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 “날 공천관리위원장 추천을”… 김기현, 단칼에 거절

지도부서 혁신안 외면하자 초강수

‘희생 권고안’ 내주 당 최고위 보고 예고
인, 컷오프·전략공천 확정 ‘요직’ 요구
비대위 전환도 언급하며 金대표 압박
“다음주 월요일까지 추천 여부 답변을”

金 “국회 상황 엄중… 논의 계제 안 돼”
혁신위 조기해산 땐 金 리더십도 타격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30일 “혁신위원회에 전권을 주신다고 (김기현 대표가) 공언했던 말씀이 허언이 아니라면, 저를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추천해 주길 바란다”며 “답변은 월요일(12월4일)까지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혁신위의 성패를 좌우할 당 지도부·중진·친윤(친윤석열) 핵심 의원들에 대한 내년 총선 불출마·험지 출마 요구가 한 달 가까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초강수를 둔 것이다.

김기현 대표는 이에 “인 위원장이 공관위원장이 되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활동했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즉각 거부 의사를 밝혔다. 당 지도부가 이날 정식 안건으로 의결된 ‘희생 권고’ 혁신안마저 무시한다면 혁신위는 조기 해산을 검토하며 당은 혼란 속으로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혁신위 회의서 발언하는 인 위원장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3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혁신위원회 제11차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인 위원장은 이날 김기현 대표에게 혁신안을 관철할 수 있도록 자신을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추천해 달라고 요구했고 김 대표는 즉각 거부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인 위원장은 이날 혁신위 전체회의에서 ‘희생 권고안’을 6호 혁신안으로 의결한 후 김 대표에게 공관위원장직을 요구하는 승부수를 연달아 던졌다. 인 위원장은 입장문에서 “저 자신부터 먼저 희생하며 당 지도부에 제안한다. 저는 이번 총선에서 서대문 지역구를 비롯한 일체의 선출직 출마를 포기하겠다”며 다음 달 4일까지 자신을 공관위원장직에 추천할지 여부를 밝히라고 했다.



당대표에게 임명권이 있는 공관위원장직은 내년 총선의 컷오프(공천 배제) 기준과 규모, 전략 공천 지역구, 경선 룰 확정 등 공천권을 행사하는 요직 중의 요직이다. 인 위원장이 이날 공관위원장직을 요구한 건 지도부·친윤 중진이 불출마·험지 출마 요구에 끝내 응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직접 칼을 휘두르겠다는 압박으로 해석된다. 당 지도부가 공천 관련 혁신안들을 공관위 논의로 이임한 만큼, 직접 혁신의 불씨를 살려 나가겠다는 의지로도 분석된다.

인 위원장은 입장문에서 “혁신은 때가 있고, 상대가 있는 제로섬 게임이다. 적당히 70점, 80점이 있을 수 없다”며 “혁신위에서 제안한 국민의 뜻이 공관위를 통해 온전히 관철되어 국민이 당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이에 “그동안 혁신위가 참 수고를 많이 했는데 당의 발전을 위한 나름대로 좋은 대안을 제시해 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드린다”면서도 단칼에 거절 의사를 밝혔다. 김 대표는 “일이라고 하는 게 순서가 있고 절차가 있다. 시간과 때와 장소 여건을 맞춰야 하는 것”이라며 “지금 국회 상황이 매우 엄중하고 긴박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공관위원장을 하자 말자 그게 논의할 계제가 되겠느냐”고 다소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30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당내에선 김 대표가 혁신위의 요구를 무작정 거절할 경우 따르는 부담이 작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혁신위는 다음 주 중 이날 의결한 희생 권고 혁신안을 최고위에 보고할 예정인데, 이번에도 “공관위로 넘기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힌다면 혁신위에 조기 해산의 명분이 생긴다는 것이다.

혁신위가 임기(12월24일)를 채우지 않고 자진 해산할 경우 김 대표의 리더십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통화에서 “김 대표가 명분 있게 인 위원장의 공관위원장직 요구를 거절하려면 자신의 팔 하나라도 내줘야 한다”며 “그러지 않으면 김 대표에 대한 여론은 더 나빠지고, 현 지도부에도 타격이 갈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위 내에선 김 대표 체제 실각 후 비상대책위원회로의 전환도 공개적으로 언급되는 상황이다. 인 위원장은 이날 CBS라디오에서 진행자가 ‘비대위 체제로의 전환은 어떻게 보느냐’고 묻자 “필요하면 해야 한다”며 “선거대책위원회나 비대위나 뭔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좀 이르지만,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거기에 좀 몫을 해 주십사 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제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며 답장은 ‘건강 조심하십시오’로 왔다고도 밝혔다.

이에 한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저는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임장미 혁신위원은 회의 전 기자들을 만나 ‘현 지도부로 총선을 치르기 어렵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체제로는 너무 힘들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으로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당 지도부 내에서도 혁신위의 요구에 호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병민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 회의에서 “혁신위가 우리 당 지도부를 향해 더 가열찬 혁신과 쇄신에 나서 달라고 한 주문에 대한 응답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혁신위의 실패는 곧 우리 당 지도부의 실패가 될 것”이라고 했다.