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비틀스·퀸·해리포터 그리고 데이비드 베컴의 오른발을 갖고 있다면, 한국엔 BTS·블랙핑크·오징어게임 그리고 손흥민의 오른발이 있습니다."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웨스트민스터 의회 로열 갤러리에서 한 영어 연설에서 양국의 문화예술 매력을 언급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자 영국 의원들 사이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왔다.
윤 대통령은 그간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처칠 수상을 꼽아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북한의 핵 위협 등으로 국제사회가 분열하고 있다면서 영국의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의 말도 인용했다.
"문명은 도전과 응전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탄생하고 발전한다"는 표현이다.
윤 대통령은 "역동적인 창조의 역사를 써 내려온 한영이 긴밀히 연대해 세상의 많은 도전에 함께 응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인연을 맺었던 영국 출신 인사들도 함께 소개됐다.
1887년 신약성서를 한국어로 최초 번역한 존 로스 선교사, 1904년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뒤 한국 독립에 앞장선 어니스트 베델 선생, 1916년 세브란스 병원 수의학자로 한국에 와 독립운동을 한 프랭크 스코필드 선교사 등이 거명됐다.
◇ 영국 참전용사 즉석 소개도…"무한한 경의"
한국 전쟁 참전도 한영 관계의 결속력을 상징하는 핵심 소재였다.
윤 대통령은 "1950년 영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8만명의 군대를 파병했다"며 "이들 중 천 명이 넘는 청년들이 알지도 못하는 먼 나라 국민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말했다.
이날 연설에는 6·25 전쟁 참전 용사인 콜린 태커리 옹이 자리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 6·25 전쟁 참전용사이자 대한민국의 명예 보훈장관인 콜린 태커리 옹을 모셨다"며 "깊은 감사와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태커리 옹이 2019년 영국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 최고령 우승자라고도 소개하자 좌중에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태커리 옹이 올해 7월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찾아 '아리랑'을 불렀던 일화도 언급하면서 "모두의 마음을 울리는 노래였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제임스 칸 중령이 이끄는 영국의 글로스터 1대대가 임진강 설마리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도 말했다.
◇ 30초 기립박수…상원의장 "오늘은 노래 못 들어 아쉬워" 농담
윤 대통령이 외국 의회에서 외국어로 연설한 것은 지난 4월 국빈 방미 때에 이어 두 번째다.
현지 언어로 연설해 정치인뿐만 아니라 영국 국민의 마음에 다가가는 시도라는 게 대통령실 관계자의 설명이다.
셰익스피어 등의 인용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이날 의회에는 존 맥폴 상원의장, 린지 호일 하원의장, 자민당 당수이자 한영 친선의원협회장인 에드 데이비 하원의원, 데이비드 얼튼(북한에 관한 초당적 그룹 의장) 상원의원 등 총 450여명이 빼곡히 들어섰다.
17분가량의 연설이 끝나자 의원들은 전원 기립해 약 30초간 박수를 보냈다. 연설 중간에는 한 차례 박수가 나왔다. 시작과 끝을 포함 총 3번의 박수다.
맥폴 상원의장은 연설이 끝난 뒤 감사 인사를 전하며 윤 대통령이 지난 4월 국빈 방미 당시 불렀던 '아메리칸 파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가 "오늘은 노래를 못 들어서 아쉽다"고 농담하자 좌중에는 다시 한번 웃음이 흘러나왔다. 윤 대통령도 미소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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