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주를 기반으로 하는 최대 마피아 조직 ‘은드랑게타’와 그 정치적 ‘뒷배’에 대한 판결이 시작됐다. 2만명의 조직원이 전 세계 40여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은드랑게타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위력적인 범죄조직 중 하나로 꼽힌다. 유럽에 들어오는 코카인의 대부분을 통제해 시칠리아 마피아 조직 ’노사 코스트라’를 뛰어 넘었다.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주 비보 발렌티아 법원은 2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최대 마피아 조직 은드랑게타 조직원과 정부 조력자 등 피고인 338명에 대해 1심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마피아 조직원과 이들을 도운 정부 고위급 관료 등 200여명에 대해 도합 2200년형을 선고했다. 100여명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이 시작된 지 3년 만이다.
검찰은 애초 이들에게 5000년 이상의 징역형을 구형했다.
2021년 1월에 시작된 재판은 칼라브리아주 라메치아 테르메 지역에 특수 제작된 벙커에서 진행됐다. 벙커 법정에는 참석자들이 멀리서도 재판을 볼 수있도록 천장 곳곳에 모니터가 설치됐다.
400명 이상의 변호사가 피고인을 변호했고 약 900명의 증인이 증언을 했다. 또한 변호사, 증인, 피고인이 마주치지 않도록 법정에 화장실 32개가 마련됐다.
판사가 판결문을 읽는 시간만 1시간 40분이 걸렸다고 현지 매체 안사가 전했다.
은드랑게타의 뒷배를 봐줘 ‘마피아의 해결사’로 불린 잔카를로 피텔리가 전 상원의원은 재판에서 징역 11년형을 선고받았다. 피텔리 전 의원은 지난 6월 별세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의 법률고문도 맡았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살아 생전 마피아 연루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또 이탈리아 군사경찰대 중령을 지낸 조르조 나셀리는 2년 6개월, 전직 경찰관 미켈레 마리나로는 10년 6개월, 전 지방의회 의원인 피에트로 잠보리노에게는 18개월의 징역형이 각각 선고됐다.
법원은 아울러 은드랑게타의 작은 보스인 사베리오 라치오날레와 도메니코 보나보타에게 나란히 징역 30년형을 선고했다.
‘삼촌’으로 불리며 별도의 재판을 받는 은드랑게타 최고 보스 루이지 만쿠소에 대한 판결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AFP 통신은 이날 재판이 최근 수십년간 이탈리아에서 최대 규모의 마피아 재판이라고 전했다. 이번 재판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범죄 조직 중 하나인 은드랑게타에 심대한 타격을 줬다고 평가했다. 은드랑게타는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1993년 사망 당시 보유한 자산의 현재 가치인 700억 달러(약 93조원)보다 더 많은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드랑게타는 마약 밀매, 고리대금업 등을 통해 연간 500억유로(약 67조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것으로 추산된다. 유럽에 들어오는 코카인의 대부분을 통제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범죄조직 중 하나로 꼽힌다.
이들은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에서 생산된 마약을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구와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주 지오이아 타우로 항구를 통해 유럽으로 들여왔고, 벌어들인 돈을 유럽 여러 국가에서 레스토랑, 피자가게, 카페, 아이스크림 가게 등에 투자한 뒤 세탁했다. 또 은드랑게타가 국가 간 거액의 현금 이동을 전문으로 하는 중국 범죄자들과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탈리아 경찰은 2019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리나시아 스코트’이라는 작전명으로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 검거 작전을 펼쳐 은드랑게타 조직원과 정부 조력자 등 수백명을 붙잡아 살인, 범죄 조직 가입, 마약 거래, 돈세탁, 국가 공무원 부패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리나시아는 부활을 의미한다. 스코트는 콜롬비아 카르텔과 ‘은드랑게타’ 사이의 연관성을 밝혀낸 공로를 쌓은 미국 특수요원 스코트 W 시벤의 이름에서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