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유럽과 중국에서 불어닥친 해상풍력 광풍이 국내에도 몰아치고 있다. 재생에너지 100% 달성을 위해 풍력발전에 몰두하던 각국은 설치 제약이 덜한 제주 등 국내 바닷가로 몰려들고 있다.
◆유럽·中서 불어온 해상풍력
1일 세계풍력에너지협의회(GWEC)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해상풍력 발전 신규 설치량은 8770㎿로 역대 두 번째로 많았다. 지난해에만 제주 바닷가에 흔한 3㎿ 규모 해상풍력 발전기 2900여개가 세계 곳곳의 바닷가에 설치된 셈이다. 통상 원자력발전소 1기가 1000㎿의 전력량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GWEC는 중국과 유럽, 대만이 최근 해상풍력 시장을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중국의 해상풍력 신규 설치 비율은 전 세계의 57.6%로 절반을 넘었고, 영국(13.4%), 대만(13.4%), 프랑스(5.5%), 네덜란드(4.2%), 독일(3.9%), 노르웨이(2%)가 뒤를 이었다.
세계 각국은 탄소중립 정책의 첨병으로 해상풍력 발전에 집중하고 있다. 나라마다 시기가 다를 뿐 탄소 배출 없는 에너지 100%를 목표로 내달리는데, 최근 해상풍력 발전을 대규모로 보급한 중국이 화력발전과 신재생에너지의 발전원가가 같아지는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를 달성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해상풍력 발전이 각광받고 있다.
가장 주목받고 있는 지역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태평양이다. GWEC는 “2032년까지 전 세계에서 38만㎿의 해상풍력이 신규 구축돼 44만7000㎿에 이르게 될 것”이라며 “신규 해상풍력의 절반가량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일 것이고 유럽(41%)과 북미(9%), 라틴아메리카(1%)가 나머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상풍력 발전은 육상풍력 발전의 단점을 상쇄한다. 산악 지대는 풍량이 풍부하지만 바람이 불규칙하고 외부 접근성이 떨어져 설계·설치·운영 비용은 물론 전력망 구축 비용도 상당하다. 해상풍력 발전은 입지 선정에 제약이 덜하고, 대규모 설치가 가능해 발전단가를 지속적으로 낮출 수 있다.
◆국내 기술로 제주서 3·5.5·8㎿ ‘풀 라인업’
우리나라는 중국·대만 등에 뒤져 있지만 유망 국가로 평가받는다. 세계적 풍력터빈 기업인 덴마크 베스타스와 세계 최대 규모 그린에너지 투자운용사인 코펜하겐 인프라스트럭처 파트너스(CIP)가 국내 투자에 나선 것이 근거다. 덴마크 국영기업인 오스테드가 인천 앞바다에 1600㎿ 규모 해상풍력 개발을 추진하고, 노르웨이 국영기업 에퀴노르는 추자도 인근에 1500㎿ 규모 해상풍력 발전을 가시화하는 등 글로벌 기업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국내 대기업으론 두산에너빌리티가 발전플랜트 주기기 설계·제조·건설 경험을 바탕으로 해상풍력 발전 기기 개발 경쟁에 나서고 있다. 2011년 3㎿ 풍력발전기를 개발했고, 2019년 5.5㎿, 지난해 국내 최대 규모인 8㎿ 풍력발전기 개발에 성공했다. 2025년 상용화를 목표로 10㎿ 해상풍력 발전기 모델도 개발 중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국내 첫 상업용 단지인 제주 탐라 해상풍력 단지와 서남권 해상풍력 단지에 3㎿ 풍력발전기를 각각 10기와 20기씩 세웠다. 한림 해상풍력 단지에 5.5㎿ 풍력발전기 18기를 공급하고, 내년에 착공 예정인 한동평대 해상풍력 단지에 공급할 8㎿ 풍력발전기 13기까지 포함하면 국내 기술로 제작 가능한 3·5.5·8㎿ 풍력발전기 풀 라인업을 제주에 갖추게 된다. 제주 한림읍 수원리 해상에선 내년 준공을 목표로 100㎿ 규모 한림 해상풍력 사업의 막바지 작업도 한창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정부 국책과제 등을 통해 한국 지형, 바람에 최적화한 해상풍력 발전기를 개발하고 있다. 저풍속 조건에서도 발전량을 최대한 늘릴 수 있는 게 핵심이다.
