민주당에는 도움이 되는 국면이라서다. 여당이 ‘증액‘에 동참한다면 민주당의 ‘유능함’ 덕이고, 그렇지 않다면 ‘서민을 위한 민주당 대 부자 감세에 나선 정부·여당’으로 선거 구도를 만들 수 있다.
특히 야당은 지역사랑상품권과 ‘교통패스’ 등 이재명 대표 제안을 적극 추진 중이다. 민주당 소속 김민기 의원이 위원장인 국토교통위원회는 ‘교통패스’ 예산에 2923억원을 증액했다. 교통비 지출액 일부를 국비와 지방비로 부담해 환급해주는 사업이다. 앞서 이 대표는 환승 횟수 제한이나 거리 병산 추가 요금 등이 없는 대중교통 정기권을 제안한 바 있다.
민주당은 새만금 관련 예산도 단독으로 순증 처리했다. 국토위는 새만금 관련 예산을 정부안 대비 1472억원가량 순증했다. 관련 인프라 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관련 예산을 삭감했다고 밝혔지만 야당은 “조속한 마무리가 필요하다”며 증액했다. 농해수위에서도 새만금 신항 개항을 위한 공사비 1238억9000만원 등 2902억원이 의결됐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합의가 안 된 상태에서 강행하는 점에 대해 정부 입장에서 유감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고까지 했지만 야당 단독처리를 막을 수 없었다. 앞서 민주당은 ‘상경 집회’까지 벌이며 새만금 예산 복원을 공언했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야당의 단독 증액 시도 끝에 예비심사를 마치지 못했다. 민주당 과방위원들은 글로벌TOP전략연구단지원사업, 첨단바이오글로벌역량강화 등의 부문에서 약 1조1600억원을 감액하고 과학기술계 연구원 운영비 지원,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포함해 4대 과기원 학생 인건비 등 약 2조원을 증액, 총 8000여억원 증액에 나섰다. 여당은 이에 반발, 퇴장했고 예비심사 의결을 위한 전체회의도 열리지 않았다.
반면 야당은 정부 추진 예산에 대해 어깃장을 놓고 있다. 특히 윤석열정부가 내놓은 취업지원 등 ‘청년 예산’을 삭감해 비판이 일고 있다. 민주당 소속 박정 의원이 위원장인 환경노동위원회는 고용부의 ‘청년 취업 진로 및 일 경험 지원’ 등 취업 지원 관련 예산 2382억여원을 전액 삭감했다. 해당 사업은 수시·경력 중심으로 채용 시장이 변화하며 일 경험을 접하기 어려운 미취업 청년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민주당은 “단기성 체험 위주의 사업으로 실적이 저조하고 실질적으로 취업률을 제고하기 어려운 사업”이라며 감액 이유를 밝혔다. ‘일경험프로그램’은 예산이 집중된 ‘인턴형’보다 기업탐방형·프로젝트형에 인원이 몰려 참여 인원은 2023년 9월 기준 정원대비 65.5%였지만 예산 실집행률은 26.1%에 머물렀다. 청년도전지원 사업도 같은 기간 실집행률이 45.9%에 머물고 목표 인원 대비 지원율도 30%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청년 예산을 야당 단독으로 삭감한 전례가 드물고 ‘쉬었음‘ 청년이 날로 느는 상황인 터라 비판이 나왔다.
국민의힘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19일 논평에서 “청년 취업지원 예산은 전체삭감하면서도 이재명 대표 제안인 3만원 청년 패스 예산은 2900억원을 책정했다. 고민 없는 민주당의 청년 예산에 대한 인식은 최근 논란이 된 무지성 청년 세대 비하 현수막과 결코 다르지 않아 보인다”고 꼬집었다. 같은 날 민주당 윤영덕 원내대변인은 “과다·부실·중복 편성된 무능 예산의 표본”이라며 “단기성 체험 위주 사업은 청년들 ‘희망 만들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청년내일채움공제, 중소기업 특성화고 인력양성 및 중소기업 인력 양성대학 지원사업, 청년월세 한시지원 사업 등에 힘쓰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