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매특허인 수비는 물론 공격도 척척’ IBK기업은행 황민경의 쿨함 “고연봉 준다는 데 안 받을 수 없죠. 저는 열심히 할 뿐”

여자 프로배구 IBK기업은행의 16년차 아웃사이드 히터 황민경(33)은 지난 봄 네 번째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다. 2017년부터 뛴 현대건설에서 주장까지 맡고 있던 그였기에 잔류가 예상됐지만, IBK기업은행으로의 전격 이적을 택했다. 현대건설이 V리그에서 첫 FA 자격을 얻은 김연경과의 계약에 치중했고, 그 사이 IBK기업은행이 황민경과 연락을 취해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결국 김연경은 흥국생명에 잔류하면서 현대건설은 김연경도 얻지 못하고, 황민경만 잃었다.

황민경

계약 조건은 2년 9억원. 1년으로 보면 4억5000만원으로 보장금액이 3억2000만원, 옵션이 1억3000만원이다. 어느덧 16년차에 접어든 베테랑인데다 174cm의 단신,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전성기에 비해 떨어진 점프력으로 공격력이 떨어진 선수에게 너무 큰 돈을 안겨준 게 아니냐는 평가가 잇따랐다.

 

IBK기업은행이 황민경을 영입한 이유는 확실하다. 2021~2022시즌 중반 라셈의 대체 외국인선수로 왔다가 2022~2023시즌까지 뛴 달리 산타나(미국)는 주공격수 타입의 선수가 아니었다. 리시브와 수비에도 공헌을 해줄 수 있는 좋은 선수이긴 하지만, 이단 연결 상황이나 확실한 한 점이 필요한 상황에서 믿고 맡길 수 있는 선수가 아니다. IBK기업은행은 전형적인 거포 유형의 외국인 선수를 뽑고 싶었고, 그렇게 되면 비게 되는 수비력의 공백을 황민경으로 채우고 싶었기에 다소 높은 금액을 지르면서 영입을 한 것이다.

황민경.

IBK기업은행의 통 큰 투자는 통하는 모양새다.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에서 1순위로 뽑은 아베크롬비는 11경기에서 288점(3위)을 뽑아냈다. 성공률도 42.74%로 5위다. 성공률이 다소 아쉽지만, 팀 공격의 39.1%를 책임지면서 나쁘지 않은 효율과 큰 볼륨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황민경이 수비에서 버텨주고 있기 때문이다. 황민경의 리시브 효율은 40.57%로 전체 7위다. 리베로 선수들을 빼면 57.96%로 전체 1위에 올라있는 문정원(사실 말이 안되는 효율이다)과 김연경(45.52%, 4위), 박혜민(42.14%, 6위)에 이어 4위다. 디그도 세트당 3.833개를 걷어올리며 황민경은 수비 10위(세트당 5.524)에 올라있다. 수비 부문 1~7위까지 리베로 포지션 선수들이 점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비리베로 중엔 3위다.

황민경

 

지난 24일 화성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정관장과의 2라운드 맞대결에서도 황민경의 진가가 드러난 경기였다. 이날 황민경은 20번의 디그를 시도해 19개를 성공시켰고, 15번의 리시브 중 6개를 세터 머리 위로 정확히 전달했다.

 

수비에서만 빛난 게 아니었다. 공격에서도 제 몫을 다 했다. 팀 공격의 12.1%를 책임지면서도 50%의 높은 성공률을 보여주며 서브득점 1개, 블로킬 1개를 포함해 12점을 기록했다. 아베크롬비(35점)에 이은 팀 내 두 번째 다득점자였다. 시즌 초반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던 황민경이었지만, 이날은 각이 큰 크로스 공격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몸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왔음을 알렸다.

 

경기 뒤 수훈선수로 인터뷰실에 들어선 황민경은 “비시즌 동안 부상으로 제대로 훈련을 하지 못했다. 훈련을 시작한지 2주만에 V리그가 시작됐다. 평소 훈련을 많이 해야 하는 타입이다. 훈련을 넉넉하게 해서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수준이 되어야 자신감이 생기는데, 이번 시즌엔 그러지 못해 시즌 초반엔 자신감이 많이 딸어졌다. 몸은 안 되는데, 잘하고는 싶고 그래서 1라운드에는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 경기는 최근 경기 중 가장 만족스럽다. 처음엔 잘 안됐는데, 점프도 좀 됐다. 이제는 올라올 때다”라고 덧붙였다.

황민경, 최정민.

이날 황민경은 20번의 서브를 시도해 단 한 차례의 범실도 없었다. 연타성 서브를 툭툭 때리다가도 강한 서브로 에이스 1개를 성공시키기도 했다. 마치 야구에서 변화구를 연달아 던지다 직구를 던지면 더 빨라보이는 효과를 본 셈이다. 황민경은 “제가 종종 그렇게 서브에 변화를 준다. 목적타로 맞춰 넣다가도 한 번씩 강하게 넣으면 효과가 좋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인터뷰실에 함께 들어온 4년 미들 블로커 최정민이 최근 코트에서 눈물을 자주 흘리는 모습에 대해 황민경은 대견하다는 마음도 드러냈다. 그는 “(최)정민이가 눈물 흐르는 게 남들보다는 좀 빠른 것 같다”라고 농담을 던진 뒤 “그래도 선수들은 그런 마음이 있어야 성장하는 거니까, 저도 그 마음이 무엇인지 잘 안다. 그래도 저는 코트에서는 울지 않고 숙소에서 많이 울었다”라고 말했다.

 

황민경도 자신을 향한 FA 계약이 오버페이라는 시선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황민경은 쿨했다. 그는 “그렇게 준다는 데 제가 안 받을 수는 없죠. 저는 선수로서 제 본분에 충실하고 열심히 하면 되는거니까요”라고 답했다.

 

IBK기업은행은 2020~2021시즌 플레이오프에서 흥국생명에게 패한 이후 지난 2년 간 봄배구를 하지 못했다. 챔피언 결정전에 오른 것은 2017~2018시즌(준우승)이 마지막이다. 팀 내 최고연봉자인 황민경이 전매특허인 수비력과 특유의 파이팅으로 IBK기업은행을 봄배구로 이끌 수 있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그를 향한 오버페이 논란은 수그러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