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낙엽, 이상하지 않아요?”
22일 은행나무 아래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보던 정모씨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흔히 은행나무잎은 노란색이라고 알고 있지만 정씨 말대로 바닥에는 녹색 은행나무잎이 가득했다. 그는 “얼마 전 비바람 때문에 떨어진 것 같기도 한데 왜 노란색이 아니고 초록색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기후변화가 ‘노랗고 붉은 낙엽’으로 상징되는 가을 일상 모습을 바꾸고 있다. 길거리에 가득한 노랗고 붉은 낙엽은 11월이 되면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풍경이다. 강수량이 적은 겨울을 대비해 마른 잎을 떨어뜨려 물을 저장하려는 나무의 특성으로 인한 현상이다.
최근에는 노란색이나 붉은색으로 물든 마른 낙엽이 아닌 싱싱한 푸른 잎이 바닥 여기저기에 떨어진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갑작스레 찾아온 한파로 급격히 낮아진 온도에 나무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푸른 잎을 떨궜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온이 가져온 변화된 자연의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나무가 생존을 위해 가을에서 초겨울 사이 나뭇잎을 떨어뜨린다고 설명한다. 겨울은 여름에 비해 낮(해)의 길이가 짧고 강수량이 적어 영양분이 부족하다. 나무는 영양분이 잎까지 도달하는 것을 막아 부족한 영양분으로 겨울을 보내는데, 이 과정에서 나뭇잎의 녹색 색소인 ‘엽록소’가 파괴된다. 엽록소가 파괴되면 색소에 가려져 있던 잎의 본래 색이 드러나며 잎은 노란색 또는 붉은색을 띠게 된다. 땅에 떨어진 낙엽의 색이 노랗거나 붉었던 이유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길거리에는 녹색 낙엽이 가득하다. 갑작스레 낮아진 기온에 계절을 겨울로 ‘착각’한 나무들이 엽록소를 다 파괴하지 못한 채 생존을 위해 나뭇잎을 떨궜기 때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1일 서울 아침 최저기온은 평년보다 7도 이상 낮은 영하 1.9도였다. 바람까지 거세게 불어 체감기온은 영하 4.4도로 떨어지기도 했다. 1주 전(14.1도)과 비교하면 15도 이상의 기온이 갑작스레 떨어진 셈이다.
갑작스러운 한파 원인으로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꼽힌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이 따뜻해지면서 북극을 둘러싸고 원을 그리며 도는 편서풍인 ‘제트기류’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제트기류는 속도가 매우 빨라 북쪽의 찬 공기가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막아준다. 하지만 북극의 기온이 올라가면 제트기류는 속도가 느려져 방어막 역할을 하지 못한다. 지구온난화로 제트기류가 약해지자 북극의 찬 공기가 제트기류를 통과하고 우리나라까지 침투한 것이다.
문제는 기후변화로 인해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식물뿐만 아니라 곤충 등 생태계까지도 영향을 받아 피해를 키운다는 점이다. 오충현 동국대 교수(바이오환경과학)는 “한반도의 경우 100년 전 대비 2도 정도 온도가 상승했는데 가을과 겨울은 짧아지고 여름은 엄청나게 길어졌다”며 “과거보다 해충 발생이 늘어나는 등 겨울이 추워야지만 예방할 수 있었던 피해가 생겨났다”고 경고했다. 겨울임에도 지하철역에서 모기 등 해충이 발견되는 것도 같은 원인에서다.
다만 초록색 낙엽이 지는 것과 관련해선 “갑작스럽게 변한 날씨로 기상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 잎이 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늘진 지역에선 잎이 오랫동안 초록색을 유지하기도 한다”며 “도시에서 햇볕을 잘 받지 못한 나무는 초록 잎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