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지만 투기 어려운 뉴욕 부동산…“추천서 받고 면접 본다” [심층기획-주거안정이 민생안정이다]

조합이 소유… 지분만 매매 가능
임대·투자목적 사고팔 수 없어

“뉴욕에선 돈이 있어도 마음대로 집을 살 수 없어요.”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10년 가까이 부동산을 중개하는 전규옥(63)씨는 뉴욕의 주택 시장이 흔들림이 적다고 설명했다. 뉴욕의 주택은 크게 호 단위로 매매할 수 있는 콘도미니엄(condominium·콘도)과 건물 전체 소유권은 협동조합이 가지고 부동산 지분만 매매하는 코옵(Co-op)으로 나뉜다. 미국 부동산 플랫폼 스트리트이지(StreetEasy)는 재작년 뉴욕 내 주택의 75%가량이 코옵이라고 추산했는데, 코옵은 조합이 깐깐한 서류 검토와 면접으로 실제로 거주할 사람만 ‘선발’해 한국에서처럼 개인이 임대사업이나 투자를 목적으로 사고팔 수 없다는 설명이다.

 

21일 뉴욕 부동산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뉴욕의 주택 시장은 비싼 것은 맞지만 투기로 인한 거품은 적었다. 그 배경에는 실수요자 여부를 꼼꼼하게 점검하는 코옵이 주택시장의 과반을 차지하고 더불어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도 은행이 계약 금액의 적정성을 검토하는 등 투명한 거래 환경이 있었다.

 

전씨는 “코옵을 사려면 지원서를 써야 하는데 지인이 작성한 추천서 3부, 직장의 월급 증명서 등 제출해야 할 서류도 많다”며 “서류 검토가 끝나면 일종의 반상회를 열어 구성원 동의를 받아야 절차가 마무리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코옵만큼 까다롭진 않다고 하지만 콘도에조차 이러한 절차가 일정 부분 녹아 있어 부동산 투기가 어려운 조건”이라고 덧붙였다.

 

뉴욕 주택시장에서는 개인임대사업자가 드문 것도 주목할 점이었다. 부동산 투자회사인 ‘PD Properties NYC’를 운영하는 토니 박(Tony Park) 대표는 맨해튼에선 개인임대사업자가 존재하기도 어렵고 수익도 내기 힘든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임대주택의 70∼80%가 회사가 건물을 통째로 소유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뉴욕에선 집을 사려면 계약금의 대략 30%를 선입금해야 하는데 이를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도 드물거니와 나머지 대출의 금리를 따져보면 가져갈 수 있는 수익이 크지 않다”고 부연했다.

 

까다로운 주택담보대출 절차 역시 투명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 뉴욕의 한 네트워킹 회사에 근무하는 프래틱(Pratik·38)씨는 2020년 주택담보대출로 집을 샀는데 대출 심사 과정에서 계약한 금액이 은행이 매긴 적정가보다 높다는 사실을 알고 집주인과 가격을 조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으로선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 그런 것이지만 집값이 적절한지 검토받으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고 말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부터 미국 한 은행에서 고위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시저(Cesar·55)씨는 “주택이 부와 투자를 위한 상품 혹은 수단으로 쓰이며 평범한 개인이 집을 소유하기 어렵게 된다는 점을 목도한 미국은 대출 과정에서 투명성과 사실성을 증가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뉴욕 주택시장에 진통이 없는 건 아니다. 근본적으로 지나치게 몰린 수요로 매매가격과 임대료가 일반 시민들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라는 것이다. 도미니크 베르누카 후드(Dominique Bernucca-Hood) 메트로폴리탄 주택협의회 활동가는 “코옵이 안정적 주택을 제공하는 훌륭한 방법은 맞지만 까다로운 입주 절차로 진입 장벽이 극도로 높으며 입주까지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문제가 있다”며 “수많은 미디어 시장과 상업적 이익이 과밀한 도시인 만큼 임대료가 계속해서 인상되고 노동 계층은 도시 외곽으로 ‘강제 이주’당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노동 계층의 요구에 뿌리를 둔 사회적 주택 개발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도미니크 베르누카 후드 메트로폴리탄 주택협의회 활동가가 뉴욕시립대에서 열린 임차인 상담 모임이 끝난 후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주택협의회는 한 달에 두 번 임대인과 분쟁을 겪고 있는 임차인을 위해 상담을 진행한다.

잉그리드 엘렌(Ingrid Gould Ellen) 뉴욕대 퍼먼센터(NYU Furman Center) 교수는 “뉴욕의 편의시설과 다양성, 기회 때문에 뉴욕 생활에 대한 수요는 계속해서 높은 상태이지만 주택은 충분하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엘렌 교수는 이어 “민간회사가 시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가격대의 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토니박 대표 역시 “현재 뉴욕 상업용 빌딩에는 공실 상태로 있는 공간이 많다”며 “부동산 투자회사들이 이를 주거용으로 개발해 시장에 공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높아진 금리가 주택 시장의 가격을 띄우는 미국 상황은 고금리 속에서 회복 여건이 악화하고 있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이재랑 한국은행 뉴욕사무소장은 “미국인의 대다수가 30년짜리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로 집을 사는데 금리가 오른 지금 새집으로 옮겨갈 사람은 없다”며 “그러다 보니 매매가도 오르고 새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수요는 다시 임대로 몰려 임대료까지 올랐다”고 분석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