다만 12∼13㎿ 규모 풍력발전기를 공급하는 해외 기업들과 경쟁해야 한다. 두산에너빌리티 측은 “해외 대비 70% 수준인 풍속에 최적화한 모델”이라며 “국내 환경과 비슷한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8㎿ 풍력터빈 수출을 타진하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주기적 유지 보수가 필요한 특성상 예비부품 조달과 기술진 적기 투입이 가능해 운영비가 절감되고, 블레이드·타워 등 핵심 부품 생산에 130여개 국내기업과 협력해 국내 해상풍력 산업 생태계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병목 풀어야 韓 해상풍력 날개”
국내 해상풍력의 미래는 사업 불확실성을 걷어낼 단일 추진력과 공사 기간을 최적화할 효율적 인허가 시스템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GWEC도 우리나라를 해상풍력 유망 국가로 평가하면서도 “지난해 말 발전사업 허가(EBL)를 받은 해상풍력은 2만800㎿에 달하지만, 설치 용량은 124.5㎿에 불과하다”며 “많은 프로젝트가 정책 지원·규제 불확실성으로 인한 병목 현상과 긴 허가 과정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경쟁국인 대만도 최근 해상풍력 사업 정체로 일부 기업이 이탈하는 등 내홍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는 문재인정부 시절 “2030년까지 해상풍력 1만2000㎿를 보급하겠다”고 했지만, 현재 설치된 건 1%에 불과하다. 국내 해상풍력 허가 항목은 최대 29개이고, 초기 사업 인허가는 10년이나 걸렸다. 정부는 2030년까지 신규 해상풍력 1만4300㎿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비영리 에너지·기후정책 싱크탱크인 사단법인 넥스트는 하지만 정부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돼도 2030년까지 설치 가능한 해상풍력은 목표의 절반 정도인 7800㎿ 규모라고 지적했다. 인허가를 해결해도 설치 항만이 부족해 건설이 지연되는 병목 현상이 불가피해 대책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제주 금등리 고춘희 이장 “10년 갈등 풀고 발전기 유치… 이젠 마을 효자”
“제주에서 다섯 번째로 가난한 마을이 이젠 풍요로워졌다.”
제주 한경면 금등리 고춘희(69·여·사진) 이장은 2017년 9월 마을 해안에 3㎿ 해상풍력 발전기 3기가 준공된 후의 변화를 짧게 설명했다. 인근 두모리의 7기와 함께 국내 첫 상업용 해상풍력 단지인 탐라해상풍력단지가 조성되기까지 사업허가 후 10년이나 걸렸다. 어촌계와 해녀 등 주민 간 이해관계가 달라 다툼이 이어졌기 때문인데, 이젠 마을 부흥의 효자라고 자랑했다.
남성뿐이었던 금등리 이장을 18년째 맡고 있는 그는 “풍력발전 지원금을 청년회, 부녀회, 해녀회뿐만 아니라 노인회 2곳 등에 공평하게 나눴다”며 “마을이 못살 때엔 서로 반목했지만 이젠 많이 열렸다”고도 했다.
해상풍력 사업 시행 초기엔 소음, 수산물 감소 등 해양생태계 파괴 등 반대 논리가 절대적으로 우세했다.
고 이장은 “우리 동네엔 축산이 없는데도 ‘풍력 발전기를 돌리면 가축 임신이 안 된다’거나 ‘땅값 떨어진다’는 얘기가 돌았다”고 회상했다. 한 토론회에선 환경운동가들이 ‘돌고래가 떠난다’고 했는데, 처음엔 아는 게 없어서 아무 말 못했다. 고 이장은 “돌고래는 먹이 때문에 한곳에 머물지 못하더라”라며 “공사가 끝나자마자 돌고래는 돌아왔고 이번 여름에도 동네 앞바다에서 뛰어노는 돌고래들로 장관이었다”고 했다. 우려와 달리 발전기 지지 구조물이 인공어초 역할을 해 해산물이 더 늘어난 것도 확인했다. 돌고래와 인공어초 등의 경험을 이젠 공유하고 있다.
최근 고 이장은 바다 위에 떠 있는 풍력발전기의 야간 경관 조성에 관심이 온통 쏠려 있다. 관광지로서의 금등리 매력을 더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는 “11월 완공 계획이었는데 파도가 잦아 늦춰지고 있다”며 “올해 안에는 멋진 조명에 비친 바람개비 풍경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