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반나절도 안 돼 가격 반 토막… 사실상 ‘버거코인’ 놀이터 전락 [심층기획-‘투기판’된 국내 코인시장]

<상> ‘고래’가 시세 쥐락펴락

업비트에 전 세계 거래 쏠림 심화
변동성 큰 알트코인 압도적 유입

호재 없이 열흘 만에 4배 치솟다 ‘뚝’
수십%씩 급등락 반복하는 경우도
내국인들만 이용… 피해 고스란히

금융당국 감시망 아직은 ‘느슨’
소비자가 경각심 갖고 투자해야

국내 1위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에 상장된 일부 버거코인(해외 발행 가상자산)에 거래량이 집중되면서 전 세계 시세가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거래소가 일명 ‘고래’(코인 대량 보유자)들의 투기장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들 코인은 특별한 호재 없이 급상승해 개미들을 꼬신 뒤 곧바로 급락해 고점에 물린 국내 투자자들의 피해가 속출했다.

27일 세계일보가 가상자산 중계사이트인 코인마켓캡과 업비트의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를 활용해 지난달 급등한 가상자산 거래량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해외에서 발행한 6개 가상자산의 급등락 과정에서 업비트에 전 세계 거래량의 절반 이상이 집중된 것을 포착했다.

열흘 만에 4배 넘는 상승률을 보인 가상자산 룸네트워크(LOOM)는 전 세계 거래량의 60% 이상이 업비트에 집중됐다. 이 코인은 지난달 4일 종가 기준 162원에서 같은 달 15일 최고 686원까지 가격이 323% 급등했다. 이틀 뒤인 18일 가격은 급락해 167원까지 떨어졌다. 불과 며칠 만에 상승분을 고스란히 반납한 것이다. 같은 기간 룸네트워크의 전체 거래량 중 63%가 업비트에서 발생했다. 룸네트워크는 전 세계 1위 거래소 바이낸스를 비롯해 쿠코인, 비트겟, 빗썸 등 다양한 거래소에도 상장돼 있지만 업비트가 코인 가격의 급등과 급락을 이끈 셈이다. 바이낸스에서의 룸네트워크 거래량은 19% 수준에 불과했다.

 

고래들의 가상자산 흐름을 분석하는 업체 ‘제로엑스스코프’(0xScope)는 지난달 13일 “룸네트워크가 단 3주 만에 550% 상승했으며 업비트에서 290만달러(약 38억원)의 출금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업비트의 특정 주소가 순환 물량의 49.45%에 해당하는 1억7725만달러(2315억원)를 보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정 지갑에 유통량이 집중된 가상자산은 시세 조작 등 불공정거래에 취약하다. 업비트는 신원인증(KYC)을 통해 내국인만 이용할 수 있는 거래소로 급락 과정에서 투자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인에 집중됐다.

◆국내 거래소가 이끈 버거코인 급등

 

지난 10월 중순 가상자산 오브스(ORBS)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오브스의 가격은 지난달 12일 35원에서 6일 뒤인 18일 95원으로 3배 가까이 급등했다. 고점을 찍은 오브스는 약 8시간 뒤 48원까지 49% 급락했다. 그 사이 특별한 호재나 악재는 없었다.

 

오브스가 급등과 급락을 이어 간 지난달 12일부터 23일까지 전 세계 거래량의 88%는 업비트에 집중됐다. 오브스 역시 세계 5위 거래소 오케이엑스(OKX)와 HTX(옛 후오비), 빗썸 등에 상장됐는데 유독 국내 사용자만 이용할 수 있는 업비트에서 거래량이 대폭 늘었다.

 

가상자산 아크(ARK)는 지난달 26일 632원에서 지난 10일(2400원)까지 280% 가격이 급등했다. 이 급등의 중심에도 업비트가 있었다. 해당 기간 전 세계 거래량 중 업비트 비중(58%)은 바이낸스 비중(31%)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메타디움(META)의 가격도 지난달 14일 32원에서 18일 74원으로 2배 넘게 급등했다. 메타디움 역시 지난달 24일 42원까지 44% 급락했고 현재 60원대를 유지 중이다. 이 코인도 해외에서 발행된 코인이지만 거래량의 96%는 업비트였다.

 

가스(GAS)는 지난달 27일 4850원에서 지난 10일 4만150원으로 가격이 728% 치솟았다. 이틀 뒤 가격은 9640원까지 급락했다. 해당 기간 가스의 거래량은 전체 66%가 업비트였다. 폴리매쉬(POLYX)의 가격도 지난달 17일(172원)부터 같은 달 31일(586원)까지 약 4배 급등했다. 이후 지난 2일 281원까지 급락했는데 전체 거래의 68%는 업비트에서 이뤄졌다.

◆투심인가, 세력인가

 

업비트의 전체 거래량을 보면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시가총액이 높은 가상자산보다 시총이 낮아 변동성이 높은 알트코인(얼터너티브 코인)의 거래량이 압도적으로 높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지난 25일 기준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의 거래량 비중은 5.8%, 이더리움은 1.8% 수준에 불과했다. 반면 바이낸스 현물 시장에서 비트코인 거래량은 34.6%, 이더리움은 9.1%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일부 버거코인의 급등락 과정에서 업비트에 거래량이 집중된 원인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인의 도박성’을 꼽았다. 최근 비트코인 급등으로 국내 투자자의 알트코인에 대한 투자심리가 살아났다는 것이다. 김동환 원더프레임 대표는 “일부 코인의 경우 외국에 있는 발행사들도 한국에서 전체 60∼70% 거래량이 나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는 상황”이라며 “시가총액이 작은 가상자산일수록 비교적 소액으로 가격이 띄워질 수 있는 측면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일종의 내러티브 투자라고 해서 테마주처럼 정확한 호재 없이 연관성만으로 코인 가격이 상승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업비트 측은 “외국에서 인기가 없는데 유독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특정 코인들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내부적으로 이상거래를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발견 시 자체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거래소가 시가총액이 작은 가상자산 물량을 중심으로 세력이 놀아나는 투기장처럼 활용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홍기훈 홍익대 교수(경영학)는 “특정 코인이 급등하고 급락하는 과정에서 물량을 많이 가진 이들의 시세 조종이 당연히 발생할 수 있다”며 “거래소 입장에서는 수수료를 벌어들여 좋겠지만 우리끼리 투기판에 놀아나면서 돈 넣고 돈을 잃는 상황이 반복돼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소비자가 경각심을 가지고 코인 투자에 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내년 7월부터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법)이 시행되면서 수사 당국에 관련 부서가 생겼고 코인의 시세 조종 등 불공정거래를 처벌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지만 이에 대한 금융 당국과 거래소의 감시망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근 문제가 된 코인 대부분은 해외에서 발행한 코인으로 단기 거래 과열, 시세 급변에 대한 감시가 제때 이뤄지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업비트 원화마켓에 상장한 10개 코인은 모두 해외 발행 코인이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버거코인의 급등락에 따른 국내 소비자 피해에 대한 지적에 “현 제도하에서는 거래소에 강제적 통제 권한을 갖고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