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희의동행] 자신이 머문 자리

어느 토요일 오후, 이런저런 번다한 일에 종종걸음치다 잠깐 쉴 겸 커피숍에 들었다. 자꾸만 어긋나는 일에 마음이 강퍅해진 상태였고, 커피 한 잔 마시며 다시 일의 가닥을 잡기 위해 들어간 커피숍이었다. 이층 커피숍의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데 발 디딜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마치 내 안의 불평을 닮은 듯했다. 나는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받아들고 창가 쪽 자리로 갔다. 커피숍의 널따란 창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무성영화처럼 바쁘게 흘러가고 있었다. 한데 가만 보니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이 같았다. 가게마다 내건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들과는 대비되는 그 무표정한 얼굴들이 좀 기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커피를 홀짝이며 염탐하듯 밖을 훔쳐보다가 으마낫! 나도 모르게 낮게 소리를 내질렀다. 내 소리에 주변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아졌다. 그 시선들이 민망했지만 나는 그보다 밖의 풍경이 더 걱정스러웠다. 그러니까 한 중년의 아주머니가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차도 쪽으로 넘어질 뻔 한 것이다. 그 아주머니는 푸른색으로 바뀐 신호등을 보고 멀리서부터 잰걸음으로 달려왔고, 막 횡단보도에 발을 내디디려는 순간 넘어지려다 크게 활갯짓을 하며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은 것이다. 아주머니의 통행을 방해한 것은 자전거였다. 공유자전거였는데, 누군가 타고 와서는 내린 자리에 자전거를 버려두고는 횡단보도를 건넌 것이다. 그 자전거는 횡단보도 앞에 바리케이드처럼 버티고 서서는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자전거의 핸들에 가방끈이 걸렸고 그 바람에 발걸음이 꼬였던 것이다. 게다가 자전거가 넘어지면서 작은 타박상까지 입은 모양이었다. 아주머니는 꽤 많이 아픈 듯 한동안 다친 무릎을 매만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무심히 그 아주머니 옆을 지나쳤고, 자전거 역시 넘어진 채 그대로 있었다. 아주머니는 신호등이 바뀌자 다시 걸음을 재촉해 가던 길을 갔고, 그 자리에는 넘어진 자전거가 넘어진 채로 놓여 있었다. 통행에 방해되지 않은 곳으로 옮겨놓고 떠났으면 좋았으련만 아주머니는 자신의 몸과 가방만 살피고는 떠나버렸다. 그 자전거는 그렇게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하며 그 자리에 방치돼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동보드를 타고 온 청년 또한 통행이 잦은 인도 한 중심에 전동보드를 세워놓고는 무심히 사라졌다.

그 모양을 보고 있으려니 뭔가 마음속에 가시가 돋았다. 자기가 타고 온 것들은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옆으로 세워놓고 떠나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길을 걷다 보면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는 전동보드와 공유자전거를 만날 수 있다. 자신의 물건이어도 그럴까. 자신이 편리하게 사용했으면 타인에 대한 배려쯤은 가지라고 주문하고 싶다. 아니, 이건 타인에 대한 배려이기 이전에 당연한 일이지 않겠는가. 자신의 흔적을 정리하고 치우는 일. 언제부턴가 아쉬운 덕목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