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데뷔한 양희영(34)은 지난주 안니카 드리븐 바이 게인브리지 앳 펠리컨 대회부터 모자에 메인스폰서 로고가 없는 ‘민모자’를 쓰고 출전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금융그룹의 후원을 받았지만 계약이 종료된 뒤 다른 기업의 메인스폰서 후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6년만 하더라도 양희영은 세계랭킹 6위에 오르며 리우올림픽에 출전할 정도로 한국여자골프를 대표하는 선수였다. 그해 최고 권위 메이저대회 US여자오픈에서 공동 3위 등 준우승 2회, 3위 2회를 기록하며 톱10에 9차례나 진입할 정도로 펄펄 날았다. 하지만 2019년 LPGA 타일랜드 대회에서 통산 4승을 쌓은 이후 오랫동안 우승 소식은 끊어졌다. 어느덧 나이는 30대 중반이 됐고 성적이 신통치 않자 팬들과 기업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2020년엔 한차례도 톱10에 들지 못하는 슬럼프에 빠졌고 지난해는 왼쪽 발꿈치 부상까지 겹치면 최악의 한해를 보냈다.
세계랭킹 36위까지 떨어지며 오랜 부진에 시달리던 양희영이 샷 이글 한방을 앞세워 LPGA 투어 시즌 최종전에 우승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양희영은 20일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티부론 골프클럽 골드코스(파72)에서 열린 CME그룹 투어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이글 1개, 버디 5개, 보기 1개를 묶어 6타를 줄이는 뒷심을 발휘했다. 최종합계 27언더파 261타를 적어낸 양희영은 하타오카 나사(24·일본), 앨리슨 리(29·미국)를 3타차로 여유 있게 따돌리고 2019년 2월 혼다 LPGA 타일랜드 우승 이후 4년 9개월 만에 감격스런 다섯번 째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태국(3승)과 한국(1승)에서 열린 LPGA 대회에서만 우승했던 양희영은 처음으로 미국 본토에서 열린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고 우승 상금 200만달러(약 25억9300만원)의 ‘잭폿’도 터뜨렸다.
양희영은 시즌 최종전 투어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세 번째 한국 선수가 됐다. 이 대회에서 고진영(28·솔레어)과 2021년과 2020년, 김세영(30·메디힐)이 2019년에 우승했다. 메인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모자 정면에 미소 모양 수를 놓고 출전한 양희영은 “골프를 하면서 기복도 있었지만 이번 시즌처럼 은퇴까지 생각한 시간은 없었다”며 “최근 팔꿈치 부상으로 고통을 겪었고 선수 생활을 할 날도 많이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양희영은 “코치와 가족들의 도움으로 생각을 바꿨고 우승으로 보답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결코 포기하지 말고 꿈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자”며 응원해 준 팬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하타오카와 공동 선두로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한 양희영은 전반에 버디 2개, 보기 1개로 한 타를 줄이는데 그친 반면 하타오카는 버디 2개로 2타를 줄여 나사에게 단독 선두를 내줬다. 이날의 승부처는 13번 홀(파4). 양희영이 친 두 번째 샷은 핀을 살짝 지나쳤지만 백 스핀을 먹고 홀로 빨려 들어갔다. 이 샷 이글로 양희영은 단독 선두로 나섰다. 하타오카가 14번홀(파5)에서 버디를 잡아 다시 공동 선두를 이뤘지만 16번홀(파3) 보기로 다시 2위로 떨어졌다. 양희영은 이를 놓치지 않고 17번홀(파5)에서 가볍게 버디를 잡아내며 쐐기를 박았다. 2타차 단독 선두로 18번 홀(파4)에 오른 양희영은 두 번째 샷을 홀 3m에 떨어뜨린 뒤 버디를 떨궈 우승을 자축했다.
한편 올 시즌 메이저대회 2승 포함 4승을 거두며 세계랭킹 1위에 오른 릴리아 부(26·미국)는 4위(21언더파 267타)에 올라 생애 처음 상금왕과 함께 올해의 선수를 차지했다. 최저타수상을 노리던 김효주(28·롯데)는 공동 13위(14언더파 274타)에 머물러 5위(20언더파 268타)에 오른 아타야 티띠꾼(20·태국)에게 베어트로피를 내줬다. 한국 선수들은 이번 시즌 고진영 2승, 유해란(22·다올금융그룹) 1승, 김효주 1승 포함 모두 5승을 합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