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달아 터지는 ‘마약 사건’에 처방 기피… 통증 환자 ‘이중고’

마약류 오남용 사건 터지며
중증에도 진통제 처방 어려워
정작 필요한 환자들이 피해
중독자로 보는 시선 서러움도

10년 전 강모(30)씨는 군대에서 훈련을 받던 중 살얼음이 낀 타이어 계단에서 미끄러지며 발목을 다쳤다. 발목 부근 통증이 점점 심해졌지만 군 간부들은 “훈련받기 싫다고 꾀병 부리지 말라”며 강씨를 방치했다. 통증이 버틸 수 없는 경지에 이르러서야 강씨는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했고, 이후 찾아간 다른 병원에선 “응급 수술감인데 왜 이제 왔느냐”는 타박을 들어야 했다. 제때 치료받을 시기를 놓친 강씨는 10년째 하반신 전체를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하루에 3시간도 채 자지 못하고, 재활 치료를 위해 20분여간 산책하는 것도 버겁다. 강씨는 일일 5회 마약류 진통제를 복용해야 겨우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상황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9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 ‘연예인 마약 의혹’ 등이 잇따르면서 강씨처럼 마약류 진통제가 필수적인 환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유명인, 일반인 할 것 없이 마약류 의약품 오남용 실태가 드러나면서 이를 처방받기가 훨씬 어려워지면서다.

강씨가 앓고 있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은 극심한 통증이 지속해서 나타나는 희귀난치성 질환이다. 이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CRPS 증상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9859명이다. 이들이 겪는 통증 지수(NRS)는 8∼10점대로, 통상 7점대로 평가되는 출산이나 허리디스크보다 극심한 수준이다. 이런 통증이 시시때때로 찾아오니 마약류 진통제는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다. 일부 오남용 사례로 1만명 가까운 이들이 피해를 보는 실정이다. 최근 마약 사건·사고가 늘면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의료용 마약류 처방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나섰고, 대형병원 의사들이 중증 환자에게조차 처방을 꺼리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최종범 아주대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보험 사기가 많아지면 실제로 보험 처리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못 받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며 “대학병원에는 예외적인 수준의 통증을 앓는 중증 환자들이 많이 오는데, 예전에는 꼭 필요한 경우 마약진통제에 대해 서약서를 받고 추가 처방도 해줬지만 지금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CRPS는 ‘통증의 왕’이라 할 정도로 일반 의원에서는 치료가 어려울 정도의 중증 질환”이라며 “대형병원 의사들이 결코 처음부터 마약류 진통제를 처방하는 것이 아닌데 이젠 재활이나 약물 치료가 안 되는 사람들에게도 적극적인 처방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결국 수익을 노린 일부 의원들과 일반인의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현실 속에서 CRPS 환자들의 고통만 깊어지고 있다. 10년째 CPRS 투병 중인 조재희(31)씨는 “처음에는 못으로 뼈를 긁는 통증에서 시작해서 돌발통이 찾아오면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이 찾아와 이틀에 3∼4시간 잔다”며 “최근에 병원에서 처방해주던 (마약류) 진통제 종류를 하나로 줄이고, 양도 줄이라고 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일반인들은 의료용 마약류를 오남용하면서 쾌락을 누리겠지만, 저는 통증이 시작되면 팔을 절단하고 싶을 정도의 고통이라 먹는 것”이라며 “CRPS 환자가 치료받을 공간이 좁아졌다”고 호소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용우 CRPS 환우회 회장은 “마약류 의약품이 꼭 필요한 환자들을 ‘마약 중독자’처럼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며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 실시간 등록제 등을 통해 일반인이 여러 의사에게 마약류 의약품을 처방받지 못하게 실시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