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어제 의대 입학 정원에 대한 각 대학의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에서 전국 40개 의대가 2025학년도에는 2151∼2847명, 2030학년도에는 2738∼3953명까지 증원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냈다. 대학들이 희망한 의대 증원 수요는 당초 정부나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큰 폭이다. 대학이 추가 투자를 통해 현 정원(3058명) 대비 두 배 이상까지 학생을 수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명한 것이다. 그간 의사 양성 인프라가 부족해 의사의 질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정원 확대를 반대한 대한의사협회(의협)의 명분이 무색해졌다.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의사 부족이 심각해 지방 의료는 붕괴 직전이다. 소아과·외과·응급의학과 등 필수 의료 분야는 지원자가 없어 환자들이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가 목숨을 잃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2021년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7명보다 크게 낮다. 이러니 국민 10명 중 8명이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하는 여론조사가 나오는 것이다. 보건의료노조도 어제 필수·지역 의료 확충을 위해 의대 정원을 최소 10년 동안 1년에 1000명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의협은 “수요조사가 과학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못하다”며 총파업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민심을 무시하는 직역이기주의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의료 접근성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기 때문에 의대 정원 확대가 불필요하다는 의료계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가장 중요한 가치는 국민 건강권이다. 의사들도 지금 같은 의료 현실에서 국민 고통이 너무나 크다는 사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의사 확충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다. 의료계가 반대를 접고 대승적으로 동참할 때가 됐다.
정부는 수요조사 결과 발표를 두 차례나 연기할 만큼 의료계의 눈치를 보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의료계 파업 대란이 벌어질 것을 우려해서다. 정원 조정안도 아니고 수요조사 결과 발표를 미적거린 정부 태도는 실로 무책임하다. 이러니 내년 초까지 증원 규모를 확정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 나오지 않나. 의료 개혁이 또다시 좌초되지 않으려면 정부가 보다 분명하고 단호한 입장을 보여 줘야 한다. 또 정교한 필수 의료 수가 개선, 지방 의료 살리기 정책 등 인프라 확충 방안도 서둘러 내놓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