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타당, 탕….’ 1979년 12월12일 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총성이 울린다. 그때 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오랫동안 비밀에 부쳐졌고, 이는 당시 인근에서 살던 한 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소년은 바로 22일 개봉하는 영화 ‘서울의 봄’의 김성수 감독이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잖아요. 고등학교 3학년 때인데, 총소리가 너무 컸어요. 오랜 세월 무슨 일인지 모르고 지내다가 30대 중반이 돼서, 김영삼 대통령 시절 하나회를 척결한다는 얘기가 나왔고 내막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았죠.”
지난 13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은 처음 영화감독 제안을 받았을 때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9년 가을 제작사 대표에게 ‘서울의 봄’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혈관 속 피가 역류하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처음에는 정중히 거절했지만 내 마음은 어느새 잔뜩 겁에 질린 열아홉 살이 맞닥뜨린, 숨 막히는 그 겨울밤 속으로 정신없이 내달리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제가 그린 전두광은 실제 그 인간이 아니라 제가 살아오면서 만난 수많은 전두광들이에요. 권모술수에 능하고 눈치도 빠르고, 자기 사람들도 잘 끌어안고, 그러면서도 누구도 믿지 않는 그런 걸 형상화한 면이 있어요. 그렇게 (사료에 묶여있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인물로) 바꾸고 보니까 (연출이) 자유로워지더라고요.”
역사에서 실제로 군에서 마지막으로 전두환과 맞섰던 장태완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을 모델로 한 이태신 역시 김 감독의 상상력이 가미된 인물이다.
“원래 그분(장태완)은 다혈질이에요. 무섭고 호랑이 같은 분이고, 전두광보다 더 세고 불타오르시는 분인데, 영화가 두 사람의 대결로 갈 때 외롭게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은 불같은 사람보다는 선비 같은 지조로 낭떠러지 끝에서도 흔들림 없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분이어야 했어요.”
김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다큐멘터리 같은 “사건의 연대기가 아니라 이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에 대한 작동 원리에 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영화가 허구인 것은 아니다. 1979년 밤이 그랬듯 영화 속 12월12일은 일진일퇴가 거듭된 순간이 그대로 녹아 있다. 국방부 장관(김의성)이 잠적하고, 전두광 측의 공수부대와 노태우를 모델로 한 노태건(박해준)이 이끄는 전방 9사단의 병력이 서울로 향한다. 백척간두의 상황에서 전두광이 장악하지 못했던 수도권의 공수부대가 서울로 향하며 반란군은 궁지에 몰린다.
촘촘하게 짜인 시나리오와 연출을 빛나게 하는 건 배우들의 연기다. 정우성은 김 감독의 말처럼 이태신에 딱 맞는 배우다. 김 감독은 이태신의 배역에 대해 “우성씨가 하면 너무 잘 맞을 것 같았고, 우성씨를 염두에 두고 (캐릭터를) 바꿔 갔다”고 했다.
황정민은 엄청난 아우라를 내뿜는다. 관객마저도 전두광의 열정에 휩쓸릴 정도다. 정우성은 황정민의 기세에 눌리지 않기 위해 애써야 했다고 한다. 김 감독은 황정민에 대해 “에너지와 열정을 가늠할 수 없다. 연기 천재인 것 같다”며 “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을 흔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데, 황정민은 관객들의 마음속으로 단숨에 내달려 갈 수 있는 기가 막힌 배우다”라고 극찬했다.
두 사람의 연기가 영화의 전부가 아니다. 박해준, 이성민뿐 아니라 헌병감 역의 김성균, 특전사령관 역의 정만식, 참모차장 역의 유성주, 반란군 장성 안내상, 2공수 여단장 최병모, 전두광 비서실장 박훈, 4공수 여단장 김성오, 특전사령관 부관 오진호 소령역의 정해인, 총장 경호원 이준혁, 대통령 역의 정동환 등등 주요한 대사와 역할이 있는 배우만 68명에 이른다.
영화의 특성상 때로 화면에 수십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 장면에서 각 배우는 한 편의 연극 무대처럼 정해진 동선을 따라 움직이며 능숙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 낸다.
김 감독은 마치 연극 연출을 하듯 배우들의 ‘블로킹 라인’(연기 동선)을 정하고, 모든 배우가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는 생동감 넘치는 장면을 담아내려 애썼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에게 연기 지시를 일일이 할 수 없어, 애초에 연기를 잘하거나 연극 경험이 있는 배우들을 대거 기용해야 했다. 더해 배우들은 열과 성을 다해 연기에 임했다고 한다.
“배우 대부분이 40~60대로, 자신들의 삶을 관통한 큰 사건을, 그 시대를 영화로 처음 재현하는 일에 참여한다는 의의가 컸던 거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병풍처럼 대사 하나 없는 경우에도 열심히 하시고 지방까지 와서 연기해 주시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시나리오가 주는 흥미, 치밀한 연출, 배우들의 열정적 연기 배합이 만들어 낸 몰입감은, 관객들을 ‘그때’로 소환한다. ‘서울의 봄’은 상업적으로 ‘극장의 봄’을 기대해 볼 수 있을 만큼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동시에 전두광의 광기 어린 웃음이 뇌리에 박히는 영화는 그때 그 사건을 다시 돌아보거나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다. 12·12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는 김 감독은 영화를 통해 의문을 풀었다기보단 자신이 가졌던 생각을 형상화할 수 있는 계기였던 것 같다고 했다. 김 감독이 형상화한 그날은 역사에 대한 해답이나 평가라기보단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